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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차두리의 눈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청년 백수 100만 명 시대, 썰렁한 농담이 떠돈다. 백수청년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물었다. “재벌 2세요!” 그런데 뭐가 문제니? 답은 명료했다.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요.” 잘난 아버지를 만났으면 꿈처럼 물결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고시원 독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슬며시 화가 난 것은 가력(家力), 아버지의 무능력이었다. 팔자소관이란 옛말이 더욱 위력적으로 다가서는 것은 일자리를 반 토막 낸 요즘의 시세(時勢) 때문임을 모르는 바 아닌데 그래도 가문의 취약한 유전자와 그것에 결박된 무능력과 빈곤이라는 유산이 야속하기만 하다.



 마침 세계의 주목을 끈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 Piketty)가 불평등을 내장한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세습자본의 위력’을 입증한 터이므로 부모에 대한 청년백수들의 불평은 일견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런데 ‘세습자본’엔 재력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반반씩 물려받은 유전자에는 총명, 근검, 열정, 능력, 미모 같은 긍정적 요인과 술, 도박, 낭비, 바람기같이 인생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 온갖 벽(癖)들이 섞였다. 거기에 튼튼한 신체를 갉아먹는 병력(病歷)까지 포진한다. 세기의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최근 난관절제수술을 받았다. 여성의 심벌인 그녀가 여성임을 포기 선언한 것은 난소암에 취약한 가계 이력 때문이다. 팔자를 뛰어넘은 그녀의 말은 이랬다. “신체의 일부를 떼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돌파해야 한다.”



 ‘돌파’라면 우리의 마징가제트 차두리를 따라갈 사람이 있으랴. 사이드라인을 따라 공기를 가르는 그의 돌진은 제2차 세계대전 전장을 누볐던 독일 타이거 탱크다. 오죽하면 아버지 차범근이 해설을 중단하고 리모컨으로 조종한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기죽은 시대 팔팔한 청춘을 보여준 우리의 로봇 차두리의 돌진에도 세습자본의 이중 시그널이 어른거린다. 흑표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장한 체격과 축구라는 운명적 팔자가 하나다. 축구의 신화를 아버지로 둔 차두리는 말하자면 축구 재벌 2세다. 그런데 지난주 은퇴경기에서 터뜨린 그의 울음에는 무엇이 배어 있었을까. ‘아버지, 저 이만하면 잘한 거 맞죠?’ 인정투쟁, 잘난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감, 그것 아니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유전자의 결재 도장에 대한 갈망이었다.



 아버지가 꽃다발은 건넸다. 이젠 짐을 내려놓는 35세 아들을 인정한다는 결재 사인이었다. 분데스리가 벤치에 앉아봤고,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고, 태극전사 명단에도 탈락했던 아들은 인정투쟁에서 졌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한다. 세기의 스타 아버지가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과 자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려한 아버지는 후배 선수를 챙기지 못했다. 전위를 지키는 스타는 후방 선수의 서러움을 알지 못한다. 차두리는 후배들을 챙겼다. 뒤처진 선수들에게 격려의 농담을 자주 건넸다. 해외 진출 선수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고 밥도 먹였다. 손흥민, 기성룡이 우뚝 선 배경에는 차두리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아버지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한계를 넘는 것은 팔자를 뚫는 것, 유전자의 명령을 수습했음을 의미한다.



 이 얘기를 세대문제로 확장해보자. 청년백수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꾸 세습자본 탓으로 돌리게 되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쳐놓은 장벽 때문이다. 권력과 금력을 독점한 50, 60대도 ‘일자리 없는 성장’이 이토록 가혹하게 옥좨올 줄 예상하지는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필자를 포함해 우리들이 한 짓은 겨우 진입한 지배층 영토를 수호하느라 사다리를 걷어찬 것뿐이었다. 자기 가계의 세습자본은 늘렸지만 사회적 세습자본의 곳간은 텅 비었다. 아버지세대의 무능력은 바로 이것이다. 금력과 기회를 독점하고 결코 내주지 않는 탐욕.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요!’를 달리 풀면 사회적 공유자본 쌓기를 내팽개친 기성세대의 극단적 무책임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가 대사인 공무원연금 개혁, 노사정 대타협, 복지비용 논쟁에서 ‘청년세대의 미래’가 증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확보한 특권을 놓치지 않으려 천박한 논쟁을 일삼지 않았을 것이고, 청년세대를 팔자소관으로 몰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세대의 독점유전자 앞에서 청년세대는 골병이 들었다. 차두리처럼 강인한 체력과 재능을 물려받았다면 돌파라도 해보겠건만 엇비슷한 스펙에 무작정 돌진할 수도 없는 냉혹한 현실이 무기력증을 유발한다. 그래도 이 이기적 유전자는 무너져야 한다. 무너뜨려야 한다. 아버지세대에 대한 반역, 차두리의 눈물은 유전적 한계와 세습의 질곡을 넘어 맺힌 진주였다. 부끄러웠고, 고맙고 아름다웠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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