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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도 이중섭도 그가 있었기에 빛났다

“1970년 4월 4일, 그것도 오후 4시였어요.”

개관 45년 …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

45년 전을 반추하는 박명자(72) 갤러리현대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렵했다. 1959년 서양화가 이대원(1921~2005)이 인수해 운영하던 반도화랑에서 61년부터 일하며 작가와 작품 보는 안목을 길러온 숙명여고 출신의 ‘미스박’은 관훈동 7번지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시어머님이 ‘한국화랑’이라는 이름을 받아오셨는데,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풍곡 성재휴 선생님이 하루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현대화랑’이라고 지어주셨는데 프레시하게 느껴졌죠. 일중 김충현 선생이 현판을 써주셨고, 건물은 재주많던 판화가 배륭 선생님이 고쳐주셨어요.”

70년 이전 서울에 있던 상업 갤러리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갤러리는 없다. 갤러리현대가 한국 현대미술사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유다. ‘현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박 회장은 동시대성을 추구했다. 개관기념전에서는 윤중식, 도상봉 등 서양화가 21명과 동양화가 18명, 서예가 2명의 작품 41점을 선보이며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좌표를 찍었다.

73년에는 계간미술지 『畵廊』도 발간했다. 창간호 표지는 천경자의 꽃과 미인 그림. 전통 회화가 지배적이던 당시 미술계 풍토에서 그는 유화나 젊은 작가들 작품에 초점을 맞췄다. 창간호에서 박 회장은 “작가와 대중과의 중개자로서의 저널리즘의 역할은 작가의 창조작업을 자극하며 대중에겐 올바른 미술계의 길잡이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자임했다.

현재 갤러리현대 본관이 있는 사간동 122번지로 옮긴 것이 75년. 계기는 고암 이응노 화백과의 편지였다. “고암 선생님은 공간이 이러이런 정도는 돼야 본인 전시를 할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조각가 김정숙 선생님 소개로 당시 개천 옆에서 3년간 안 팔리던 땅을 싸게 살 수 있었죠.”

당시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과 이중섭(1916~1956)을 소개한 것도 박 회장이었다. 1세대 추상화가인 김환기(1913~1974)와 유영국(1916~2002)의 전시도 기획했다. 문자 추상의 선구자로 꼽히는 남관(1911~1990), 단색화의 기틀을 마련한 곽인식(1919~1988) 등 추상회화 작가들과도 부단한 교류를 통해 인연을 맺어왔다.

개관 45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의 추상화전’(3월 25일~4월 22일)은 그래서 뜻깊다.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18명의 작품 60여 점을 본관과 신관에서 함께 진행한다. 박 회장과 인연을 맺은 컬렉터들로부터 대부분 빌려온, 쉽게 보기 힘든 귀한 작품들이다.

“이 중 살아계신 분이 여덟 분밖에 안 계세요. 한묵 선생님이 백 한 살로 제일 많으시고, 김창열(86)·서세옥(86)·박서보(84)·정상화(83)·하종현(80)·이우환(79)·김기린(79) 선생님이 계시죠. 정상화 선생님이 둘러보시고 ‘미술관에서도 보기 힘든 전시’라고 칭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2000년부터 돕고 있는 도형태(46) 부사장과 함께 지금 박 회장이 정성을 쏟는 일은 두 개의 지방 전시다. 강원도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이 지난해 개관한 박수근 파빌리온 개관 기념전(10월 11일까지), 제주도 이중섭 미술관에서 시작된 ‘갤러리현대 기증전’(6월 28일까지)이 바로 그것.

“양 전시 모두 저희 소장품을 50여 점씩 내놓았어요. 우리 미술계에 안타까운 점이 기증 문화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기증 문화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어요.”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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