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일당 독주 체제에 브레이크 기로에 선 ‘싱가포르 모델’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타계로 싱가포르가 슬픔에 빠졌다. 28일까지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빈소에는 조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조문 행렬이 지나치게 길어지자 싱가포르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줄을 더 이상 서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장례식은 29일 거행된다. [AP=뉴시스]
●리콴유 전 총리는
1923년 싱가포르의 부유한 화교 가정에서 출생

리콴유 떠난 싱가포르, 어디로 가나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과 입학
1950년 변호사 자격 취득하고 귀국
1954년 인민행동당(PAP) 창당
1955년 의회의원 당선
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로 취임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에 싱가포르 편입
1965년 싱가포르 독립
1967년 싱가포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창설 회원국으로 가입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나고 내각 자문역으로 활동
2004년 장남 리셴룽 총리 취임하자 멘토 장관으로 자문 지속
2015년 3월 23일 타계
[정치]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권위주의 통치를 기반으로 민주화와 정치 발전을 억누르고 경제 성장을 이룩한 국가 발전 형태를 말한다. 흔히 경제 성장에 따라 민주화도 함께 진전된다지만 싱가포르는 예외로 평가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국식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서구 민주주의의 이식을 거부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하며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李顯龍·63) 총리가 ‘싱가포르 모델’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가 포인트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000달러(약 6200만원)였다. 아시아 1위, 세계 8위다. 싱가포르는 이미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 있다. 싱가포르의 민주화 수준은 그에 못 미친다. 서구에선 싱가포르를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또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교수는 생전에 “싱가포르의 정직과 효율은 리콴유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중국·러시아 등 비서방 국가들은 리콴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별세하자 중국 언론들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구해야 할 국가 발전 모델이 바로 싱가포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공산당 일당독재와 경제 성장의 양립을 부각시킨 셈이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도 “기적을 일궈 낸 싱가포르 모델은 서구보다 아시아와 러시아,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국가들에는 모범이 된다는 것이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싱가포르가 변화의 기점에 이르렀다는 시각은 공통적이다. 지난 25일 키쇼어 마부바니 전 유엔 주재 싱가포르대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는 변곡점에 서 있다. 젊은 층은 기성 세대가 이룩한 성장과 안정에 감사하고 있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 통치는 널리 알려져 있다.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견을 내기 어렵다. 시민들도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공중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 정도다. 최근 싱가포르 대법원은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블로거에게 벌금 5800달러를 부과했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국제적 추세와는 다른 방향이다.

 배경에는 강력한 일당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1965년 독립 이후 70년대까지 야당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야당은 81년 보궐선거에서 첫 의석을 차지했고 91년 총선에선 전체 81석 중 4석을 얻었다. 의회 권력은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의 독점 상태다.

 그러다 2011년 총선에서 심상찮은 바람이 불었다. PAP가 87석 중 81석, 야당인 노동당(WP)이 6석으로 의석 분포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득표율이 문제였다. PAP는 역대 최저인 60.1%를 얻는 데 그쳤다. 유권자의 불만이 표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싱가포르 정치사의 대형 사건으로 기록된다. 국민적 불만을 의식한 싱가포르 정부는 그 뒤 고위 공직자들의 거액 연봉을 왕창 깎았다. 총리는 28% 삭감, 대통령·국회의장은 반 토막을 냈다.

 유진 탄 싱가포르경영대 교수는 “일당 독주체제가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기가 문제지만 향후 양당 또는 다당체제로 변화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치 지형이 앞으로 더욱 다원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의견의 분출을 막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싱가포르 국민도 정부 통제를 받는 기존의 언론보다는 인터넷에 더 관심을 보인다.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더디플로매트는 “리콴유의 후계자들이 과거와 같은 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원주의적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싱가포르 민주화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다음 총선은 2017년 1월로 예정돼 있는데 앞당겨질 수도 있다. PAP가 리콴유에 대한 정치적 향수를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PAP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유진 탄 교수는 “이젠 정부가 국민을 이끌고 가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등장할 때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80년대처럼 격렬한 민주화 바람이 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집권당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집회나 시위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변창구(정치외교학) 교수는 “싱가포르 국민의 경제 성장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며 “개혁을 갈망하는 세력은 야당 정치인이나 일부 지식인에 국한돼 있어 싱가포르에서 거센 민주화 바람을 기대하긴 당분간 어렵다”고 했다.

