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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50년 … 반 이승만 시대 이젠 끝낼 때

이인수 이승만기념사업회 이사가 25일 서울 이화동 이화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0주년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위). 아래 사진은 1962년 1월 이 이사와 이 전 대통령, 프란체스카 여사가 미국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 김성룡 기자, [사진 이인수]
“올해는 이승만 대통령 탄생 140주년이고 서거 50주년이다. 1960년 하야 이후 지난 55년간 ‘반(反) 이승만 시대’였다면 이제 그분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 작업이 본격 시작돼야 한다.”



이 전 대통령 양아들 이인수 이사
하야 계기된 4·19때 시위대로 참가
종친회 추천으로 1년 뒤 양자 인연
부친 "잘 돼 간다는 말 믿지 마라"

 우남(雩南) 이승만(1875∼1965) 초대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84) 이승만기념사업회 이사가 한 말이다. 이 이사는 “올해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보훈처가 이 전 대통령의 탄생일인 26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탄신 140주년 기념식’에 앞서 이 이사는 자택 이화장(梨花莊)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이화장은 이 전 대통령의 사저였으며, 2009년 4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이사는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 망명했을 무렵 양자로 입양됐다. 이 전 대통령은 59세 때인 1934년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와 뉴욕에서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4·19 혁명 이후 하와이로 떠난 이 전 대통령은 양녕대군 종친회를 통해 양자를 추천받았다. 이 전 대통령이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16대손이라 양녕대군 17대손 중에서 찾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미혼 남자가 조건이었다. 결국 고려대 상대를 나와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했던 이 이사가 61년 11월 양자로 결정됐다.



 이 전 대통령과 이 이사는 묘한 인연을 맺게 됐다. 60년 4월 당시 현대건설에 다니던 이 이사는 이 전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4월 18일과 19일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 앞 시위에 동참했다.



  시위대와 대통령이었던 두 사람이 1년 뒤 하와이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처음 만났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첫마디는 “요즘 우리나라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이 이사가 “그래도 젊은이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돼 갈 겁니다”라고 하자 이 전 대통령은 “남들이 잘 돼 간다고 하는 말을 믿지마라. 그런 말 믿다가 내가 이렇게 결딴났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4·19 혁명 때 죽거나 다친 젊은이들의 상황을 물으며 마음 아파했다고 이 이사는 전했다. 이 이사는 2012년 수유리 4·19 묘역을 52년만에 참배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거한 65년 7월 19일까지 약 4년을 함께 생활한 이 이사는 식사 기도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말년에 이 전 대통령은 “하나님, 이제는 저의 심신이 약해져 맡겨주신 사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자주 기도했다고 전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 전 대통령은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이 이사는 “성서 갈라디아서 5장1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을 유언으로 남기셨다”며 “그분이 평생 추구한 자유와 자주독립의 정신이 유언에 잘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이 전 대통령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해 남북 분단에 큰 책임이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이 이사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분단은 45년에 소련군이 38선 이북에 진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며 “김일성이 이미 46년 2월28일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부를 세운 사실은 왜 문제삼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기밀 해제된 냉전시대 문서 등을 근거로 “분단의 책임은 스탈린과 김일성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전했다.



 “통일은 앉아서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고 부지런히 힘을 기르고 주변국을 잘 살펴야 온다. 통일을 못보고 갈까봐 한이다. 남북통일을 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는데….”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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