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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가출 여중생 죽음 … 네 번은 막을 수 있었다

지난달 26일 가출 여중생 한양이 김씨와 서울 봉천동의 한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모텔 업주는 한양 나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사진 관악경찰서]

소녀는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한 얼굴이었다. 침묵을 깨고 모텔 주인이 입을 열었다.

 “점심 때였나? 웬 남자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왔더니….”

 지난달 26일 정오쯤 신고를 받고 서울 봉천동 A모텔로 출동했을 때 소녀는 이미 죽음 저편으로 건너간 뒤였다. 올해로 열다섯. 어린 생명이 누군가에게 짓밟힌 게 분명했다. 소녀를 살해한 건 대체 누구일까. 그날 이후 내가 속한 서울 관악경찰서 강력 1팀엔 비상이 걸렸다. 단서가 될 만한 사실들을 하나씩 정리해갔다.

 “지난해 충북 괴산경찰서에 가출 신고된 한OO 양과 비슷하지 않아?”

 누군가 실종자 신고 자료를 뒤적이다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는 곧장 증평에 있는 한양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서울로 급히 올라온 어머니는 소녀의 시신을 확인한 뒤 주저앉았다.

 “맞는 것 같아요, 우리 딸. 어린 것이 어쩌다가….”

 조사를 받으면서 소녀의 어머니는 계속 오열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다가 저런 몹쓸 일을….”

 소녀는 지난해 11월 가출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조사를 해보니 서울에 온 뒤 ‘가출팸’을 전전했다. 가출팸이란 가출 청소년들끼리 월세방 등에서 지내는 걸 뜻한다. 소녀는 인터넷 가출팸 카페에서 만난 아이들과 보름 남짓 함께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보름 이후의 행적은 묘연하다. 지난해 12월부터 소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 당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모텔 주인 외에 두 남자가 있었다. 20대 후반쯤 됐을까. 소녀의 시신 앞에서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두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왔다.

 “지난해 12월 ‘장미’라는 여자를 통해 한OO을 소개받았습니다.”

 최종훈(28·가명)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박성준(28·가명)은 옆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한양에게 성매매 알선을 했습니다. 강요한 건 아니고요. 채팅앱을 통해 손님 연결만 해줬습니다. 한 명당 13만원을 받으면 10만원 정도를 그 애한테 줬고요.”

 소녀의 지난 행적이 잡히는 듯했다. 소녀는 지난해 12월 최종훈 일당을 만나 성매매를 시작했다. 하룻밤에 많게는 5명의 남성까지 상대했다고 한다. 모텔을 옮겨다니며 겨울을 났고, 사건 당일에도 성매매를 하던 중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두 사람은 자신들은 범인이 아니라며 항변했다.

 “그 애가 오전 6시43분쯤 모텔에 들어가는 건 봤는데 정오까지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모텔 주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옆에서 가만히 듣던 박성준이 끼어들었다.

 “그날 비슷한 시간대에 채팅앱으로 접촉한 손님이 12명인데 그 가운데 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얼굴도 기억한다니까요.”

  그들이 사건 당일 접촉한 12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자료를 채팅앱 업체에 요청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박성준이 한 명을 지목했다.

 “이 사람입니다. 그날 모텔에서 빠져나오는 걸 봤습니다.”

 우리는 우선 최종훈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총책 격인 김모(27)씨도 붙잡아 구속시켰다. 박성준이 지목한 남성은 서른여덟 살 김재훈(가명)이었다. 지난달 29일 우리 팀은 김재훈이 사는 경기도 시흥시 임대아파트를 덮쳐 그를 붙잡았다.

 “기절만 시키려고 했어요.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요. 왜 살인자 취급합니까!”

 김재훈의 진술을 받아치는 내 컴퓨터 화면엔 이런 글자들이 껌뻑거리고 있었다. ‘올해 1월부터 성매매 시작. 해외용품 구매 대행으로 생활. 지난해 10월과 올 2월 인터넷에서 1㎏ 용량의 클로로포름 2병 구입….’ 클로로포름은 수면마취제로 사용되는 약품이다. 김재훈이 소녀를 살해한 정황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 경위, 여기 여자 가슴사이즈까지 다 적혀 있는데?”

 김재훈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사이버수사대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메모가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성매매 장소, 일시, 여성의 키, 가슴 사이즈…. 체념한 듯 김재훈이 입을 열었다. “성의를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기절시켜 돈을 되찾으려고 마취제를 샀습니다. 그날도 거즈에 약품을 묻혀 그 아이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봉천동 여중생 살인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수사 기록을 차마 덮을 수 없다. 기록 곳곳에 우리 사회의 병폐가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한 해 22만 명의 청소년이 가출한다는데 그들을 보호할 사회적 장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쉼터가 부족해 아이들이 가출팸을 떠돌고, 성을 쉽게 사고팔고, 수면마취제를 클릭 몇 번으로 살 수 있는 사회. 모텔을 드나드는 어린 소녀를 모른 체한 어른들은 또 어떤가.

 한양이 거쳐갔던 길목 중 하나만 제대로 됐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어른들이 방조한 죽음이 아닐까.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의 늦은 밤 강력 1팀에 찾아온 낯선 정적이 불편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이 기사는 관악경찰서 강력1팀 이근철(46) 경위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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