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정호의 사람 풍경] 저작권료 수입 1위 작사가 김이나

약간의 편견이 있었다. 대중가요 가사는 그렇고 그런, 판에 박힌 사랑 타령이라고 여겼다. 값싼 감정놀음이랄까, 팬들의 눈물샘을 건드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고도의 계산과 전략이 있어야 했다.

 김이나(36). 요즘 가장 잘나가는 작사가다. 지난해 작사가 저작권료 수입 1위에 올랐다. 그가 쓴 노래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불렀다는 얘기다. 2012~2014년 3년 연속 K팝 어워드 ‘올해의 작사가상’도 받았다. 이뿐만 아니다. 그의 지난 10여 년을 돌아본 신간 『김이나의 작사법』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고, MBC ‘나는 가수다’ 시즌3에도 매주 나와 촌평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달리 속은 꽉 찬 느낌이다. 자기 일에 대한 확신이 묻어 나왔다. “저는 ‘잘 팔리는’ 가사를 만드는 일꾼입니다. 남의 말을 대신 써주는 기술자죠”라고 소개했다.

계절이 바뀌는 봄·가을에 일이 몰린다는 작사가 김이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일꾼·기술자라는 말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작사가는 미리 노랫말을 짓지 않는다. 음반회사나 작곡가의 곡을 받은 후에 일을 시작한다. 늘 시간에 쫓긴다. 마감에 허덕인다. 내일 당장 완성하라는 주문도 많다. 가사를 썼다고 꼭 채택되는 것도 아니다. 업계말로 ‘까이는’ 경우가 흔하다.”

 - 정상에 오른 지금도 그런가.

 “지금까지 300여 곡 발표했다. 요즘에는 10곡 중 6곡쯤 픽스(실제 녹음)되는 것 같다. 4곡은 버려지는 셈이다. 고객의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타율이 좋은 편이다. 신인 때는 한 곡이나 뽑혔을까. 작사가는 소설가와 다르다. 작가의 명성이 흥행과 직결되지 않는다.”

 - 을(乙)의 설움을 듣는 기분이다.

 “서러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작사가는 을보다 병(丙)에 가깝다. 갑(甲)은 노래 소비자(팬)이고, 을은 음반제작사다. 그만큼 요즘 음악시장은 산업화돼 있다. 가사를 넘긴 다음에도 늘 대기 상태다. 수정 요구가 들어오면 바로 응해야 한다. 사사로운 약속을 잡기가 어렵다.”

 - 지난해 수입은 얼마나 되나.

 “정확한 액수를 밝히기는 그렇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다. 작곡·작사 다 합쳐 최고의 저작권료를 기록한 박진영씨(2013년 13억원)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노래 한 곡당 작업비는 150만~200만원 정도다.”

 - 책이 제법 전문적이다.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겠다. 작사의 핵심은 캐릭터 설정이라고 말했다.

 “가요는 사랑과 이별을 주로 노래한다. 소재가 제한적이다.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캐릭터에 가장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노래 주인공이 소심한가, 순정파인가, 경험이 많은가 적은가 등등. 똑같은 사랑이라도 남성과 여성, 10대와 40대 사이에 차이가 있다. 그런 세밀한 부분을 살려야 대중이 ‘내 얘기 같은데’라며 공감할 수 있다.”

 잘 빚은 노래 하나 잘난 자식보다 낫다. 두고두고 회자하는 노래는 마치 화수분처럼 원작자에게 든든한 수입원이 된다. 그런 면에서 김씨는 행운아다. 아이유의 ‘좋은 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가인의 ‘피어나’, 박정현의 ‘서두르지 마요’, 조용필의 ‘걷고 싶다’,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임재범의 ‘어떤 날, 너에게’ 등 히트곡이 수두룩하다. 드라마 ‘궁’과 ‘시크릿가든’의 OST인 ‘Perhaps Love(사랑인가요)’와 ‘나타나’도 있다.

 - 비판부터 하자. 요즘 아이돌 노래에는 국적 불명의 가사가 많다. 국어를 망친다는 지적도 있다.

 “유치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가사는 곡에 따라, 가수에 따라, 청중(聽衆)에 따라 달리 써야 한다. 노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트렌드다. 1970년대 포크음악으로 지금 아이돌 노래를 평할 수 있나. 요즘 노래는 타깃이, 즉 공략 대상이 세분화돼 있다. 파이(pie)가 잘게 갈라졌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노래가 나오기 어렵다.”

 - 감정을 ‘나노(10억분의 1) 단위’로 나눈다고 했다.

 “노랫말은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별에 대처하는 요령도 제각각이다. 자신을 탓하는 ‘부처형’, 하염없이 기다리는 ‘망부석형’, 끝까지 매달리는 ‘거머리형’, 너 죽고 나 죽자는 ‘논개형’ 등 천차만별이다. 평소 꼼꼼한 관찰이 필요하다. 도처에 가사가 있다.”

