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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급이로소이다

[여성중앙]‘떡국열차’ 봉만대 감독, 나는 B급이로소이다



9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설국열차’가 에로 영화 감독 봉만대를 만나 재탄생했다. 제목부터 입에 착 감기는 ‘떡국열차’다. 남들과 다른 시각과 행동으로 살아온 그의 영화 인생을 들어봤다.











얼마 전 MBC ‘라디오 스타’에서 MC 김구라가 봉만대 감독의 신작 ‘떡국열차’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다는 발언을 했다. 지난해 불안한 가정사로 잠시 휴식기를 가진 그가 영화배우가 되는 것도 놀라웠지만, ‘설국열차’의 패러디 영화인 ‘떡국열차’가 제작된다는 게 더 큰 화제였다.



이는 연출자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은 바로 에로 영화 감독 봉만대다. 그는 오랜 시간 에로 비디오 시장에 있다가 2003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화로 충무로에 데뷔했다.



이 영화가 호평을 얻자 본격적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끼를 발산했다. 신세경 주연의 공포 영화 ‘신데렐라’를 비롯해 케이블 드라마 ‘TV 방자전’을 통해 드라마 연출력도 선보였다. 그럼에도 항상 당당하게 에로 영화 감독이라 밝히며 B급 장르로 인식된 에로에 대한 무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런 그가 2년 전, ‘라디오 스타’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패러디한 ‘떡국열차’를 제작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봉만대 감독은 그 발언을 현실로 이뤄냈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설국열차’가 얼마나 야해졌으며, 어떻게 관객을 웃기는 영화로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에로 거장 봉만대의 에로 예찬



이날 기자는 긴 시간 서랍 속에 감춰둔 대한민국 최초의 ‘플레이보이’ 모델 이승희의 사진집 ‘버터 플라이’를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들고 나왔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고, 떡도 썰어본 자가 잘 썬다는 말처럼 책을 본 봉 감독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 개인 소장품이에요? 진짜 오랜만이네! 이승희(웃음). 그런데 가슴 수술은 했네요. 동양인이 이런 체형을 갖긴 어렵거든요.” 작품의 진가를 알아주는 그가 반가웠다. 역시 남자는 술과 담배 그리고 빨간 책으로 가까워진다.







Q : ‘떡국열차’로 화제의 인물에 등극했어요

2013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즉석에서 뱉은 말이 현실이 된 거죠. 당시 대본에도 없던 말인데 김구라씨가 제게 봉준호 감독처럼 되려면 뭐 하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고 거기에 ‘그러면 ‘떡국열차’(‘설국열차’ 패러디) 찍을게’라고 대꾸했어요. 거창하게 선거 공약처럼 지킬 필요는 없었지만, ‘설국열차’를 유희적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확신이 들어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요즘 많은 분이 저와 ‘떡국열차’를 향해 큰 관심을 주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관심이 영원할 수 없는 걸 알기에 예나 지금이나 무덤덤한 상태예요. 무엇보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웃음).



Q : 혹시 원작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도움을 주었나요

실제로 만나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보다 한 살 더 많아서 사석에선 형이라고 부르는 사이예요. 봉준호 감독님이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찍을 때 경기도 양수리 세트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성도 같아서 가까워졌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는데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도움되는 디테일적인 부분을 알려주셨어요. 그렇다고 따로 작품의 인센티브를 드리는 건 없어요(웃음). 원래 패러디는 저작권이 따로 없거든요.



Q : 많은 에로 영화를 연출했던 만큼 수위가 꽤 높은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할 순 없을 거예요. 낄낄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 구조에 에로티시즘이 양념으로 가미된 정도거든요. 작품 내용도 원작과 거의 흡사해요. 엔진 칸에 가려는 꼬리 칸의 반란인데 원작에선 양갱을 나눠주지만 이 영화에선 떡을 나눠 주는 게 큰 차이예요.



스토리는 개떡을 먹는 사람들이 모인 개떡 칸에서 시작해요. 그 칸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기운도 없고 정력까지 없는 슬픈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그러던 어느 날, 이 현상을 수상하게 여긴 ‘커져쓰’(김구라)가 떡을 조사해보고 개떡 안에 정력 감퇴제를 넣은 걸 알게 되죠. 왜냐하면 그 떡을 안 먹으니까 발기가 되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해 엔진 칸으로 진격을 시도하죠. 무기는 안 먹은 개떡을 뭉쳐서 만든 떡 몽둥이예요. 개떡 칸 사람들은 승리를 예상했죠. 지난 기차 혁명 때 엔진 칸에서 총알을 다 소진해서 공격력이 약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격투 중 총알이 나오며 스릴감이 조성돼요. 관객이 만족할 만한 영화적인 요소도 추가했죠.



