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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영란법, 흠집내기보다 다듬어야 한다

문영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3주 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24일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면 1년6개월 동안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 내년 10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 법을 입법한 국회는 권위가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다. 압도적인 찬성 속에 통과된 김영란법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여당 대표와 법사위원장이 나서서 개정 필요성을 공언하고 있다. 변호사단체는 법이 공포되기도 전에 일부 규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빨리 낳으라고 재촉하던 옥동자를 낳자마자 흠을 잡으며 서로 떠미는 꼴이다.



 수년 전 법안이 제안될 당시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청렴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었다. 그런데 시행되기도 전에 졸속 입법으로 몰리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는 과반수가 이 법의 통과에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자신에게 미칠 이해득실에 치우치거나 법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무턱대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먼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 외에 민간에게까지 확장시킨 것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언론사 임직원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 때문에 취재 환경이 위축되고 언론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법 시행으로 기대되는 이익과 비교해 절충점을 찾아야 할 선택의 문제로 봐야지 그것만으로 위헌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광범위한 처벌 규정을 두면서 공직자 뇌물 수수의 해당 요건을 완화하고 민간부문의 청렴성을 개선하기 위한 특칙을 두는 김영란법은 성격상 형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위헌성 문제는 형사법의 큰 틀 속에서 판단해야 한다.



 공직자의 부패를 막기 위해 뇌물죄를 두고 있는 우리 형법은 민간부문의 청렴성 확보를 위한 장치로 배임수재죄를 두고 있다. 뇌물 수수보다 형은 낮지만 사인(私人) 간의 뇌물 주고받기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와 관련해 대가성 있는 금품을 받을 때 성립되는 배임수재죄의 주체는 범위가 넓다. 민간 기업이나 단체에 몸담은 사람 누구나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부정한 청탁’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정해 두었기 때문에 사법이 민간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두었다. 그동안의 법 적용에서 ‘부정한 청탁’을 엄격하게 해석하다 보니 민간 영역 중에서 공공성이 뚜렷한 직종만이 배임수재의 주체가 되었다.



 지금까지 배임수재죄는 민간부문의 청렴성 확보 장치로서 나름대로 기여해 왔다. 예를 들어 언론사의 경우 특정 가수의 음반을 자주 틀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방송사 PD나, 묵시적으로 부정적인 기사 쓰기를 자제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광고비 명목으로 돈을 받은 기자에게 배임수재죄가 적용되었다. 앞으로 민간부문이지만 공공성이 뚜렷해 사적 자치에 맡겨 둘 수 없는 영역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언론사 외에도 환경이나 소비자보호 문제 등을 다루는 시민단체같이 공공성이 뚜렷한 직종에까지 법의 적용 대상을 오히려 넓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 규정의 체계에 대한 손질도 필요하다. 민간부문까지 공직자에 버금가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보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라면 기존의 배임수재죄를 기본으로 하여 그 적용 대상을 확장하거나 부정 청탁의 대가성 요건을 완화시키는 특칙을 두는 쪽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에 대한 특칙과 분리하라는 말이다. 민간부문의 일부 직종을 열거하면서 공직자와 병렬적으로 ‘공직자 등’이라고 묶어놓고 부정 청탁이나 금품 수수를 싸잡아 금지한 것이 불필요한 시비를 초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 규정된 부정 청탁의 개념이 모호해 형벌 법규의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 역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입법 기술상 부정 청탁의 유형을 일일이 규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배임수재죄의 형법 규정 역시 ‘부정한 청탁을 받고’라고 애매하게 규정해 두고, 사회상규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한 행위로 해석하며 판례 축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지적한 대로 부정 청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해 두고 그에 해당되지 않는 행위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부패 문제에 대한 지난날의 대응을 되돌아보면, 문민정부 초기에는 그런대로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도입 등 혁신적인 조치들이 청렴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역대 정부에서는 부패척결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민간부문의 부패척결은 그들의 자율에 맡겨야 하겠지만 그런 자정 노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패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만든 모처럼의 입법을 희화하기만 해서야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 시행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는 만큼 지혜를 모아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문영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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