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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깊은 숲 속 길에서 만나는 산소같은 음악

벨기에 출신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인 로엘 디엘티앙(58). 바로크와 현대 작품에 두루 능하다. klassiek.cultuurplatform.be
첼로 소리는 사람 음성과 가장 흡사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현악기로는 비교적 후발주자인 첼로에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하기도 한다. 조용한 시간에 이 악기의 솔로 연주를 듣노라면 나무판 몸통의 공명이 빚어내는 소리가 참으로 은근하고 정겹게 들린다. 소리 자체가 ‘명상’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가브리엘리의 첼로 ‘리체르카르’

만약 첼로 발성의 매력적 진수, 즉 아무런 화장기도 허세도 없는 원형질의 음향을 듣기 원한다면 벨기에 출신 첼리스트 로엘 디엘티앙(Roel Dieltiens)이나 혹은 독일 출신으로 최근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율리우스 베르거(Julius Berger)가 연주하는 도메니꼬 가브리엘리(Domenico Gabrielli, 1651 또는 1659~1690)의 ‘독주 첼로를 위한 리체르카르(Ricercar)’를 듣는 게 제격일 것이다.

로엘은 특기인 아기자기한 속삭임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베르거는 섬세한 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층 박력 있고 보폭이 활발해서 두 연주가 좋은 대비가 된다. 리체르카르는 모테트와 함께 다양한 음악을 다루는 양식으로 초기에는 여러 주제를 다루었으나 17세기 이후 단일 주제를 다루는 단순한 기악양식으로 발전했다. ‘탐구하다’라는 이탈리아 말에 뿌리를 둔, 조금은 생소한 명칭은 가브리엘리의 이 첼로곡 성격에도 잘 부합된다. 규모가 작고 구조도 아주 단순한 이 곡이 독주 첼로곡으로 세상에 처음 선보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독주 첼로곡의 대명사격인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과 가브리엘리의 이 곡은 어떤 관계일까? 이 글을 쓰게 된 주요 동기이기도 하다. 곡을 처음 듣고 양식과 연주기법 등 유사성이 너무 많은 데 놀랐다. 첼로가 혼자 노래할 때 솔로 피겨선수처럼 더블, 트리플, 스톱핑 등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된다. 첼로 발성의 모든 기법들이 이 리체르카르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형태로. 바흐는 앞 세대인 가브리엘리의 작품에서 분명 영향을 받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많은 내용을 취한 것이다.

17세기 작곡가 도메니꼬 가브리엘리.
이 관계는 존 필드의 ‘녹턴’과 쇼팽의 ‘녹턴’을 떠올리게 한다. 쇼팽은 곡명과 분위기를 이어받았고 전곡을 21곡으로 마친 것도 같다. 백지상태의 창조란 없다. 가브리엘리의 첼로곡 때문에 바흐의 위엄과 업적이 훼손될 이유는 전혀 없다. 독주 첼로곡으로 바흐가 도달한 지점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리는 독창적 첼로곡과 연주기법 개발로 첼로에 그가 미친 영향에 비하면 너무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비슷한 시기 건반음악의 스카를라티, 클레멘티 등에 비해서도 그렇다. 그가 미친 영향이 그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데도…. 심지어 출생년도 조차 명확하지 않아 두 가지로 병기된다.

솔로 첼로곡 ‘리체르카르’는 단지 최초의 첼로 독주곡이란 점으로만 기억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몇 번을 들어봐도 매우 독창적이고 뛰어난 걸작이다. 바흐를 제외하면 이 작품만큼 다채롭고 흥미롭게 첼로의 발성연습을 진행하는 작품이 없다. 규모와 내용에서는 바흐 곡과 큰 차이가 있다. 바흐가 교향악이라면 이 작품은 짧은 소품연작쯤 될 것이다. 일곱 토막의 연결인데 시간은 바흐 모음곡의 한 작품과 비슷하다.

그런데 같은 계열 혈통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기본 음형과 발상에서 닮은 점이 너무 많다. 몇 지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한 페시지가 반복되어 듣는 귀를 놀라게 한다(V번 C major). 전체적으로 노래를 지향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음계이동으로 그치고 단순한 음정변화 속에서 가볍지 않은 추상적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점도 유사하다(VI번 G major). 소리의 묘미를 배가시키는 짧고 경쾌한 중음주법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닮아있다(VII minor).

같은 악기라고 하지만 발성기법과 소리형태가 너무 흡사해 바흐 곡에 오래 경도되었던 사람 입장에선 가벼운 충격도 받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체형만 크게 다른 쌍생아를 보는 기분이다. 만약 바흐 곡 이전에 내가 가브리엘리의 이 리체르카르를 들었다면, 그때에도 나는 역시 경이로움, 찬탄의 감정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 단출한 곡의 바탕은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니라 훌륭한 화음을 통해 추상성이 깃든 새 음악언어 창조에 있다. 그 단순성이 나를 매혹시킨다. 이런 음악이 바흐 곡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이 곡은 뒤이어 오게 될 다른 독주곡들을 위한 예비 작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간결하고 소박한 걸작이다.

이 곡은 구조가 간결한 대신 첼로가 언제나 가장 좋은 상태에서 발성하게끔 치밀하게 계산된 구성과 흐름으로 되어 있다. 작곡가의 악기에 대한 배려가 그만큼 컸다는 점, 그의 악기소리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열정에 치우쳐 너무 힘주어 연주하는 일부 연주를 들어보면 음향의 좋은 지점을 자주 놓치는 바람에 자칫하면 무미건조한, 이상한 음악이 되어버린다. 싱거운 음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음악이 소리예술이란 점을 다시 실감한다. 완숙한 연주를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주 고요한 시간에 가브리엘리의 ‘리체르카르’의 은밀한 속삭임 같은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숲 산책길에서 만나는 공기를 숨 쉬는 것 같은 상쾌함, 기쁨을 느낄 것이다. 에릭 사티의 음악을 ‘무공해음악’으로 명명한 바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 음악 역시 무공해음악인 셈이다.


송영 작가 sy40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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