Q : 이 영화가 스크린 개봉작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002년에 배우 김정은씨가 출연한 ‘재밌는 영화’를 끝으로 현재까지 패러디 영화가 개봉한 적이 없었어요. 오랜 시간 검증된 장르가 아니라 예산 지원에 대한 문제도 있어서 최근 활성화된 IPTV와 인터넷을 통해 먼저 촬영한 1~2화를 차례대로 보여드리려고요.



총 12부작인데 한 편당 5분 분량이에요. 지난 1월 30, 31일에 걸쳐 2화까지 촬영했고요. 아마 여성중앙 3월 호가 나오면 우선 40초짜리 트레일러와 현재까지 촬영한 영화가 IPTV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될 거예요. 반응이 좋으면 스크린용으로 제작할 수도 있고요. 전문 용어로 간을 좀 봐야죠(웃음).















Q : 김구라씨 출연이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닌가요

10년 동안 혀로만 살았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어요(웃음). 정작 본인이 희극인이란 모습을 찾고 싶었던 거죠. 지난 연말 김구라씨가 방송을 쉬고 있을 때 제가 영화에 출연해보면 어떻겠냐고 연락을 했어요. 그땐 유야무야 넘어갔죠. 그러다 방송 복귀를 한 뒤, 카페에서 만났어요. 그때 제게 ‘떡국열차’ 얘기를 꺼내며 정말 진행할 거냐고 묻더군요. 이미 하고 있다고 밝히니 출연 의사를 강하게 보였어요.



만약 이 영화를 함께하고 싶다면 현재 시나리오를 조금 바꿔볼 수 있다고 제안하니까 합류하기로 결정했어요. 원래는 권오중씨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자기는 주연으로 누군가를 이끌어 나갈 자신이 없다고 해서 김구라씨가 출연하게 된 것도 있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연기를 정말 잘해요. 머리가 좋은 편이라 이해도가 빠르고 현장에 올 때도 프로 배우처럼 모든 걸 비우고 와요. 너무 적극적이어서 공황 장애 이후 또 다른 장애가 왔나 싶었다니까요(웃음).



Q : 이번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다 무보수라면서요

네. 모두가 무보수예요. 이게 또 김구라씨 때문에 알려진 거예요. 이 영화 출연 배우들을 섭외할 때, 무보수인데 괜찮겠냐는 의사를 묻고 시작했어요. 김구라씨도 ‘돈 안 받아도 괜찮아’라며 흔쾌히 답했죠. 그러더니 ‘썰전’에 나와서 봉만대가 돈 안 줘서 무척 힘들다고 말할 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죠(웃음).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역시 김구라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방송 소재로 이용하는 게 웃겼어요(웃음).



Q : 출연 의사를 강하게 밝힌 배우는 없었나요

얼마 전 안선영씨가 강한 출연 의사를 밝혔는데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웃음). ‘떡국열차’는 출연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완성 시키는 데 의의를 둔 영화예요. 나머지 10화의 구성도 여전히 생각 중이고요. 각 칸이 각기 다른 떡 이름을 가진 칸으로 분류돼 있거든요. 우선 바람떡 칸은 바람 피우다 걸려서 혼쭐난 사람들이 모였고, 무지개떡 칸은 성 소수자들이 있는 칸이에요. 그런데 아직 모든 칸이 어떤 떡으로 채워질지 정해지지 않았어요.



Q : 학창 시절의 ‘봉만대’는 알려진 적 없는데, 지금처럼 혈기왕성했나요

믿기 어렵겠지만, 존재감 없이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르게 지냈어요. 학교, 교회, 집이 전부였죠. 그런데 좋아하는 건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그게 에로였어요. 마음속에 간직하다가 고2 때 영화감독이 되자는 꿈을 세웠어요. 제 꿈을 처음 말한 게 친하게 지낸 교회 여자 친구인데(친구 사이임을 강조) 어느 날 같은 버스를 탔어요. 그 친구가 “만대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라고 묻길래 “응, 난 영화감독이 될 거야.”라고 답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장르인지 또 묻더군요. 그래서 한마디로 답했죠. “에로(웃음).”



