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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15만 장의 사진으로 남은 찬란한 그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요 며칠, 한 권의 사진집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출간된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라는 책이다. 평생을 미국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 보모·가정부·간병인으로 일하며 15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는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작품집. 정사각형의 흑백사진에는 뉴욕 거리의 소년·소녀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가 담겼다. 쇼윈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셀카’도 여러 장. 대부분의 사진에는 제목이 없다. 생생하고 때론 쓸쓸한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이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이어는 요즘 사진계의 핫 아이콘이다. 비밀스러운 그의 삶은 연일 화제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평생을 홀로 살며 늘 2안반사식 독일제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는 그. 하지만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니었다. 그저 찍고 또 찍었을 뿐. 필름이 담긴 200여 개의 상자를 들고 어렵사리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말년에는 사진과 필름을 임대 창고에 쌓아놓고 공원에서 노숙자로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진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2007년 창고에 있던 사진 이 경매로 처분되면서 그의 작품은 예기치 않게 세상에 알려졌다. 시카고의 벼룩시장에서 30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단돈 380달러에 사들인 부동산 중개업자 존 말루프가 그 특별함을 알아채고 세상에 공개하면서다.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가 올해 아카데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그의 사진은 요즘 장당 수천 달러를 웃도는 금액에 거래된다. 작품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계속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는 왜, 무엇을 위해 이 사진들을 찍었을까. 마이어가 필름과 함께 남긴 녹음테이프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건 바퀴야. 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 그에게 사진은 자신이 인생이라는 바퀴에 올라타 있음을 확인하는, 그곳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대한 혼자만의 열렬하고 벅찬 기록이 아니었을까. 셀카 사진 속의 그는 무표정하지만 왠지 즐거워 보인다. 모두들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세상, 누군가 알아줄 필요 따윈 없다고 말하는 존재 자체만으로 충만했던 어떤 삶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르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떠나간, 찬란한 생명들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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