[경제]
싱가포르는 독립 당시 미래가 암울한 동남아의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다. 좁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경제 발전을 이끌 인재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여건에서 싱가포르가 국제적인 도시국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자유경제의 허브(hub)’ 전략이 주요했다. 지정학적으로 믈라카해협을 끼고 있는 싱가포르엔 최선의 선택이었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리콴유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추진했다. 이는 사회주의적 요소도 가미한 것”이라며 “그 결과 항공·물류·금융·정유산업의 중심지로 급성장하는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외국자본 유치를 꼽는다. 싱가포르는 건국 초기부터 과감하게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해 관세·법인세를 면제했다. 서구 기업들이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해 준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자본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기득권 없는 경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적인 무역도시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도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94년 ‘아시아 경제기적의 신화’라는 논문에서 “정부 주도로 고성장을 해 온 아시아 신흥국들의 잔치는 곧 끝난다”고 전망하면서 싱가포르도 그에 포함시켰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요소 투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크루그먼은 그런 논리로 싱가포르를 스탈린 시대의 소련 경제에 비견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현재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큰 산업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바이오산업 외에도 디자인 분야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9년에는 네 번째 국립대학인 싱가포르기술디자인대(SUTD)를 세웠다. 카지노사업도 합법화했다. 카지노 허용으로 막대한 외자를 유치했으며 간접고용까지 따지면 6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했다. 싱가포르는 특유의 실용주의를 내세워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산업과 21세기형 서비스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2.96%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올 3.04%로 예상된다.

 싱가포르는 중국을 활용하는 전략에도 적극적이다. 제조업 대국인 중국과의 직접 경쟁을 피하는 대신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국민대 국제학부 은종학(경제학) 교수는 “싱가포르는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으면서 제품에 세련된 디자인 등을 가미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중국과의 과학기술 교류와 도시설계 기술 전수 등을 통해 경제 협력도 강화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또 싱가포르국립대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소(EAI)는 중국의 실질적인 ‘역외 싱크탱크’다. 연구 과제의 80% 이상이 중국과 관련된 것이다. EAI 보고서는 베이징 최고지도부에 직접 보고된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싱가포르의 고도성장엔 그늘도 짙다. 극심한 빈부 격차 때문이다. 지니계수는 2013년 0.478로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또 전체 인구의 10~12%가 월 최저생계비 1400~1500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1000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다.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지난 2월 상위 5%의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20%에서 22%로 인상했다. AP통신은 “싱가포르의 저소득층이 계속 늘어날 경우 사회적 안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빈부 격차 해소가 싱가포르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전했다.

[외교]
싱가포르 대외정책의 핵심은 철저한 실리주의다. 리콴유의 철학이다. 싱가포르는 다자주의 안보 시스템이라는 틀 속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노선을 걷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양강구도 속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을 통한 안보 확보가 그 핵심이다. 세부적으로는 이웃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선린 관계 유지, 아세안 창립 회원국으로서 입지 강화, 지정학적 요충지인 믈라카해협 연안국으로서 해양안보 확보 등이 대외정책의 근간이다.

 믈라카해협은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로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개입과 이를 약화시키려는 연안국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는 미국과 중국을 모두 활용하는 ‘용미용중(用美用中)’ 전략을 쓰고 있다. 2012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간 영유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막후에서 미국을 끌어들인 것도 싱가포르였다. 하지만 그 무렵 싱가포르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했다.

 이 같은 ‘용미용중’은 리콴유의 과거 행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72년 미·중 국교 정상화 교섭 때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조언해 주는가 하면,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주석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조언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60~70년대 동남아에 공산주의 물결이 거세게 일 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하지만 중국을 33차례나 방문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이 같은 리콴유식 실리외교의 틀을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강대국과 강력한 동맹을 맺는 양자주의 대신 다자주의를 추구하는 싱가포르의 실리주의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힌 다자주의가 양자주의보다 강대국에 의한 주권 손상 없이 안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싱가포르가 군사력에 비해 별다른 외세의 위협 없이 지난 50년간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전략 덕분이다.

 변창구 교수는 “싱가포르의 생존 전략은 위험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헤징(hedging)으로 요약된다”며 “앞으로도 역내에선 다자간 안보 협력구조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미국을 끌어들이고 반대의 경우 중국과 밀착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AP통신 등 서구 언론들은 “중국과의 경제적 밀착으로 인해 미·중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것이 리셴룽 정부가 직면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유교 전통을 가리키는 말. 한국·싱가포르 등 고도성장을 이룬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권위주의 통치를 합리화할 때 흔히 사용한다.

중진국 함정 개도국이 중진국 단계에 접어든 뒤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에 빠지는 현상. 인건비와 토지비용의 상승,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