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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호스피스가 죽으러 가는 곳인가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가까이 근무하는 선배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암투병 중인 노모가 더 이상 치료하기 어려워 호스피스기관으로 옮기고 싶은데 어디가 좋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선뜻 추천할 만한 곳이 드물고, 있다고 해도 대기환자가 많아 입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는 “너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기에 번듯하게 소개해줄 호스피스기관도 없다는 거냐”며 질책하는 것 같아 낯이 뜨거웠다.

 한국에 호스피스가 들어온 지 50년이 되었고 호스피스 일을 한 지도 25년이 되었건만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 못해 죄책감이 든다. 정부는 1일 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입원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일당정액수가를 7월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완화의료 수가만으로는 C급 수준인 우리의 죽음의 질을 높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건강보험수가가 상향 조정됐다 하더라도 상급종합병원들이 호스피스 병실을 증설할 수는 없다. 당초 자선 차원에서 시작했던 기존 기관들의 호스피스 병실은 열악한 환경에다 제도화가 미루어지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 오고 있다. 응급의료센터나 심뇌혈관질환센터처럼 권역별 센터 건립 등 종합대책이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선의의 공급자들을 유인하기에 부족하다.

 호스피스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는 암 말기 진단의 초기다. 그러나 그 적절한 시기에는 이용하지 못하고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서나 겨우 의뢰되어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뢰된 환자의 3분의 1이 1주일 이내, 절반이 2주 이내 숨진다. 정부가 2015년까지 2500개의 병상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적자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호스피스기관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호스피스 정신과 원칙을 내팽개치고 단지 돈을 노린 의료기관들이 발 빠르게 움직여 저질의 호스피스기관을 양산하는 부작용이 초래될 우려가 적지 않다. 이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재앙은 이미 요양병원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그런 학습효과를 되새기며 호스피스 수가 차등화와 재정적 지원방안을 통해 철저한 질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정부가 제시한 수가 구조가 완화의료에 대한 원칙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스피스는 완치를 위한 의료와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질병보다는 환자와 가족을 중심으로 통증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뿐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영적인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돌보는 것이다. 완화의료 전문 의사와 함께 사회복지사·성직자·영양사·약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똑같은 입원기간 동안 적극적 항암치료를 한 쪽의 진료비가 호스피스를 받은 암환자군 진료비의 2.5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호스피스가 월등히 적은 진료비를 쓴 것이다. 미국 보건의료재정청이 26개 호스피스기관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에서도 호스피스 환자는 비(非)호스피스 환자에 비해 임종 전 1개월 동안 투입된 비용이 약 46% 적었다. 대만의 경우도 호스피스가 사망 1개월 전 의료비용의 64%를 줄였다.

 죽음이 임박하면 고가의 진단검사와 연명의료 사용이 급증한다. 이러한 의료행위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환자의 고통과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킨다. 호스피스는 불필요하게 고가의 검사를 하지 않으며 항암제나 심폐소생술처럼 죽음의 질을 악화시키는 공격적인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 반면 다양한 전문 인력이 환자 중심의 인간적인 케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면서 죽음의 질을 높인다.

 셋째, 구체적인 대상자가 말기 암환자로 국한돼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치매·만성신부전·만성호흡부전·만성심부전 등 다른 말기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요구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2002년 정부가 호스피스 제도화를 처음 발표할 당시에는 다른 질환을 포함할 여건이 아니어서 대상자가 말기 암환자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매우 높아졌다. 따라서 다른 질환의 말기 환자들도 희망할 경우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설계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정부는 호스피스 수가를 단순히 말기 환자의 의료비용 절감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말기 환자의 죽음의 질을 높이는 안전망 구축에 투자해야 의료비용이 절감된다. 국민 모두가 편안한 환경에서 전인적인 의료서비스, 24시간 상담서비스, 가정호스피스, 가족의 사별관리 등 생애 말기에 필요한 적정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수가만이 아니라 말기진단 시점부터 조기에 양질의 차별화된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장기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이른 시일 내에 정부와 국회가 함께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 올바른 답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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