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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가 잘못되면 무덤에서라도 일어나겠다"

2011년 싱가포르투자청 30주년 만찬에서 연설하는 리 전 총리(큰 사진). [신화·AP=뉴시스, 블룸버그]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23일 별세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자치정부가 된 1959년부터 90년까지 31년간 총리를 지내며 건국의 아버지이자 번영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선임 장관과 고문 장관으로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싱가포르에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힌다.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타계
1959년 취임 '국가 생존' 강조
시장 완전 개방하며 금융 허브로
부패조사국 만들어 공직 부정 엄단
재임 31년간 국민소득 30배로
사후 우상화 경계 "사저 허물라"
일부선 가혹한 벌금·태형 비판도



 『리콴유와의 대화』를 지은 톰 플레이트는 리콴유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생존’이라 평가했다. 그는 서울보다 약간 큰 영토(697㎢)에 천연자원도 없는 싱가포르를 국가로 생존시키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싱가포르식 ‘사회 민주주의’를 추진했다. 시장을 완전 개방해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키워냈다. 또 토지 국유화를 통해 국민의 86%에게 공공 주택을 제공했다.



 그는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클린 앤드 그린’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연봉을 민간기업 임원 못잖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리 전 총리는 60년 총리 직속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세워 공직자들의 부정을 엄단했다. 또 “자유는 질서 속에만 존재한다”는 신념에 따라 쓰레기를 거리에 버릴 경우 처음에는 2000싱가포르달러(약 160만원)를, 두 번 이상 적발되면 1만 싱가포르달러를 부과했다. 92년 후임인 고촉동(吳作棟) 총리의 껌 판매 금지 조치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는 또 태형(볼기를 때리는 형벌)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지금도 싱가포르에선 태형이 집행된다.



1978년 싱가포르를 방문한 덩샤오핑 중국 부총리를 환영하는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왼쪽 사진), 63년 인민행동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자 지지자들이 리 총리를 헹가래 치고 있다(오른쪽 사진). [신화·AP=뉴시스, 블룸버그]


 그의 취임 당시 400달러(약 45만원)이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퇴임한 90년 1만2750달러로 30배 이상 늘었다. 2014년 기준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세계 8위)다. 2000년 출간된 리콴유 회고록 『일류국가로의 길』처럼 삼류 국가에서 일류 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리 전 총리는 88년 8월 국정연설에서 “싱가포르가 잘못되면 무덤에서 일어나겠다”고 역설했다. 싱가포르에선 미국의 민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만큼 유명한 연설이다.



 리 전 총리는 72세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할 만큼 최신 동향에도 깨어 있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함께 록펠러 가문의 수장인 데이비드 록펠러가 설립한 국제협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 『한 남자의 세계관』이라는 대담집을 내기도 했다.





 2011년 가족들에게 “내가 죽거든 지금 사는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지 말고 부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에 자택이 ‘국가 성지’로 지정될까 염려한 것이다. 2013년에는 자신이 병에 걸리더라도 의료진이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의료 지침에 서명하며 자연스러운 죽음을 준비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일당 독재)가 공존하는 싱가포르를 ‘잘살지만 숨막히는 감옥’이라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지나치게 사회를 통제하면서 ‘독재자’라는 지적도 있다. 맏아들 리셴룽(李顯龍)이 2004년 3대 총리에 오르며 총리직 세습 논란이 일었다.



 ‘리콴유 없는 싱가포르’는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부격차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한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78로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최저 생계비는 월 1500달러로 추산되나 인구의 10%가량은 월 1000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민심이 정부와 여당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도 심각하다. 싱가포르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0.8명(한국은 2014년 기준 1.2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리 전 총리가 83년 결혼을 알선하는 사회개발부를 설립해 미혼 남녀의 만남을 정부 차원에서 돕고, 3~4명의 자녀를 출산하는 고학력 여성들에게는 세금·교육·주택을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고질적 저출산으로 싱가포르 국민 4명 중 1명(130만명)이 이민자다.



 그는 슬하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리셴룽 총리의 부인 호칭(何晶) 여사는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최고경영자(CEO), 둘째 아들 리셴양(李顯陽)은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싱텔(싱가포르텔레콤) CEO, 딸 리웨이링(李瑋玲)은 싱가포르 국립신경학회장을 맡고 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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