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후락 79호실·정보연구위 정보부 만들 때 참고 안 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출범 전에도 국내에 정보기관은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국방부 ‘79호실’과 장면 정권의 총리실 직속 ‘중앙정보연구위원회’다. 두 기관 모두 책임자가 이후락(1924~2009·사진)이었다. 이후락은 일본 항공하사관 특별 간부후보생 출신으로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임관했다. 79호실의 탄생은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설치(1958년 봄)와 관련 있다. CIA와 정보를 교환할 우리 측 기관이 필요했다. 58년 여름 국방장관 직속기관으로 ‘중앙정보부’를 급히 조직했다. 책임자로는 주미대사관 무관 근무(55~57년) 이후 보직이 없던 이후락 준장을 앉혔다. 장교 20명과 하사관 20명으로 구성됐다. 주 업무는 미국 측으로부터 받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 명칭은 이후락의 제안으로 ‘79호실’로 바뀐다. 이후락 자신의 군번(10079)을 따서 붙였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15> 한국판 CIA의 출범
5·16 거사 이전 정보기관

 60년 정권이 바뀌면서 79호실은 해체됐다.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정보기관으로 중앙정보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국무총리실 직속 기관이었다. 이후락은 61년 1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고 이 조직의 연구실장(차관급)을 맡았다.



 몇 달 뒤 중앙정보연구위는 5·16으로 인해 해체된다. 김종필(JP)은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면서 중앙정보연구위 조직을 인수하거나 참고하지 않았다. “(이후락이) 정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장면 총리가) 옆에 놓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보기능이 아니라 사적인 활동 수준이었다 ”는 게 JP의 증언이다. JP의 중앙정보부가 이후락의 중앙정보연구위를 흡수해 설립됐다는 기존의 관측과 해설은 틀렸다는 것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