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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벚꽃 원조 논쟁이 의미 없는 이유

신윤복의 <연소답청>
‘우리 집의 흰둥이 개, 손님 봐도 짖지 않네. 복사꽃 밑 잠을 자니, 개수염에 꽃 걸렸네.’ (황오의 한시, 정민 번역)

‘이화(배꽃)에 월백하고 (중략)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못들어 하노라.’(이조년의 시조)

꽃을 통해 봄날 정취를 멋들어지게 노래한 한국의 옛 시들이다. 그렇다면 요즘 축제가 한창인 벚꽃에 대한 옛 시도 있을까. 책과 인터넷을 뒤져봐도 찾기 힘들다. 반면 일본에는 벚꽃을 노래한 옛 시가 무수히 많다. ‘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같은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가 한 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벚꽃을 즐기는 풍습은 어디서 온 걸까. 일본의 영향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대표적인 벚꽃 품종으로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많이 심어진 소메이 요시노가 제주도의 왕벚나무에서 기원했다는 학설이 맞더라도 말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요시와라의 밤 벚꽃>
‘벚꽃 제주도 원산지 설’은 해방 후 벚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움직임을 저지했고, 많은 한국인들이 벚꽃을 즐기면서 느끼는 ‘왜색’에 대한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꽃의 원산지와 그 꽃을 즐기는 문화는 별개라는 사실을 편리하게 잊고 있었다.

원산지가 어디건, 과거 벚꽃 사랑이 가장 강한 것은 일본이었다. 그러니 최근 중국까지 가세해 삼국지가 돼버린 벚꽃 원산지 논쟁은 식물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우리 조상은 벚꽃보다 다른 봄꽃을 훨씬 사랑했다. 전기의 ‘매화초옥도’에서 선비가 눈 같은 매화를 완상하고, 신윤복의 ‘연소답청(아래 그림)’에서 기생과 한량들이 붉게 흐드러진 진달래를 즐기지만, 벚꽃 구경하는 그림은 본 적이 없다. 반면 벚꽃이 등장하는 일본 우키요에 목판화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벚꽃이 제주도 원산임을 내세워 한국 전통이 아닌 벚꽃축제를 어정쩡한 민족주의로 포장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대안은 두 가지다. 민족주의 정신을 결벽증적으로 발휘해서 벚꽃축제를 다 폐지하든지. 아니면 벚꽃과 민족주의적 원산지 논쟁의 연계를 끊어버리고 벚꽃놀이가 일본에서 왔음을 인정하되, 이제 한국식으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벚꽃축제 문화의 주도권을 쥐든지.

이미 우리는 좋은 전례를 갖고 있다.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던가. 중국이 발끈했지만, 한국은 단오 명절 자체는 중국에서 기원했음을 인정하되 강릉 단오제라는 축제는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문화라는 점을 설파했고 결국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아울러 벚꽃축제만 발전시킬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탄탄한 문화예술적 기반이 있는 꽃 축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일본은 벚꽃에 대한 수많은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것을 인용한 현대 만화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벚꽃축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꽃은 진달래다. 신윤복의 아리따운 기생의 머리에 꽂힌 진달래 가지부터 김소월의 사뿐히 즈려밟는 진달래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치열한 문화 패권 다툼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가 원조냐가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느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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