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반말은 죄가 없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최근 온라인 세상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 하나는 20대인 두 여자 연예인의 욕설-반말 논란이다. 처음엔 나이 많은 여자 선배가 오락 프로그램 촬영 중 나이 어린 여자 후배에게 뜬금없이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참 욕을 먹더니, 뒤늦게 당시 촬영 영상이 공개되며 상황이 역전됐다. “아니, 아니”라는 후배의 반말이 문제였다. 누군가는 단순히 반말 때문만이 아니라 이 말 뒤에 나온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라는 후배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가 듣기 거북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반말을 해놓고도 하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게 잘못이라고 마치 자기가 당한 일처럼 열변을 토한다. 이른바 ‘이태임-예원’ 논란이 빚어낸 풍경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든 숱한 네티즌의 공분을 자아낸 출발점은 결국 후배의 ‘버릇없는’ 반말이었다. 세 살 많은 언니에게 “아니, 아니”라고 말을 좀 짧게 한 죄로 이 후배 연예인은 여론재판에서 이미 유죄를 선고받고,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까지 몰려 있다.

 나이 차이가 훨씬 많이 나는 이웃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뭔가 충고라도 할라 치면 속으로 ‘꼰대’라고 욕하며 기분 나쁜 표정을 숨기지 않는 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다. 나이 많다고 존중하기는커녕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인 줄 아느냐”며 대놓고 반발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그런데 고작 세 살 위 언니에게 혼잣말 비슷한 반말 좀 했다고 이렇게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다니,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부에선 “반말은 칼부림 살인까지 불러올 만큼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민감한 이슈”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서열과는 또 다른 폭발력 강한 이슈인데, 이를 이 후배 연예인이 잘못 건드렸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후배가 반말을 해서 선배한테 욕을 얻어먹는 건 아무리 여기에 연루된 인물이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엄밀히 말해 당사자끼리의 문제지 남이 잘잘못을 따질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반말은 죄가 없다. 본질은 많은 사람이 다른 이의 곤경을 그저 오락처럼 즐긴다는 데 있다. 솔직히 지금 같은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으면 누가 반말을 했는지 욕을 했는지 알 수도 없을 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시콜콜 들여다보고, 또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훈수를 두며 마치 TV 오락 프로그램 보듯 그저 즐기는 것이다.

 20세기 초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는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에서 ‘여론은 언제라도 사적인 형벌이며 사적인 형벌은 또한 언제라도 오락’이라고 했다. 거의 한 세기 전 말인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많은 이가 SNS 감옥에 갇혀 사는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들어맞는 얘기 아닐까.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