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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안에선 미풍 가치, 나가면 폭풍 가치

왼쪽부터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전무,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이택환 호서대 교수,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용환석 페트라투자자문 대표,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요즘 펀드 시장은 가치투자 전성시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2조50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갈 때 ‘가치주 펀드’엔 1조원이 순유입됐다. 이유는 단 하나, 수익률이 좋아서다. 8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가치주 펀드(55개)의 3년 평균 수익률은 12%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0.8%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말 본지가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펀드매니저 600여명의 3년 수익률을 분석해 보니 상위 10명 중 8명이 가치투자자였다.

 지난달 중순 펀드시장을 주름잡는 가치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의 한식당에 모였다. 1세대 가치투자자를 대표하는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를 비롯해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최준철·김민국 VIP투자자문 공동대표, 이택환 호서대교수,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용환석 페트라투자자문 대표,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전무 등 9명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만 해외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10명은 2008년 결성된 ‘가치투자포럼’ 회원이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30조원에 달한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여의도에서 식사를 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이날의 화제는 ‘한국 기업이 더 이상 싸지 않다’였다. 이는 ‘한국 증시가 다른 국가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업계의 평가와는 상반된다. 이들은 그 근거로 1~2년새 싼 주식(저평가)보다 더 오르는 비싼 주식의 인기, 보통주와의 괴리율을 크게 좁혀나가는 우선주 주가의 상승세 등을 꼽았다.

 “현재 한국 증시는 싼 주식보다 비싼 주식이 더 오르는 ‘주가 빈익빈부익부’가 심각합니다.”

 이채원 부사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한샘·호텔신라처럼 주가수익비율(PER)이 40배 이상인 비싼 주식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PER은 현재 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다. 증권가에선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기업의 수익에 비해 주식이 비싸다고 본다.


한국, 기업이익 30% 오르면 주가 2배 상승

 이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한국은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진입하면서 대부분의 기업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있어요. 그런데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강해지면서 기업 이익이 30% 오르면 주가는 2배 이상 상승하고 있습니다.”

 용환석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국 기업의 성장은 정보기술(IT) 붐이었던 2000년에 정점을 찍은 것 같아요. 한국보다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미국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비해 한국의 기업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결국 기업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증시도 3년 가까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조용히 듣고 있던 조용준 전무가 맞장구를 쳤다.

 “한국 증시를 이끄는 대장주가 갈수록 힘을 못 쓰고 있어요. 지난해 3분기엔 코스피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어닝쇼크를 내며 주가가 크게 휘청거렸지요.”

 강방천 회장이 장기 투자로 말을 돌렸다.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 등 보유 종목에 20년 이상 장기 투자할 수 있었던 데는 투자 기업이 미래 기업 환경에 적합하고 견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국내는 기업 환경이 변하지 않고선 20년 이상 장기투자하긴 어렵습니다.”

 이채원 부사장은 과거 성장의 결실이 일시에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도 장기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7~8년 가까이 꿈쩍도 하지 않던 우선주가 최근 1~2년 사이에 급등하며 보통주와의 주가 괴리율을 크게 좁히고 있습니다. 1년새 LG화학 보통주가 8% 오르는 동안 우선주는 153% 뛸 정도입니다.” 다른 이들도 “싼 주식을 찾는 것만큼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가장 연장자인 박경민 대표는 요즘 국내시장에서 가치투자 철학을 고수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어렵사리 투자 유망 기업을 찾아내도 순식간에 고평가돼 장기보유하기가 힘들어요. 사놓고 무작정 기다리는 가치투자 전략인 이른바 ‘바이 앤 홀드(Buy and Hold)’ 시대는 끝난 거 같습니다.”

 이택환 교수가 박 대표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 정리했다.

 “기업의 성장성만 고려하면 국내 증시는 더 이상 싸지 않습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1800년대 미국 기업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현재 7만배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지요. 이렇게 고수익 낼 수 있는 비결은 배당금을 재투자한 겁니다.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려면 선진국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당수익률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이 교수는 또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 해결책은 시각을 넓혀 해외에 투자하는 겁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맞는 얘기다”며 맞장구를 쳤다. 최준철 대표가 덧붙였다.

배당수익률 높여야 국내증시 끌어올려

 “중국만 가도 네이버보다 저평가됐고, 사업 경쟁력이 뛰어난 정보기술(IT)기업이 수두룩합니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은 한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찾아야 합니다.”

 강방천 회장도“꽉 막힌 국내 증시를 벗어나 해외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이 유망할까. 흥미롭게도 모두가 “해외 투자 역시 지역(나라)이 아닌 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경민 대표는 구체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꼽아서 설명했다.

 “미국 증시가 지난 1년간 좋았던 것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퍼달러(달러화 강세 현상)’가 지속되면서 앞으로 미국 수출기업의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중국 상하이·홍콩 증시간 교차 거래가 가능한 후강퉁 시행으로 중국 증시에 관심이 커지고 있지요. 여기에 중국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적극적인 금융개혁 정책으로 외국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이익이 지속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박 대표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채원 부사장이 거들었다.

 “세계 어디서나 앞으로 오를 주식을 사야 합니다.”

 그러자 강방천 회장이 해외에서 유망 기업을 고르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가치투자가 중에서도 가장 앞선 2004년부터 해외 투자를 하고 있다.

 “미래 환경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이고, 시장에서 검증받은 브랜드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2008년에 선보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글로벌리치투게더펀드’는 세계 1등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애플을 비롯해 에르메스·폴크스바겐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유한 명품 기업에 투자한다. 제로인에 따르면 7일 기준 이 펀드의 5년 수익률은 116%에 이른다. VIP투자자문도 2007년부터 인도·중국·동남아 등지로 투자처를 넓혔다. 2012년엔 안다투자자문과 공동으로 홍콩 페더스트리트투자자문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해외 투자를 담당하는 최준철 대표는 “역발상 투자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장의 오해로 주가가 잘못 평가된 기업에서 투자 기회를 찾습니다. 이런 주식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리면서 주가가 반등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지난해 태국이 반정부 시위로 경제가 크게 흔들렸을 때 태국공항에 투자했는데요. 이미 여러 차례 탐방을 다녀온 곳으로 정치적 이슈를 제외하곤 탄탄한 기업이었습니다. 최근 이 주식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올랐지요.”

글=염지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yjh@joongang.co.kr

◆가치투자=시장에서 저평가돼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종목을 찾아서 장기투자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선 가치투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던 1990년대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등 가치투자 1세대가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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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