Q : 수많은 장르 중 왜 하필 에로였나요

혈기 왕성한 10대 때라 에로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럴 바엔 그 시장에 뛰어들고 싶었어요. 과연 그 세계의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어머니 식당 앞에 있는 영화관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유일한 취미였어요. 영화를 볼 때마다 계속 무언가 만들고 싶단 생각이 자라났어요. 그때의 취미가 에로와 접목되어 이 장르를 만드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으로 피어난 것 같기도 해요.



Q : 연극영화과에 꽤 많이 낙방했다고 들었어요(웃음)

그때 정말 많이 열 받았어요. 지금 말하면서도 열 받네요(웃음). 대부분 대입을 낙방하면 실력이 모자라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데 전 반대였어요. 왜 이 학교는 ‘나처럼 연기 잘하는 학생을 떨어뜨려?’라는 생각을 했죠. 고등학교 때 연기 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박수도 많이 받고 모르는 사람한테 꽃다발도 받아봤거든요. 그러니 대입 낙방은 믿을 수 없는 결과였죠. 그 뒤에 바로 영화계로 뛰어들기로 하고 충무로로 발걸음을 옮겼죠.



Q : 그렇게 아쉬웠다면 재수를 했을 만도 한데…

뭐, 물론 재수는 한 번 했죠. 아깝잖아요. 하하하(그도 웃고 기자도 함께 웃었다). 그때도 떨어졌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선 박수를 쳐주셨어요. 예술이란 장르가 풍족한 사람이 하는 분야란 걸 아셨거든요. 어릴 때 저희 집안이 무척 어려웠어요. 어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홀로 5남매를 키우셨거든요.



이런 제가 밥 굶는 예술인 연기를 하기보단 차라리 다른 길을 가길 바라셨죠. 그때 제가 서른이 넘을 때까지 영화감독이 안 되면 고향 내려가서 어머니랑 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다 스물아홉 살 때 일본 기획사의 지원을 받아 ‘도쿄 섹스피아’를 연출해 감독 데뷔에 성공했죠.



Q : 그때 대학에 입학했다면 현재 추구하는 장르가 바뀌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에로를 더욱 빨리 알고 더 잘 만들었을 같은데요(웃음). 저를 제외하고 형제들은 다 공부를 잘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학문엔 관심이 없고 무언가를 이미지화시키고 그걸 현실화하는 일이 하고 싶던 거고요. 다른 얘기지만 간혹 사람들이 제게 “감독님 에로도 좋은데 다른 장르 해보면 어때요?”라고 묻곤 해요.



전 그런 질문을 들으면 대꾸도 잘 안 해요. 묻는 태도가 잘못된 거죠. 에로가 천박한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런 시장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건강한 에로를 만들어 내고 싶었어요. 이 장르에 애착을 가지지 않으면 주변도 바뀌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관객과 다양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신데렐라’ 같은 영화도 연출한 거고요.



Q : 이런 바람과 달리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겪은 슬럼프도 무척 심했을 것 같아요

당연히 크게 겪었어요. ‘맛섹사’를 마친 뒤였는데 이게 영화의 결과가 나쁘지 않음에도 찾아왔어요. 나를 충무로에 처음 알린 작품인데 만드는 과정이 험난했거든요. 후유증이랄까? 그렇게 힘든 과정을 한 번 겪고 나니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가 제대로 안 써지더라고요.



오죽하면 아내한테 “여보, 나 택시라도 해볼까?”라고 물으니까 “택시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너 면허증도 2종이잖아. 택시 몰려면 1종 면허가 있어야 해”라고 하더군요(웃음). 그때 처음 택시 몰려면 1종 면허가 있어야 한단 사실과 세상엔 쉬운 게 없단 걸 알았죠.



그러다 OCN에서 ‘동상이몽’이란 드라마를 연출하며 조금씩 슬럼프가 사라졌어요. 무엇보다 제가 무엇을 해도 그만두라는 말 없이 믿어주는 아내가 큰 힘이었죠.



Q : 가족이 가장 큰 힘이라는 거죠

그럼요. 항상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줘요. 17년 이상 오빠 동생으로 지내다가 결혼해서 누구보다 저를 잘 알아요. 그래서 뭘 하든 묵묵히 응원해줘요. 게다가 아들과 딸이 있어서 어지간한 어려움은 그냥 넘겨요.