 - 그래서 ‘큰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나.

 “네티즌 사이에 ‘솔로몬병’이라는 게 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하는 사람을 꼬집을 때 쓴다. 그런데 완전히 옳고 그른 게 있을까. 흑과 백이 선명하게 갈라질까. 사랑 문제에선 누구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양비론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특정 개인의 생각을 강요해선 좋은 가사를 쓸 수 없다.”

 - 조용필·이선희와 함께한 건 다소 의외다.

 “2년 전 조용필의 19집 앨범에 실린 ‘걷고 싶다’는 제게 훈장 같은 노래다. 일종의 혈통보증서다. ‘가벼운 글만 쓰는 아이’라는 자격지심을 씻을 수 있었다. 여한이 없다. 조 선생님은 진정한 프로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는 집요함을 배웠다.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는 스테디셀러다. 케이윌의 ‘이러지마 제발’도 그렇고. 빵~ 터지는 것보다 소리 없이 오래가는 곡이 더 소중하다.”

 - 아이돌 가수와 있을 때랑 다른 점이 있다고 느껴지나.

 “연륜이 있는 분들과 할 때 더 재미있다. 노래도 쉽게 써진다. 배우 송강호와 작업하는 감독의 느낌이 그렇지 않을까. 발음·감정 등 디테일을 다 알아서 살려주신다. 최백호 선생님과도 함께한 적이 있는데, 꽃중년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정말 멋있었다. 나훈아·김창완 선생님도 만날 기회가 있다면….”

 - 요즘 아이돌 중 인상적인 가수가 있다면 누구일까.

 “아이유다.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잘되면 작곡가나 스태프에 공을 돌리고, 잘 안 되면 자기를 돌아본다. 자존감이 크고 피해의식이 없다. 어린 나이에 내공이 탄탄하다. 성숙하다. 제가 되레 많이 배웠다.”

 - 음악적 기초는 어떻게 닦았나.

 “작사가가 돼야겠다는 꿈은 없었다.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피아노 기초를 배운 정도다. 그냥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노래를 줄곧 들어 왔다. 작곡가별로 자료를 정리했다. 이동통신사에 벨소리를 납품하는 회사에 다닐 때 김형석 작곡가를 만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3년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했다. 당시 처음 받았던 저작권료가 6만원이었다.”

 - 문학적 훈련이 필요한 일 아닌가.

 “시나 소설을 따로 쓴 적이 없다. 대학에선 미술사를 공부했다. 굳이 따진다면 어려서부터 읽는 걸 좋아했다. 일종의 중독 같았다. 치약 설명서도 끝까지 읽었으니까. 문학전집·과학전집 등을 두루 접했다. 일기장에 종종 나만의 이야기를 지어 쓰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좋은 노랫말의 조건이 있다면.

 “작사가는 보통 3분 안에 제한된 자수로 남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복화술사다. 진보적 대통령을 위해 연설문을 써주는 담당관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는 보수적이다. 만약 그가 자기 성향에 맞는 단어로 글을 쓴다면 대통령이 빛나겠는가. 또 설득력이 있겠는가. 초보 작사가는 우아한 글을 쓰려고 한다. 현실은 구질구질하고 볼품없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발라드는 공격수, 댄스곡은 수비수인 이유

“축구를 좋아하나요.” 기자가 물었다. “아닌데요. 그다지.” 김씨가 되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발라드는 공격수, 댄스곡은 수비수라는 책 속의 비유가 재미있어서요.” 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생각해도 기막힌 표현인 것 같아요. 하하하.”

 전문작사가라면 ‘토털 사커’에 능해야 한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장르에 따라 가사를 붙이는 기법에선 차이가 날 수 있는 법. 김씨는 “발라드에선 작가로서의 나래를 더 펼칠 수 있는 반면 댄스곡에선 작가의 자아를 최대한 죽여야 한다. 발라드가 공격수, 댄스곡이 수비수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발라드를 의뢰받았을 때 조금 더 행복하다고 했다. 음악 팬들이 가사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게 있다. 튀는 발음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고음을 길게 끄는 부분에서는 받침이 없을수록 좋고, ‘아’ ‘어’ 등 목을 최대한 열 수 있는 발음을 넣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수마다 고음 내기 쉬운 발음이 각각 달라 녹음 현장에서 그때그때 가사를 수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댄스곡의 생명은 리듬감이다. 곡의 흥을 끌어올려야 한다. 김씨는 “가사를 ‘읽을 눈’을 의식해 리듬을 수비하기보다 감정을 공격하는 데 치중하면 곡을 망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전문 작사가와 초보 작사가가 구분되는 영역이 댄스곡이다. 테크닉을 많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 그럴듯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권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