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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대통령 빽'도 안 통하는 푸드 트럭

이철호
논설실장
지난해 3월 20일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는 청와대 끝장토론에서 푸드 트럭은 규제개혁의 상징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빽’은 막강했다. 영혼 없는 관료들이 광속으로 움직였다. 당장 열흘 만에 LPG 조리시설을 허용하도록 자동차관리법과 식품위생법이 바뀌고, 8월에는 유원지·도시공원·하천부지에서 푸드 트럭 영업을 합법화시켰다. 정부는 “6000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400억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고 자랑했다.



 1년 후 현주소는 참담하다. 전국에서 영업 중인 합법적 푸드 트럭은 딱 4대뿐이다. 그나마 이들마저 기존 상인들의 반발과 불법 노점상에 밀려 장사를 접을 조짐이다.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정부는 초라한 실적을 가리고자 뒤늦게 연세대·서강대·건국대 캠퍼스에 푸드 트럭을 넣기로 했다. 그것도 대기업들의 기부를 받아 ‘창업훈련용’이란 꼬리표를 달고서 말이다.



 푸드 트럭의 실패 원인은 한마디로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인파가 붐비는 도심에선 영업 금지다. 또 유원지·공원·체육시설에는 이미 세금을 내며 영업하는 자체 편의점과 식당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굳이 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푸드 트럭 입찰공고를 낼 이유가 없다. 푸드 트럭은 부실한 조사와 무리한 탁상행정이 빚어낸 ‘빛 좋은 개살구’의 대명사가 될 조짐이다.



 올해 초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영화 ‘아메리칸 셰프’. 블록버스터인 ‘아이언맨’의 존 파브로가 감독에 주연까지 맡았다. 특급 레스토랑의 요리사가 맛 칼럼니스트의 힐난에 뛰쳐나와 ‘푸드 트럭’으로 자신의 요리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줄거리다. 미국 LA에서 ‘고기BBQ’로 대박을 친 로이 최의 스토리를 각색했으며, 로이 최는 직접 파브로의 요리 지도까지 맡았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에는 미국 푸드 트럭의 오해와 진실이 뒤범벅돼 있다.



 미국 푸드 트럭은 식당보다 절반가량 싼 게 장점이다. 여기에다 신선한 재료를 5분 안에 조리하고, 인파가 많은 곳으로 옮겨다녀 경쟁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엔 푸드 트럭이 ‘규제완화’의 상징이지만, 미국의 푸드 트럭은 실제로는 규제 덩어리다.



 우선 위생을 위해 자택 주방이 아니라 반드시 지자체가 지정한 ‘공동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어야 한다. 구정물도 공동 부엌에만 버려야 하고, 반경 100m 안에 손님을 위한 화장실과 주차장까지 임대해야 한다. 수시로 받는 위생검사는 100항목 이상을 조사해 A~D등급을 매기며, D등급은 바로 퇴출이다. 또한 한 곳에서 30분~1시간 이상 머물 수 없는 로테이션 룰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푸드 트럭은 공짜 ‘생계형’이 아니다. 뉴욕과 LA 도심의 푸드 트럭은 매년 1억~3억원의 세금을 각오해야 한다.



 LA의 고기BBQ는 SNS에 자신의 위치를 알려 손님을 불러모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푸드 트럭들은 SNS에 위치를 노출하면 집중적인 단속 대상이 된다. 오늘도 푸드 트럭 인터넷 카페에는 부근 식당 주인들에게 쫓겨나거나 단속을 피해 다니는 눈물겨운 사연들이 넘쳐난다. 수백 건의 중고 푸드 트럭들도 사고팔기 위해 대기해 있다. 아마 박 대통령의 푸드 트럭에 대한 관심은 이런 애달픈 사연을 덜어주려는 정치적 포석일 것이다. 하지만 차량 개조와 사람 없는 곳에 영업을 허가한다고 충분한 게 아니다.



 요즘 선진국에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규제완화(deregulation) 대신 규제개혁(regulatory reform)이 대세다. 규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턱대고 없애는 게 아니라, 현실에 맞게 손질하거나 진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를 바꿀 때도 반드시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누가 손해를 보느냐를 철저히 따진다. 사전에 해외의 경험을 벤치마킹하는 비교사례 연구도 진행한다. 과연 지난해 푸드 트럭 사례가 이런 과정을 밟았는지 궁금하다. 혹시 미국의 휘황찬란한 푸드 트럭에 속아 넘어간 건 아닌지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푸드 트럭’마저 비웃음거리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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