아들은 올해 열 살인데 아빠가 영화감독인 걸 알아요. 제 신조 중 하나가 집에 들어가는 순간 바깥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는 거예요. 그게 자녀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도 있거든요.



어느 날 아들이 ‘나도 아빠처럼 영화감독 할래’라고 하면 그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봐요. 아이에겐 또 다른 길이 있는데 그걸 해치기 싫어요. 그래서 전 아이들한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꾸준히 해요.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있도록 자립심을 심어주는 거죠.















자발적 B급의 위대함



자신의 장점과 멋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너무 과하면 독이 되기도 하지만 봉만대 감독은 매번 자신을 B급 정서를 가진 감독이라 말했다. 잘나갈 때가 있으면 못 나갈 때도 오는 걸 알기에 자신을 낮춘 자세야말로 최선이라 했다. 결국,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며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감독의 기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Q : 작년에 열린 제19회 부산 국제 영화제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초청되었는데 배우 자격이었요

이무영 감독님이 연출한 ‘한강 블루스’에 출연하며 처음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어요. 그런데 감독이 아닌 배우로 초청받으니까 기분이 묘하더군요. 그건 제가 아직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죠. 매번 부산 국제 영화제 때 초대받지 못하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제 이름이 적힌 의자에 앉아봤어요. 감격스러웠죠(웃음).



아쉬운 건,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했는데 긴장해서 너무 빨리 걸었어요(웃음). 올해도 희망을 걸고 있어요. 미 개봉작인 ‘치명적인 유혹 덫’을 전주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고, ‘그녀는 관능 소설가’란 작품이 8월에 크랭크 인을 앞두고 있거든요.



Q : 연출 말고 연기에 관한 욕심도 높은 것 같아요

연기는 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거든요. 감독과 달리 배우가 되면 누군가의 카메라 안에 피사체가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정말 긴장이 돼요. 제가 약간 가학적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렇다고 연출자를 붙잡고 출연시켜달라고 부탁하진 않아요. 지금까지 한 작품들은 자연스레 기회가 와서 출연한 거예요.



Q : 영화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진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 제 영화가 세상을 밝게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들이 에로라는 장르를 건강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Q : A급이 되는 길을 알지만, B급의 길을 선택한 거군요

자신을 평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공식적으로 영화계에서 B급에 대한 의미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A급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외치는 B급은 A급의 아래가 아니에요. A급이 아님을 알기에 자기 자신을 더 겸손하게 만들게 해주는 의미예요.



물론 누군가는 절 A급이라고 불러주기도 하겠죠. 중요한 건 역사가 판단해줄 거예요(웃음). 이미 제 묘비명도 ‘봉만대가 죽었다, 에로도 죽었다’로 정해놨어요. 제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평가될 거예요. 그래서 에로를 택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고요.



Q : 관객이 봉만대의 영화를 보고 얻고 갔으면 하는 게 있나요

저는 항상 명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해요. 이런 제 생각과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도 물론 계세요. 그래서 전 50 대 50을 좋아해요. 나를 싫어하는 부정적인 50을 흡수해서 100으로 만들고 싶어 매 작품 심혈을 기울이게 돼죠.



그냥 봉만대의 영화를 보고 나면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봉만대란 사람이 떠오르면 ‘그 사람 영화 참 유쾌했어, 조금 이상한 사람이어도 영화 하나는 재밌었지’라는 생각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자신이 연출한 ‘아티스트 봉만대’에 주연으로 출연한 봉만대 감독을 만나기 전엔 장난끼 많은 인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겸손한 자세와 고집스럽게 하나의 길을 걷는 우직함이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헤어지기 전 이승희의 ‘버터 플라이’에 그의 사인을 담고 싶었다. 한국 최초의 ‘플레이 보이’ 모델의 사진집에 한국 최고의 에로 거장을 꿈꾸는 감독의 사인을 받으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사인에 ‘형제’라는 글자가 눈에 띄어서 의미를 물었다. “나한텐 야한 거(에로) 좋아하는 사람 모두가 형제예요(웃음).” 이날 기자는 한국에서 가장 야한 형이 생겼다.











기획_유재기 | 사진_박지홍(cao studio)

여성중앙 2015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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