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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소장 좌우에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 … '장면 체포' 임무는 실패 … 권력 이미지는 강렬



5·16 광경은 사진으로 존재한다. 한강 인도교 총격전은 가장 긴박한 순간이다. 하지만 선봉대인 해병1여단의 한강 돌파 사진은 없다. 소장 박정희(당시 44세)와 양쪽에 경호요원인 소령 박종규(왼쪽·31세), 대위 차지철(오른쪽·27세)이 등장한 장면이 있다(박정희의 왼쪽 뒤는 이낙선 소령).

5·16 거사 '결정적 사진' 허와 실



 그 사진은 극적 요소를 갖췄다. 뒷짐 진 채 입을 다문 박정희의 단호함. 그 표정은 검은색 선글라스와 엮어지면서 강렬함은 커진다. JP는 “박 장군은 자신을 감추려는 은밀함에다 위압감을 주려고 선글라스를 썼다”고 했다. 수류탄을 가슴에 매단 차지철과 ‘혁명군’ 완장의 박종규는 대중에게 압박감을 준다. 그것은 5·16의 간판 이미지다. 때로는 반민주·쿠데타의 모습으로 희화화된다.



 그 사진은 거사 사흘 뒤 18일 모습이다. 그날 육사 생도 800여 명은 ‘군사혁명 지지’를 외쳤다. 그들의 거리 행진 마지막은 시청 앞. 거기서 군사혁명위 의장 참모총장 장도영(38세)의 격려사가 있었다. 그의 연설 중 혁명위 부의장 박정희는 연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 순간이 그 사진으로 포착됐다.



그것은 5·16의 ‘결정적인’ 풍광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박·차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16일 새벽 둘에게 주어진 임무는 국무총리 장면의 체포다. 총리는 내각제 제2공화국의 실세다. 이를 위해 특수임무조가 편성됐다. 총리 체포에 공수단의 중대장급 대위 6명, 5개 소대 50명이 투입됐다. 전체 지휘는 부평의 미군부대 파견장교인 박종규(육군종합학교 출신)가 맡았다. 박종규는 미국에서 레인저 교육훈련을 받았다. 차지철(포병 간부 출신)도 60년 전두환 대위(육사 11기)와 함께 미국의 포트 베닝(Fort Benning)에서 레인저 교육을 받았다.



박종규의 특수임무조는 그날 새벽 기습했다. 총리 숙소는 반도호텔 809호실. 하지만 장면은 빠져나갔다. 급습 10분 전이다. 체포조는 실패했다. 장면은 피신한 수녀원에서 연락을 끊었다. 그가 외부와 연락을 취했다면 작전실패는 치명적 장애가 됐을 것이다.



 그 뒤 박·차 두 장교는 박정희의 경호조로 차출됐다. 박종규는 1949년 박정희와 JP의 부하(육본 정보국)로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기묘하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두 사람은 5·16 거사의 공신 서열에 끼기 힘들다. 하지만 그 사진은 박정희 권력 보좌의 이미지로 작동했다. 박종규·차지철은 청와대 경호실장을 이어서 지냈다.



정리=전영기 기자, 유광종 작가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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