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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밝히는 조용한 등불로"…황순원 탄생 100주년

[앵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로 꼽히는 '소나기'를 쓴 소설가 황순원 선생이 오늘(26일)로 태어난 지 꼭 백 년이 됩니다.

한평생 말에서, 또 글에서, 순수와 절제를 실천한 그의 작품과 삶을 강나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주었다. 소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소란하던 수숫잎 소리가 뚝 그쳤다. 밖이 멀개졌다.' -소설 '소나기'(1953년)중

갑자기 내린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의 설렘, 그리고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로 꼽힙니다.

[박덕규 소설가/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 (황순원 선생의 글은) 그 당시 문장이지만 지금 읽어도 탄력이 유지되는 그런 문장이에요. 우리말에 대한 느낌을 이 분만큼 철저하게 생각하면서 쓴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할 정도로.]

절제를 통한 순수의 추구.

황순원 선생의 삶도 그랬습니다.

일제강점기,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일본어로 글을 쓰라는 제안에 펜을 꺾었습니다.

고향에 숨어 몰래 우리글로 써나간 작품들은 해방 후 단편집 '기러기'로 빛을 봤습니다.

대학에서 20년 넘게 문학을 가르쳤지만 일체의 직함과 포상을 거절했습니다.

세속적 영광은 거부한 채 작품을 통해서만 자신을 보여줬습니다.

[전상국 소설가 : 내가 작품에서 받은 순수나 절제 미학의 완성을 선생님의 삶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치한다는 안도감을 갖게 됐던 거죠.]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제자들에겐 한없이 따뜻했습니다.

[전상국 소설가 : 선생님이 잡문을 잘 안 쓰시잖아요. 제가 첫 창작집을 낼 때 소식을 들으셨나 봐요. '내가 자네에 대해 글 하나 써놓은 게 있으니까 사용하게' 하시면서 원고지에 쓰셔서 글 하나를 보내주셨어요.]

황순원 선생이 순수성에 몰입한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이어진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고비마다 현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목넘이 마을의 개'나 '카인의 후예'에선 해방 직후의 이데올로기 갈등과 민중이 소외된 현실을 비판했고,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선 전후 분단 현실 속에 놓인 개인의 고통과 치유에 주목했습니다.

[김종회 교수/경희대 국문과(황순원 문학촌장) : 자기 일생을 두고 지속적으로 작품을 써가는 과정에서 그 시대나 세태에 휘말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시대현실을 작품속에 수용한 결과인거죠.]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그의 글이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박덕규 소설가/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 (인간이) 남을 죽이고 욕망을 성취하려고 애를 쓰는 이런 면모들을 있는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러나 그 인간에 내재된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끝끝내 옹호한 그런 세계를 보여준 분이에요.]

시대를 태우는 횃불보다 시대을 밝히는 등불로 남길 원했던 황순원 선생, 세상에 온지 100년이 지났어도 그의 글은 여전히 우리곁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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