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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마에스트로는 가장 어려운 곳에 눈을 준다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우리는 노래할 때 먼저 숨을 들이쉰다. 빠른 노래를 할 때는 빠르게, 조용한 노래를 할 때는 조용하게. 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호흡이 필수적이지 않은 피아니스트도 한 구절을 시작할 때마다 숨을 들이쉰다. 이 숨을 손으로 저어 주는 것이 지휘자다. 이때 지휘자 또한 숨을 쉰다. 숨을 쉬는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숨으로 오케스트라 전체의 숨을 리드한다.



 음악은 작은 부분들로 이뤄져 있다. 예를 들어 ‘생일 축하 노래’는 네 부분으로 돼 있다. 그리고 매 부분 호흡의 매듭이 있어 그때마다 들숨이 필요하다. 그 간단한 노래도 그러하니 교향곡 같이 큰 곡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휘자는 시시각각 연주자들과 같이 호흡한다. 그래야 음악의 흐름과 자신의 것이 같아진다.



 음악이 격렬하면 지휘자의 호흡도 거칠어진다. 조용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호흡이 마냥 태평스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숨을 죽이고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몇 십 분 지휘를 하고 나면 지휘자는 마치 강도 높은 운동을 한 것처럼 된다. 지휘자가 땀을 흘리는 것은 팔운동 때문이 아니다.



 하나의 교향곡에는 다양한 가락의 움직임이 있다. 드물지만 모든 악기가 같이 움직이는 장면도 있다. 이런 장면은 쉽다. 문제는 여러 악기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얽혀 충돌하는 부분들이다. 이 악기는 빠르게 움직이는데 저 악기는 길게 이어진다. 저음은 강하게 나와야 하고 고음은 여리게 들려야 한다. 각기 다른 음색들이 서로 다른 가락을 뽐내는데 그들을 모두 살리면서 하나의 조화로운 음향을 만들어내는 일이 지휘자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지휘자는 미리 그 음악의 그림을 마음속에 그린다. 어느 정도 빠르고 어느 정도 강하게 할지, 어떤 악기를 더 살리고 어떤 가락을 더 두드러지게 할지…. 그리고 연습을 통해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펼쳐 보인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 탁월한 지휘자는 이때 연주자들의 마음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에스트로가 독선적 혹은 독재적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다. 우유부단해질 수 없는 위치지만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지 못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 또한 일생을 음악에 바친 사람이므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지휘자의 음악이 자신을 설득하면 즐거이 그를 따르지만 그렇지 못하면 온 마음을 다 바쳐 연주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결국 음악으로 나타난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음악과 지휘에 맞춰 그냥 따라 하는 연주가 어떻게 같겠는가.



 연주가 시작되면 모든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 부분이 시작되기 직전 지휘자를 본다. 찰나다.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교감이 이 찰나에 이뤄진다. 신뢰와 격려와 지금 진행되는 음악에 대한 공감의 확인과, 때로 감사와 존경과 사랑까지 이 찰나의 시선 속에서 교환된다. 교향곡 안에는 여러 악기가 연주하는 무수히 많은 매듭이 있으므로 지휘자는 연주자들의 모든 시선에 답할 수 없다. 지휘자는 그중에서 중요한 곳을 택한다. 반드시 챙겨야 하는 호흡, 음악의 흐름을 리드해야 하는 악기,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 자신의 눈빛으로 힘을 더해줘야 하는 어려운 파트에 눈을 준다.



 마에스트로 중에는 때로 눈을 감고 연주하는 이들도 있다. 그가 연주자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 연주자들이 하고 있는 여러 호흡을 모두 느낄 수 있기 위해 눈을 감는다. 단원 하나 하나를 모두 아우르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호흡의 매듭과 무수히 많은 다른 소리의 얽힘을 지휘자와 같이 풀어가면서, 또 찰나적인 그러나 절대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어떤 순간에는 아슬아슬하게, 어떤 순간에는 통쾌하게, 경쟁하고 대화하고 화합하면서 하나의 교향곡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연주자들은 행복해진다. 그 행복감은 하나의 어려운 고비를 합심해 잘 이겨냈을 때의 그것에 비길 수 있다. 그러한 연주자들을 바라보는 지휘자의 성취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청중이 열광하는 것은 이런 연주다. 훌륭한 리더십, 그건 예술이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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