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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딜레마

[일러스트=김회룡]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한국이 어제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가입을 선언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함정에 빠졌다. 미국은 한국의 AIIB 가입을 말렸다. 한국에 미국보다 두 배 더 큰 수출 시장인 중국은 가입을 권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안보 이익과 경제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의 AIIB 가입 결정은 이런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영국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참가를 결정했기에 한국의 발걸음은 홀가분해졌다. 한국은 또 중국의 의사에 반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할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중국이라는 ‘고래’들을 길들인 의기양양한 ‘새우’로 부상했다.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계속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AIIB와 사드 모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도 균형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듯 비친다는 점이다. 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에 계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그저 강대국에 반응할 게 아니라 아시아에서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창출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안보를 위해 미국을, 경제를 위해선 중국을 선택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잘못 되고도 위험한 선택이다. AIIB 문제는 ‘한국이 옹호하는 국제경제의 규칙이 동북아 국제 관계에서 유지될까’하는 질문과 핵심적으로 연관됐다. 단순히 AIIB에 가입 여부를 넘어서는 전략이 한국에 필요했다.



 중국은 한국의 선택을 쉽지 않게 만들었다. AIIB 창립 구상은 지난해 봄 새로운 아시아 안보 체제를 주창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민족주의적 야심과 맥이 닿아 있다. 그래서 대출 받기 위해 AIIB에 가입하려는 베트남 등의 국가도 중국의 의도를 의심한다. AIIB가 세계은행(WB) 등의 국제 금융기구가 요구하는 거버넌스·투명성이나 환경·인권 기준을 만족시킬지에 대해 아무런 약속이 없다. AIIB의 주요 목표는 중국의 자본잉여금을 처리하는 것이다. 중국 경제에서 비관세 장벽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AIIB가 베이징 중상주의의 또 다른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길 만하다.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서 ‘이탈’해 AIIB에 참가한 동맹국들이 있다는 게 오바마 행정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이 전략적으로 패배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희박하다. 워싱턴은 이전에도 수차례 아시아에 새로운 기구·제도가 생겼을 때 저항했다. 하지만 다음 라운드에서는 리더십을 되찾았다.



 1980년대 말 동아시아의 제도 구축(institution-building) 과정에서 미국은 뒤처지고 배제됐다. 이후 미국은 9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주도함으로써 주도권을 회복했다. 97년, 98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가 늦었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 등을 통해 환태평양 경제 자유화 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미국은 2005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가입을 주저했다. EAS의 목표가 불투명했고 EAS가 잠재적으로 APEC에 위협이 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미국은 결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을 설득해 EAS 미팅이 APEC과 같은 장소, 같은 기간에 열리도록 만들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AIIB도 마찬가지다. 회원 모집으로 이야기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와 손을 잡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의회에서 통과시킨다면, 워싱턴과 서울은 아시아에서 경제 규칙을 발전시킬 호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한편 중국의 AIIB 프로젝트는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확실하지 않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베이징은 자신의 국외 야망을 국내에서 정당화시키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협력하는 게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 때문에 AIIB 가입으로 한국이 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한국은 AIIB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공헌해야 한다. 서울은 자신이 기대하는 AIIB의 거버넌스 표준을 발표해야 한다. 또 다른 주요 공여국이나 기구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 AIIB의 거버넌스를 논의할 때 베이징에 대해 공동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 국회는 AIIB의 진척 상황에 대한 정규적인 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납세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 투명성 모델을 호주나 영국 같은 공여국과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들이 AIIB를 중국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는 AIIB의 거버넌스에서 발견되는 결함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중국은 AIIB 같은 프로젝트를 이전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부 중국 관리들은 선진국의 기술 지원을 환영할 것이다. 베이징과 워싱턴이 존중할 한국은 수동적으로 적응만 하는 한국이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는 한국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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