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 대사가 조선시대 대일외교의 개척자인 충숙공 이예(李藝·1373∼1445)의 동상 앞에서 만났다. 25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이예 동상 제막식에서다.
윤 장관은 축사를 통해 "이예 선생은 조일 관계에 평생을 바친 외교관으로서 한일수교 50년을 맞는 올해 동상 제막을 할 수 있게 돼 더욱 의미가 특별하다"며 "이예 선생을 기리며, 한일관계 발전은 오늘날 우리의 커다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외교를 빛낸 인물들을 기리는 것은 역사의 발전이란 과거를 교훈으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오늘같은 행사가 우리에게 역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외교의 기본은 상대방을 헤아리고 마음을 얻는 자세"라고도 했다. 일본의 역사 왜곡 도발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한일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당초 행사에는 조태용 1차관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윤 장관이 일정을 바꿔 직접 참석했다.
벳쇼 대사도 축사에서 "조선통신사는 일한관계를 논하며 빠질 수 없는 테마"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통신의 의미는 정보전달이 아니라 신뢰와 진실을 갖고 교류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며 "선인들의 위업이 현재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또 "양국 간에 여러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500년 전 이예 선생이 제시하신 교린(交隣)외교의 정신을 다시 한번 함께 해서 앞으로의 50년, 100년의 미래를 향해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지금까지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저도 외교관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장관과 벳쇼 대사는 무대에서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행사 시작 전에는 따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행사에 참석해줘 고맙다"고 말했고, 벳쇼 대사는 "지난 주말 3국 외교장관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주최측인 한국이 노력해줘 고맙다"고 답했다고 한다. 윤 장관은 "도쿄에서도 같은 뜻을 많이 전달해왔다. 3국 외교장관 회의를 일본 정부도 많이 원했는데, 잘 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벳쇼 대사는 최근 일본 정부가 주미 일본 대사관 홈페이지 등에 한국의 경제 발전이 일본의 원조 덕분이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린 것에 대해 묻자 답하지 않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