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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소통은 거리에 반비례한다

김진국
대기자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는데…. 최근 소통 논란이 가라앉는 걸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그렇게 답답했을까. 간단하지만 큰 변화다. 대통령의 입뿐 아니라 귀도 조금은 열렸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시작은 불안했다. 특보를 임명할 때는, 그렇게라도 시중의 소리를 들으려나 보다, 기대했다. 그런데 수석비서관 회의에 함께 앉혔다. 회의 말미에 “한 말씀 하시라”고 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게 반복되니 특보들의 의욕이 떨어졌다. 다양한 정보와 자료로 준비한 보고에 무어라고 입을 댈 건가. 대통령 앞에서 수석의 고유 영역을 건드리는 것도 부담백배다. 특보들은 어떻게 처신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바로 고쳐졌다는 점이다. 귀를 열고 있다는 증거다. 박 대통령이 특보들을 따로 만났다. 비공개 회의도 하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들러리가 아니라 정말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노력으로 비쳤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도 만났다. 이병기 비서실장도 부지런히 소통의 길을 열었다. 고위 당·정·청 회의, 비공개 야간회동, 여당과 야당 원내지도부 회동…. 청와대가 귀를 닫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라졌다.

 소통은 모든 정권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권력이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다. 그만큼 권력자에겐 귀찮고 괴로운 일이다. 시간 낭비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서로, 보고서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 대통령이 굳이 바쁜 국정을 미뤄두고 해외 출장을 가는 이유가 뭐겠는가. 문서만으로, 대사라는 대리인만으로 풀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화가 부족한 장관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만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중점 추진할 것인지. 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 일일이 문서로 보고하게 된다. 한 장이면 될 일을 책으로 만들어 올린다. 대통령은 또 숙제하듯 그걸 읽느라 밤을 새우고, 대면할 시간은 더 모자라게 된다. 그런 보고서를 밤새 읽어도 잠시 만나 이야기하느니만 못하다.

 대통령이 관저로 가져가는 보고서를 줄이도록 이병기 실장이 정리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수석들에게 대면 보고를 자주 하라고 종용한다는 이야기도 신선하다. 소통은 사람의 문제면서 공간배치의 문제다. 이 참에 공간배치도 검토했으면 좋겠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1993년 ‘복합화’를 주장했다. 삼성을 뒤집어놓은 프랑크푸르트선언에서다. “내가 저 호텔에서 차를 타고 고속도로 오는데 10~20분이 걸렸다. 한 곳에 모든 임직원이 모여 산다면 40초 만에 모일 수 있다. 이게 바로 경쟁력이다. 물류비용이 줄고 경영 스피드가 제고된다. 교통체증도 없어진다.” 해외 매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삼성제품을 최고 브랜드로 만든 전략 가운데 하나다.

 백악관에서는 바로 옆방에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비서동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야 한다. 심리적 거리감은 비교도 할 수 없다. 기업들은 10분, 20분을 아끼기 위해 혁신을 한다. 1분이면 기업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연평도 포격 같은 긴급사태가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분단국가다. 국토가 몇 배나 넓은 나라보다 대통령을 만나는 길이 훨씬 더 멀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자금성의 수많은 문과 길고 복잡한 통로가 만드는 위압감이 아니었다. 다음 정부를 위해서라도 소통을 위한 청와대의 설계도를 그려놓아야 한다.

 더 답답한 것은 세종시다. ‘차로 10~20분’도 아니다. ‘2~3시간’이다. 10분이면 급하게 일정을 조정해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2~3시간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서는 며칠 전에 예고하지 않으면 회의 한번 소집하기 어렵다.

 매일 2000명 가까운 공무원이 출퇴근 버스를 탄다. 4~5시간을 길에서 버린다. 장관은 절반을 서울에 머문다. 국·과장도 국회와 다른 기관을 간다며 자리를 비우기 일쑤다. 기강이 설 리 없다. ‘길 위의 과장’ ‘프리랜서 과장’에 ‘사라진 김 과장’이라니…. 이런 비효율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길 기대할 수 있나.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에 매일 80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세종시로 인한 낭비가 돈으로 따지면 그보다 적을까.

 세종시를 이제와 취소하기도 어렵다면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위헌 결정 때문에 당장 옮기는 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별도 집무실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이 수시로 내려가는 게 장관이 자리를 비우고 서울에서 맴돌게 하는 것보다 낫다. 공무원을 부르기보다 국회가 가는 게 맞다. 필요하면 개헌도 검토해야 한다. 이런 비효율을 지속할 만큼 그렇게 여유롭고 한가한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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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