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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공무원연금 개혁, 문재인이 나서면 된다

이하경
논설주간
박근혜 대통령이 달라졌다. 지난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3자회담은 새로운 박근혜의 등장을 알렸다. 시종 유연한 자세로 임했고, 결국 문 대표로부터 공무원연금 개혁에 협력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성공 요인은 다섯 가지의 코드에 숨어 있다. 첫째는 경청, 설득하려 하지 않고 주로 들었다. 문 대표는 “대통령이 제 얘기를 경청해주신 것, 그것이 오늘의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근혜 불통 이미지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선의의 코멘트였다. 둘째는 배려, 회담장에 미리 가서 문 대표를 맞았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 2년3개월 만에 청와대를 손님으로 방문한 문재인의 심경을 헤아린 따뜻한 의전이었다.



 셋째는 소통, 문 대표가 “앞으로는 의제를 좁혀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정례적으로 대화하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고 하자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마음을 활짝 연 것이다. 넷째는 반성, 문 대표가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지적이 많다”고 하자 “앞으로 더 유념하겠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했는데 그렇게 된 거 같다”고 인정했다. 신년기자회견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다섯째는 선택과 집중, 공무원연금 개혁 하나에 집중해 “합의한 날짜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공무원연금 개혁 국회 특위의 활동 시한은 5월 2일이고 대타협기구는 사흘 뒤인 28일 문을 닫지만 계속 겉돌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일 100억원의 피 같은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 현 정부에서 15조, 다음 정부에서 33조, 그다음 정부에서 53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노후를 보장하느라 국민의 허리가 휘고 정부도 나자빠질 판이다. 그런데도 공무원 노조는 죽기 살기로 반대하고 야당은 개혁에 소극적이다.



 남 탓 하기에 앞서 집권세력도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이 공무원연금을 수술대에 올리자는 데 국민 70%가 찬성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107만 현직 공무원, 36만 명의 연금 수급자와 가족까지를 포함한 500만 명의 호주머니를 건드리는 일을 정치적 자살행위로 여겼다. 오죽하면 위원장을 서로 안 맡겠다고 해서 특위 발족이 늦어졌을까.



삼성 출신의 이근면 인사혁신처장도 공무원들에게 휘둘려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는 여당안보다 후퇴한 ‘기초안’을 내놓아 욕을 먹었다. 지난해 10월 새누리당 158명 의원 전원이 개혁법안에 서명했지만 “이대로 가면 내년에 새로 태어나는 아기는 평생 378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절규하는 사람은 김무성 대표뿐이다. 10여 년의 산고(産苦) 끝에 올해 10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일본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사람조차 없다. 이러니 노조와 야당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애초에 대선 공약도 아니었다. 당선된 뒤 1년2개월이 지난 지난해 2월 경제혁신3개년 계획 발표 때 박 대통령이 핵심의제로 집어넣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을 뿐이다. 룰라가 브라질을 망가뜨린 특권적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집권과 동시에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무원연금 개혁은 1995년 이래 20년간 4개 정권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한 난제다. 그렇다면 힘이 센 당선자 시절부터 밀어붙였어야 했다. 냉정히 말하면 박 대통령은 실기(失期)했다.



 만회하려면 초강력 카드가 필요하다. 문재인과의 협력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개혁이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똑똑히 지켜봤다. 당시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제가 훨씬 심각한 공무원연금을 놔두는 것은 잘못”이라며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처절한 비명 이었다. 93년 바닥을 드러낸 공무원연금은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정부에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공무원 집단의 조직적 저항에 번번이 무너졌다. 김대중 정부는 거꾸로 적자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는 개혁법안을 국회로 보내지조차 못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야당의 대표가 현 정부의 개혁에 대해 “용기 있고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 데는 일종의 자책이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다운 선의와 순수함이다.



 박근혜·문재인 두 사람이 지난주 약속한 대로 다시 만나는 게 순리다. 박 대통령은 “우리 둘이 힘을 합쳐 개혁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을 누가 잡더라도 재정적자로 일을 못한다”고 호소해야 한다. 문 대표도 통 크게 협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번 개혁은 국민과 공무원으로 갈라질 위기에 빠진 공동체의 통합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혼자서는 어렵고 두 사람의 공동프로젝트가 돼야 성공한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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