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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싱가포르를 위한 변명

채인택
논설위원
지난주 싱가포르는 국부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의 국장을 치르면서 새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112달러로 세계 8위라는 데 놀랐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함께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던 나라가 어떻게 이런 부자 나라가 됐느냐는 이야기였다. 지난해 2만8739달러를 기록한 한국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살펴보니 싱가포르는 이미 2006년 3만 달러, 2010년 4만 달러 시대에 각각 진입했으며 2011년부터 5만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결정적으로 엇갈린 대목은 2004년 이후 새로운 전략을 채택해 경제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었으며 금융업·서비스업·관광업·컨벤션산업 등을 일궈 제2의 도약을 이뤘다는 점이다. 제2의 도약은 정부가 주도했다. 불황으로 2001년 성장이 2.2%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자 그해 12월 통산산업부(MTI) 산하에 경제검토위원회(ERC)를 설립해 대책을 마련했다. 위원회는 2003년 2월 단기 대처 방안과 향후 15년간 적용할 장기전략을 각각 제시했다. 장기전략의 핵심은 국가정책의 방향을 ‘효율’에서 ‘혁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해외 투자 유도, 기업가의 도전·창조정신 함양, 제조업·서비스업 혁신, 인재 양성 등 5대 전략이었다. 한국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점은 싱가포르는 이를 행동으로 옮겨 성장세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2004년 8.3%, 2005년 6.4%, 2006년 7.9%의 높은 성장을 이뤘다. 2009년 잠시 0.8%로 떨어졌으나 2010년엔 14.8%의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2011년 세계적 경기침체에도 5.2%의 성장을 이뤘다.

 경제 발전은 깨끗할 뿐 아니라 혁신적이기까지 한 공무원이 주도한다. 흔히 ‘정부 주도’라면 비효율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오히려 안전성·효율성과 동의어로 통한다. 특유의 공직 시스템 덕분이다. 공무원은 공기업이나 각종 위원회·협의회 등 특수부서 근무자와 정규 부서에서 일하는 행정공무원으로 나뉜다. 특수부서 근무자는 민간기업 직원처럼 유연하게 사고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면서 미래 비전과 혁신 전략을 수립하는 ‘주식회사 싱가포르 기획실’ 직원이다. 행정공무원은 국가 전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책임지는 ‘관료형’ 공직자다.

 이들이 가장 일관성 있게 유지해온 것이 기업과 부자에게 관대한 정책이다. 법인세는 주요 국가 최저 수준인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5.9%보다 한참 낮다. 프랑스가 부자증세를 위해 75%까지 높이려다 포기한 최고 소득세율이 이 나라에선 20%에 불과하다.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가전략의 일환이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 7000여 개, 중국계 기업 1500여 개, 인도계 1500여 개가 아시아 본부나 글로벌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낸 중국 스마트폰업체 샤오미가 글로벌 영업본부를 싱가포르에 설치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어서다. 이렇게 유치한 외국 기업은 일자리의 44%를 제공해 실업률을 2%로 유지하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

 물론 싱가포르도 사회문제가 적지 않다. 홍콩과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가계수입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최저임금제도도 도입하지 않았을 정도다. 보편적 사회보장 시스템도 없다. 정부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테니 생계는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한 싱가포르 친구는 “한국인들은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싱가포르인들은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지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에 익숙하다”고 귀띔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비즈니스를 성공시켜야 하는 철저한 ‘능력주의’ 사회 풍토가 엿보인다. 최근 극빈층 의료보호제도가 생기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한다.

 경제성장과 사회 변화 등 한국과 싱가포르는 비교되는 게 한둘이 아니다. 민주화와 사회 발전에선 한국이 앞섰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나름의 비전으로 미래 생존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떤 구체적인 생존전략으로 미래를 개척하려 하는가.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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