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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칼럼] 선비의 노래 ‘가곡’을 자연의 숨결로 터치

강권순(46)의 여창가곡 음반 ‘천뢰, 하늘의 소리’.
‘가곡’이라고 하면 슈베르트가 떠오른다. 서른 한 해 짧은 삶에 1000곡 가까운 음악을 쏟아냈는데 그 중 600여곡이 가곡이다. 우리말로 가곡이라고 부르는 리트(Lied)는 노래와 시가 결합한 것으로 독일어권에서 특히 발달한 장르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비롯해 슈만·브람스·볼프가 피아노 반주 곡들을 썼고, 낭만 후기에는 슈트라우스·말러가 관현악 반주의 확대된 작품을 썼다. 프랑스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도 “리트는 게르만적 정수를 띠기 때문에 독일만의 장르로 남을 것”이라고 양보했다.

[an die Musik] 여류 가객 강권순

그런데 한국에서 가곡(歌曲)을 단지 리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랜 역사를 이어 온 우리 음악이기 때문이다. 멀게는 고려의 ‘정과정곡(鄭瓜亭曲)’에 뿌리를 두고 있고 늦춰 잡아도 18세기 초 『청구영언(靑丘永言)』이 나왔을 때 오늘 날 연주되는 가곡의 틀이 잡혔다.

본 지면 칼럼에서 여러 필자가 독일 리트를 가곡으로 불렀을 때 전통가곡을 하는 분들이 항의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홍난파가 ‘봉선화’ 등 서양풍 음악을 발표하면서 가곡이라는 명칭을 가져갔으며, 그것이 계기가 돼 오늘날 가곡이 서양 성악곡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긴 하나 일반대중을 독자로 하는 신문이 ‘슈베르트’하면 ‘가곡’이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본 란에서는 우리 가곡의 이름을 돌려드리고, 독일 리트는 리트로 쓰겠다고 약속드린다.

고백하자면, 우리 가곡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에야 처음으로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1980년대 중앙일보가 발매한 국악음반전집 ‘국악의 향연’을 가지고 있다. LP 50매로 구성된 전집에는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명연주가 그득하다. 정광수의 ‘수궁가’, 박봉술의 ‘적벽가’, 박녹주의 ‘흥보가’ 등 전설적인 판소리 명반들과 신쾌동의 거문고, 박귀희의 가야금 병창, 그리고 여러 정악, 속악이 망라돼 있다. 기름진 음식에 물리면 냉면을 찾듯이 서양음악을 듣다가 가끔 꺼내 듣곤 했다. 그러나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진 못했다. 어떤 음악인가 싶어 ‘가곡’도 턴테이블에 올렸지만 한 면을 채 듣지 못했다. 틀이 잡힌 음악, 속도감 있는 음악에 길들여진 귀에 흐트러진 느낌에다 호흡이 긴 가곡은 지루하기만 했다.

인간문화재 고 김월하(1918~96) 명창.
계기는 지인이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강권순의 ‘산천초목’이라는 노래였다. 라디오에서 듣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나는 몰랐지만 강권순은 명성이 자자한 여류가객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 기념음악극 ‘고려의 아침’에 주연으로 출연했다는데 한국팀 경기에만 열광했지 그런 행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사람 목소리가 어떻기에 소름까지 돋는가.

‘산천초목’이 수록된 음반을 간신히 구했다. KBS FM 국악프로그램 ‘풍류마을’에서 인기 있는 신청곡을 모아놓은 CD다. ‘산천초목’은 제주민요를 조영배가 편곡한 것인데 강권순이 부르며 유명세를 탔다. 7분 남짓한 노래를 들으며 왜 소름이 돋는다고 했는지 이해했다. 선율은 한라산 아래 오름들을 닮아 소박한 곡선을 그렸지만 그녀의 울대가 토해내는 소리는 백록담 위 창공까지 뻗었다. 하늘을 울리는 자연의 숨결이었다. 나의 뮤즈들인 군둘라 야노비츠, 엘리 아멜링, 크리스타 루트비히가 일순 빛을 잃었다. ‘동백꽃은 피었는데 흰 눈은 왜 오나. 한라산 선녀들이 춤을 추며 내려온다’고 노래하는 마지막 부분을 듣고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쁨을 맛봤다.

강권순의 진면목을 알고 싶으면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그는 조선 선비들이 사랑하던 가곡의 맥을 잇는 예술가이므로 가곡 한 바탕 전체를 그의 연주로 들어보아야 한다. 가곡은 전통적인 실내악인 세악(細樂)편성을 갖추고 부르는 노래다. 가야금·거문고·해금·대금·피리·장구·단소가 동원된다. 높은 수준의 격식을 갖춘 장르인데 남자의 나라 조선에 묘하게도 남창가곡과 여창가곡이 따로 있었다. 강권순은 여창가곡에 삶을 바친 소리꾼이다.

다행히 음반이 있다. 제목이 ‘천뢰(天籟), 하늘의 소리’다. 2004년 정월 국립국악원 연습실에 피리의 정재국 등 중요무형문화재와 명인들이 모여 녹음했다. 강권순은 자신의 예술을 기록으로 남기는 녹음을 결심하고도 무려 3년을 미루고 또 미뤘다. 최상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마침내 그와 정악 원로들이 마주 앉자 녹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쉬지 않고 연주해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15곡 한 바탕을 불과 일곱 시간 만에 끝냈다. 일부 끊어 녹음하기, 반복 연주는 없었다고 한다. 명반은 그렇게 탄생했다.

마음을 여니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흐트러진 소리라고 느꼈던 것은 음표가 상하좌우로 물결치는 미묘함으로 다가왔다. 화성을 채택한 서양음악에서는 음표는 자기 자리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지루하다는 생각은 호흡법을 어찌 연마하기에 저렇게 길게 끌 수 있는가하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햇살이 일곱색으로 퍼지는 느낌, 느림의 미학, 부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몰아의 경지에 접어들게 하는 기교를 가곡에서 발견했다.

강권순의 스승은 고(故) 김월하 명창이다. 한 번도 듣지 않은 선생의 LP 레코드에 바늘을 내린다. 제14곡 계면조 편수대엽, 일명 꽃노래.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요~.’ 놀랍다. 뚜렷한 낙차, 선명한 소리 결. 왜 ‘월하 이전에 월하 없고 월하 이후에 월하 없다’고 했는지 알겠다. 스치듯 들은 ‘산천초목’으로 강권순을 알고 여창가곡, 김월하까지 이어졌다. 25년간 무심히 바라보던 『국악의 향연』이 노다지 광맥인줄 이제야 알았다.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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