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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북한도 연애·결혼 따로 … 최고 신랑감은 '열대메기'

평양 외곽의 한 공원 냇가에서 이마를 맞댄 채 웨딩 촬영 포즈를 취한 신랑·신부. 동행한 사람들이 휴대전화 등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함께 담고 있다. [사진 조선신보, 독자]


평양민속공원에서 고구려 시대 의상을 입고 말 모양의 인형에 오른 신랑·신부 일행. [사진 조선신보, 독자]
평양에도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지난주에 벌써 영상 18도까지 기록했죠. 예로부터 유경(柳京)이란 별칭으로 불린 도시답게 대동강변 버드나무 가지마다엔 푸른빛이 더해지고 있다는군요. 몇 해 전 이맘때 방북 취재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강가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청춘 남녀들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 일이 떠오릅니다.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대졸자
노동당증 메고, 기술자격증 보유
한때 양식 붐 외래어종 이름 따와
손전화+오토바이+공부 지원할 재력
남성들 사이엔 ‘손오공 신부’가 최고
웨딩촬영 인기 … 전문 사진점도 등장



 그런데 요즘 북한에선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풍조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깊이 사귀다가도 정작 결혼은 생활 문제를 해결해 줄 실속 있는 파트너와 한다는 겁니다. 노동당이나 부모가 정해준 배필과 결혼한다는 건 옛말이 됐죠.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경우가 아니면 혼전 관계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는데요. 20여 년 전 발간된 잡지가 “사랑은 사랑대로, 결혼은 결혼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현상이 없지 않다. …결혼을 이기적 선택의 자유로 생각하는 건 자신을 불행에로 이끌고 갈 것”(조선영화 1993년 9월호)이라고 비판했던 걸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입니다.



 최근엔 김일성대와 김책공대 등 평양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연애관이 확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키스 같은 대담한 애정 표현도 한다는 겁니다. 탈북자 출신 박사인 현인애 NK지식인연대 부대표는 “얼마 전 서울에 온 평양 대학생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며 “김정은 집권 이후 꽤 많이 (젊은 층을) 풀어놨다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합니다. 외부 문물에 호기심이 강한 대학생·청년층이 남한 드라마나 중국 TV를 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현 박사의 해석입니다.



평양 민속공원 내 단군서당방에서는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붓글씨를 쓴다. [사진 조선신보, 독자]
 예전엔 일등 신랑감으로 권력기관인 중앙당(노동당 중앙위)이나 보위부 직원, 달러를 만질 수 있는 외화벌이 요원이 꼽혔는데요. 이젠 조건이 복잡해졌습니다.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대학을 나와야 하는 데다 ▶당증(黨證)을 메고 있어야 하며 ▶기술자격증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걸 한 글자씩 따와서 ‘열대메기’란 말로 부른다는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식량난 해결을 위해 도입하도록 해 전역에서 양식 붐이 일었던 외래어종에서 따온 겁니다.



 결혼 적령기 남성들 사이에선 ‘손오공 신부’가 대세라고 합니다. 휴대전화를 의미하는 ‘손전화’에다 자전거보다 귀티 나는 ‘오토바이’, 여기에다 군 복무를 마친 남편감에게 ‘공부’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여성을 일컫는 겁니다. ‘현대가재미’란 말도 세태를 반영합니다. 달러를 의미하는 ‘현화’(현금화폐)가 많고, ‘대학’을 졸업하고 ‘가풍’이 좋으며 ‘재간’ 있고 아름다운(美) 여성을 의미합니다. 물질적 조건을 앞세우는 풍조가 북한의 결혼 문화에도 파고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시집 잘 가면 대학 세 곳 나온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입에 오르내릴 정도라니 말입니다.



 결혼식 당일 먼저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신랑·신부가 꽃다발을 바치는 의식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식장에선 “수령님(김일성·김정일)과 원수님(김정은)께 충실한 가정을 꾸려 나가라”는 당부의 말이 이어지는 등 체제의 특성이 반영돼 있죠.



 북한의 결혼 얘기가 나오면 궁금한 대목이 있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혼 스토리입니다. 이설주와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결혼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죠. 여동생 김여정도 결혼설이 나돌지만 확인되지 않습니다. 최고지도자와 그 일가의 결혼 문제는 여전히 최고의 비밀인 겁니다.



 특권층이나 부유층은 평양 옥류관 같은 대형 식당이나 고려호텔·보통강호텔 등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일부 당·군 고위 간부는 자녀 결혼식을 호화판으로 치렀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는데요. 2013년 말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시절 부하 직원의 자녀 결혼식이 문제돼 혁명화교육을 받은 적이 있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신혼여행을 떠나기는 어렵습니다. 지역 명소나 유원지를 둘러보는 걸로 대신한다는데요. 평양민속공원이 대표적입니다. 김정은 집권 후인 2012년 9월 완공된 이곳은 유경호텔(105층)과 주체사상탑 같은 북한 시설뿐 아니라 거북선 등 역사 유물 재현, 해외 유명 건축물의 축소 모형이 전시돼 있어 기념촬영에 안성맞춤입니다.



 이곳에서는 고구려와 고려·조선 시기 혼례복이나 무사복 등을 입고 촬영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신부는 공주가 입던 옷을 입기도 하고, 신랑도 왕이나 정승의 옷차림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게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평양발 보도입니다. 그렇지만 봉건 왕조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북한 당국은 전통 혼례를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군서당방에 들러선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붓글씨도 남기는데요. 신랑은 ‘영원한 사랑’을, 신부는 ‘행복’이란 글귀를 가장 많이 쓴다는군요.



 요즘 들어 신랑·신부에게 인기를 끄는 건 웨딩 촬영입니다. 평양 시내엔 결혼식은 물론 야외에서의 다정한 모습을 찍어주는 전문점이 등장했다고 관영매체들은 전합니다. 최근 방북한 한 재미교포 인사는 평양 외곽의 웨딩 촬영 장면을 전해줬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마주 선 신랑·신부를 VTR과 디지털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는 모습인데요.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240만 대(북한 전체 인구 2400만 명)를 넘어서면서 폰카를 이용한 촬영도 일상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개방 바람을 타고 북한 젊은이들의 애정관은 물론 결혼 문화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입니다. 통일 대한민국에서 남남북녀(혹은 그 반대의 경우)의 결혼식은 어떤 모양새일지 궁금해집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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