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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낮춤, 두 얼굴의 반말…좌표 삐끗하면 졸지에 폭발





예원·태임 설전으로 본 반말의 사회학

최근 두 20대 여성 연예인의 날 선 대화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빌미는 ‘반말’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세 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이다. 왜 이들은 낯 뜨거운 설전을 벌였을까.



 언어학자들은 우리말이 ‘높이는 말’이 발달한 언어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특징은 ‘반말’에 있다고 말한다. 위계질서와 친근함, 양면을 지닌 반말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와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당신’의 느낌

두 여성의 실제 대화(표1)를 들어봐도 잘잘못을 가리긴 어렵다. ‘둘 다 말버릇이 나쁘다’는 양비론이나 ‘평소 두 사람의 관계나 전후 사정을 알아야 한다’는 신중론이 팽팽하다. 두 사람의 시비가 의사소통 과정의 갈등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하다. 뭐가 문제였을까.



 우리말에서 연장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겐 높이는 말을 써야 한다. 예외적으로 부모와 어린 자식, 가까운 동료 등 친밀도가 높은 사이에선 반말도 허용된다. 각자 예상하는 수직(나이·지위)과 수평(친밀도)의 좌표가 일치할 때 소통 과정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예상이 빗나갔을 때 갈등이 빚어진다.



 소통 과정의 충돌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벌어진다. 가장 빈발하는 곳 중 하나는 운전석이다.



#1의 상황은 하루에도 몇 번씩 도로에서 벌어진다. ‘당신’은 원래 예사높임체인 ‘하오’와 호응하는 2인칭 대명사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낯선 이를 ‘당신’이라 부르면 시비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반영해 ‘당신’의 뜻에 ‘맞서 싸울 때 상대방을 낮잡아 이르는 2인칭 대명사’란 정의도 담고 있다.



 우리말의 반말은 다른 언어의 일상어나 평어와 달리 이중적이다. 우선 하대(下待)의 의미가 있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다. 때론 친밀도가 높은 관계에서 친근함을 드러내는 말로도 사용된다. 문제는 반말을 허(許)하는 건 늘 연장자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랫사람이 ‘말 놓을게’라며 반말을 하는 건 금기시된다. 수직 관계에서 쓰이는 반말은 갈등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2의 대화에서 선배 A와 후배 B는 수직적인 관계지만 친근함의 정도에 따라 수평적 관계도 섞여 있다. 안부를 물을 땐 B의 반말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음 대화에서 두 사람이 예상했던 수직·수평 좌표는 어긋났다. 좀 전까지 허용됐던 반말이 금기시되는 것이다. 반말을 허하는 쪽은 선배인 A다.



상황에 따라 복잡한 우리 반말

다른 언어에도 우리말의 반말과 유사한 표현이 있다. 대개 인칭대명사나 특별한 동사가 사용된다. 일본어에서 2인칭 대명사 ‘소치라(そちら·그쪽)’ ‘아나타(あなた·당신)’ 대신 낮춤말인 ‘오마에(お前·너)’를 사용하는 식이다. 프랑스어에는 ‘말을 놓다’라는 의미의 동사 ‘튀투아예(tutoyer)’가 있다.



 언어학자들은 존대법이 발달한 언어는 많지만 우리말처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거나 복잡하게 활용되는 ‘반말’을 가진 언어는 드물다고 말한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문법 형태로 나타나는 ‘반말’은 우리말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우리말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수직 관계(나이와 지위), 수평 관계(친밀도)를 자연스럽게 계산해 적절한 표현을 찾아낸다”며 “각자 수직·수평의 관계가 깨졌다고 생각할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3의 대화에서 비서인 B가 사장인 A에게 ‘A씨’라고 불렀을 때 A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수직 관계에서 아랫사람이 무조건 존댓말을 쓴다 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4의 대화처럼 존댓말을 고수하는 아랫사람에 대해 윗사람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윗사람이 친근감의 표시로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도 아랫사람이 쉽게 반말을 할 수도 없다.



 언어사회학자인 이병혁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일상 언어로서 우리말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사회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우리말에 대해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언어가 도시화된 사회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고 본다.



 마을공동체 언어란 ‘낯선 사람’ 혹은 계약관계인 타자를 부르는 호칭이나 어법이 발달하지 않은 말이다.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언니’ ‘오빠’ 등 친족어가 도시화·산업화된 사회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상호 존중보다는 연장자가 우선적으로 존중받는 전통적 위계질서가 반영된다.



 이 교수는 “오랜 기간 상호 존중에 대한 규범, 합의를 이룬 서구 사회와 달리 압축성장을 통해 도시화로 옮아간 우리 사회는 소통 과정에서도 이런 합의된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숙된 시민교육이 소통 첫걸음

문화평론가 권경우씨는 ‘반말’이 갖는 권력관계에 주목했다. 권씨는 “낯선 이에게 반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유명 강사가 반말로 강의할 때 대중은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거나 강사의 권위가 높은 것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친근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위치를 수동적·종속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반말을 들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군대식 위계질서’로 논란을 빚은 일부 대학의 선후배 관계도 이런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분석했다. 권씨는 “소속된 공동체에서 이탈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나 선배에게 무조건 순응하고 이런 권력관계를 후배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민주화 시대에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권위주의 시대 군대에서나 쓰던 폭력적 언어와 위계질서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경직된 위계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존댓말을 없애야 한다거나 무조건 상호 존대를 해야 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의사소통의 문제가 언어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사회의 미성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권재일 교수는 “소통에 더 낫거나 불리한 언어는 없다”며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의사소통 과정의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만 있다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풍부한 표현을 가진 언어가 우리말이라는 설명이다.



 이병혁 명예교수도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가능한 응답의 범위를 추측할 수 있어야 의사소통 과정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과 같이 성숙된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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