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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 <11> 박상복이 남긴 의문의 한마디

일러스트=오은우




도전! 프로파일러

박상복에게서 알아낸 새로운 단서 ‘고우니 화장품’



이무중 검사 피살사건의 해결에 기여한 공으로 아이들에게 ‘모범 시민 표창’을 수여하는 엄숙한 행사가 제주지방경찰청장실에서 열렸다. 아침 회의를 마친 청장과 차장, 그리고 각 과장 등 제주지방경찰청에서 가장 높은 경찰간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설록과 홍주·대홍·진혁 4명의 어린이에게 차례로 표창장과 상품이 수여됐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참석하는 거창한 행사에 잔뜩 긴장한 나머지 몸이 얼어붙어 대답도 잘 나오지 않았다. 청장님과 높은 간부들의 말씀도 마치 벌들이 귓가에서 앵앵거리듯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청장실 밖으로 나오면서 긴장이 풀린 대홍이는 다리가 휘청거리면서 넘어질 뻔했다. 높은 분들이 없는 경찰청 현관으로 나오자 아이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조 분석관은 빙긋이 웃으며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홍주와 대홍이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살인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는 엄청난 소식을 전했다.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이 넘쳐흘렀다. 진혁이는 보육원 원장님께 전화를 할까 생각해 봤지만, 다른 원생들 돌보느라 바쁘실 텐데 방해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그만두었다. 그에 반해 설록은 아직도 범인들의 범행동기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는 게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분석관님, 죄송하지만 몹시 어려운 부탁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래, 가능한 것이라면 들어주지. 부탁이 뭔데?”



“검거된 피의자들을 잠깐만 만나고 싶습니다.”



의외의 부탁에 조 분석관은 잠시 멈칫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피의자들은 지금 유치장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라서 본인들이 동의하면, 둘 중에 한 명만, 면회실에서 5분간 만나볼 수 있다는구나. 물론 투명한 창을 사이에 두고 말이다. 담당 형사가 피의자들에게 이야기를 해 본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 보자꾸나. 피의자들이 만나기 싫다고 하면 강제할 수는 없단다.”



“네, 고맙습니다, 분석관님.”



“그런데, 너희들 비행기 시간은 괜찮니?”



“네, 오후 2시에 출발하니까 아직 3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요.”



잠시 후, 걸려온 전화를 받고 통화를 마친 분석관이 설록을 향해 돌아섰다.



“피의자 박상복이 만나보겠다고 동의했다는구나. 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고 순경이 경찰서 유치장까지 안내해 줄 거야. 그럼, 우린 여기서 이별할까?”



대홍이는 ‘이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홍주 역시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이 찌푸려졌다. 진혁이는 괜히 센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 애썼지만 아쉬움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조 분석관도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마치 먼지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눈을 비볐다. 오직 설록만 전혀 변함없는 모습과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순간 고 순경이 현관으로 차를 몰고 왔기 때문에 어색한 이별을 서두를 수 있었다.





피의자 박상복과 마주한 설록



조 분석관에게 설명을 들은 고 순경이 제주 서부 경찰서로 차를 몰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록은 유치장 면회실에서 투명 아크릴 창을 사이에 두고 피의자 중 한 명인 박상복과 마주하게 되었다. 박상복의 뒤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앉아 대화 내용을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무중 검사님을 만나러 제주에 온 설록이라고 합니다.”



“네 이야기는 전해들었다. 아주 똑똑한 아이라면서?”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 당돌한 녀석이구나. 뭘 알고 싶은 거지?”



“이무중 검사님 집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오셨죠?”



“가지고 나온 것 없다고 이미 형사들에게 이야기했다.”



“초조본 아닙니까?”



박상복의 눈이 갑자기 커지고 입이 벌어지면서 몸이 뒤로 제쳐졌다. 그리곤 고개를 뒤로 돌려 대화 내용을 기록 중인 경찰관을 흘깃 쳐다봤다. 경찰관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늘 하던 대로 대화 내용이 들리는 대로 적어나갈 뿐, 내용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설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한 ‘초조본’이 국보급 문화재인 고려 대장경 초조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는 듯했다. 설록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약속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누구에게 전달하셨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상복의 표정은 이미 놀라움을 넘어 공포를 드러내고 있었다.



“너, 도대체 누구냐, 아니 뭐냐?”



“그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영문자 ‘M’이 들어있나요?”



“나도 이름은 모른다. 갑자기 날 찾아와서 돈을 주고 일을 시켰다. 폭력을 쓰거나 협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거역할 수 없게 하는 마력 같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나 초조본 이야기를 해 봤자 죄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나 법정에서 믿어줄 리도 없고, 혹시 보복당할까봐 두렵고.”



“어떻게 알았지? 내 마음이 바로 그렇다.”



