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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8기 경쟁률 10대 1 … 졸업생 1263명 최다

육사 8기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태릉 육군사관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8기생은 졸업생이 1263명으로 역대 육사 기수 중 가장 많았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김종필(JP) 전 총리의 육사 8기는 5·16의 주축이다. 5·16 거사 때 5기생은 주로 지휘관, 8기생은 참모진에 있었다. 그 후 5기와 8기 간의 주도권 충돌이 있었다.

[김종필의 '소이부답'] <18> 군인의 길 들어선 JP
3~6개월 교육 받고 소위 임관
5·16 때 5기와 함께 주축 역할



 1949년 5월 임관한 8기는 단기사관(10기까지) 기수(期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입학했고, 가장 많은 사람이 전사했다. 졸업생은 1263명. 이들이 훈련받던 49년은 미 군정이 종료되고 한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여서 초급 간부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는 시점이었다.



입학 경쟁도 치열했다. 『육군사관학교 30년사』(78년 발간)에 따르면 8기생의 입교시험 경쟁률이 10대 1이었다. 당시 징집령이 실시된다는 소문이 나돌아 기왕 군복무를 할 바에는 장교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사람이 많았다는 게 8기생들의 회고다. 입교생이 넘쳐난 탓에 8기생은 2개 대대로 나뉘었다. 제1대대는 1·2·3중대, 제2대대는 5·6·7중대로 구분됐다. JP는 1대대 3중대 4구대(현재 소대에 해당)에 배치됐다.



 교육기간은 짧았다. 현재 육사는 4년제이지만 8기생들은 입교 3~6개월 만에 졸업했다. 가르칠 사람도, 교육 내용도, 재원도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국방부 특명(特命) 제35호에 의하면 수석으로 졸업한 이헌영 등이 49년 5월 23일부로 소위로 임관했다.



우등생 20여 명은 육군본부 등에 배속됐지만 대부분 일선 전투부대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소대장·중대부관·대대참모 등으로 최일선에서 근무했다. 이 때문에 전체 졸업생 3분의 1인 367명이 전사하고 35명이 실종되는 등 비운을 겪었다. JP는 “1등으로 졸업한 이헌영은 당시 육사 교장이던 김홍일 준장이 부관으로 데려갔다. 6·25 남침 직후 육사에 근무하던 소위들은 모두 미아리전투에 배치됐는데 이헌영은 거기서 죽었다. 아마 8기생 중 가장 먼저 전사한 동기였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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