“키나 체격, 얼굴 생김새, 말투 등 기억나는 대로 그 사람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정도, 그러니까 한 174, 5cm 정도에 마른 체격이고, 얼굴은 갸름하고 눈매가 아주 날카로웠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있는 반백이라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목폴라를 입었는데, 언뜻 목 부분에 아주 큰 화상 흔적 같은 흉터가 보였다.”



“화상 흔적 같은 흉터라고요…. 혹시 더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범행을 마치고 상주로 가서 약속대로 그 사람을 만나서 물건을 전달해 주고 돈을 마저 받았는데, 헤어질 때 이상한 이야기를 하더구나.”



“어떤 이야기였나요?”



“혹시 잡히더라도 결코 자기나 물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만약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서울에 있는 ‘고우니 화장품’ 회장이 시켰다고 말하라고 하더구나.”



“고우니 화장품이라면, 텔레비전에서도 광고하는 유명한 회사잖아요? 그 회장님을 아시나요?”



“텔레비전 뉴스에선가 본 듯하긴 한데, 직접 만난 적은 없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나 같은 범죄자가 어떻게 그렇게 높은 분을 알겠니?”



그 때, 피의자 박상복의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대화 내용을 기록하던 경찰관이 면회시간 5분이 다 지났다고 알려주었다. 설록은 박상복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설록의 인사를 받은 박상복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백하듯 마지막 말을 남겼다.



“어린이에게 이런 모습 보여서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나도 너만할 때는 착하고 순수했는데…. 날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눠줘서 고맙구나. 너한테라도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고맙다. 그리고….”



바로 설록이 말을 이었다.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 압니다. 시신에 난 상처의 위치와 방향, 모양 등을 보니 결박을 푼 이 검사님이 전화를 하려 하자 달려들어 막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고로 보이더군요. 아마 아저씨가 아니라 나이가 더 어린 공범인 노강범 아저씨가 한 행동일 테고요.”



설록을 설명을 듣고 놀라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돌아서 걸어가는 박상복의 등과 어깨가 한없이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M과 고우니 화장품 회장과의 관계



설록이 유치장 면회실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집요하게 물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특별한 건 없고, 나 같은 어린이에게 이런 죄 지은 모습 보여서 부끄럽고 미안하시데. 그리고 찾아와서 이야기 나눠줘서 고맙다고 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록은 지금까지 함께 고생하며 사건을 추적해 온 친구들에게 ‘M’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고우니 화장품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 제주를 떠나 고난 시로 돌아가면 친구들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설록은 표 박사와 방구름·홍두재 연구원과 함께 ‘사라진 보물’의 행방에 대해 본격적인 추적을 시작해야 했다. 고 순경의 차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에 펼쳐진 넓은 초원과 그 사이에 솟아 오른, 마치 옛날 왕의 무덤 같이 생긴 오름들의 모습이 신비로웠다. 풀밭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말들과 소들과 양들, 세상의 중심처럼 버티고 선 한라산의 눈 덮인 정상은 마치 그림 같았다. 도로 왼쪽에선 돌담과 아담한 집들 사이로 파란 바다와 검은 바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며 멋진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제 여유를 찾은 아이들의 눈에 이국적인 제주의 풍경이 제대로 들어온 것이다. “아, 이 멋진 풍경들을 두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라며 홍주가 한숨과 함께 아쉬움을 표하자 대홍이도 공감했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 학원을 순례하는 고행의 시간이 시작되는구나.” 하지만 설록과 진혁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 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진혁이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이제 부상당한 다리도 많이 나아 통증이 거의 사라졌으니 천천히 재활 훈련을 시작으로 축구를 다시 할 생각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루 빨리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어 자신을 고아원에 버리고 가버린 엄마를 다시 만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설록의 마음은 복잡했다. 머리 한쪽에선 이무중 검사 살인 피의자 박상복에게 범행을 지시한 남자가 과연 ‘M’일지, 그리고 ‘고우니 화장품’ 회장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한 논리적인 사고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릿한 어릴 적 기억 속에만 머물고 있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라면을 끓이던 냄비 속 연기와 거품이 뚜껑을 밀치고 밖으로 뿜어져 나오듯 보글보글 피어 올랐다.



설록은 아주 잠깐 동안,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도 ‘평범한 아이’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설록에게는 추리와 프로파일링 실력을 키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모님과 누나가 살해당한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어린이 프로파일러’는 설록에겐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던 것이다. 오염과 공해 없이 맑고 푸른 제주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녹색 초원이 펼쳐진 제주도의 어머니 같은 푸근함이 아이들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 것 같았다.



설록과 홍주, 진혁과 대홍이 모두 각자의 생각과 기분과 느낌 속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제주공항 활주로에선 아이들을 포함한 승객들과 함께 ‘사라진 보물의 미스터리’를 실은 비행기가 구름을 향해 커다란 폭발음을 내뿜으며 높이 높이 올라갔다.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 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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