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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리퍼트와 박근혜와 이병기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미국에 대한 공격이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이렇게 규정한 사건이 벌어진 지난 5일 디지털 편집국은 불이 났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반세기를 회고한 ‘증언록’은 요즘 부동의 홈페이지 톱기사지만 이날만큼은 리퍼트 대사에게 맨 윗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현대사를 새로 쓰는 게 엄청난 일이긴 해도 ‘새로 벌어진 역사’(주한 미 대사 피습)를 당해낼 순 없다. 경황 없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두 장면이 스쳤다.

 2001년 9월 11일 나는 미국 시애틀에 있었다.

 ‘미국이 공격당했다’(America under Attack). 조기 유학을 취재 중이던 나는 TV에 나오는 자막과 빌딩이 무너지는 영상에 머리가 하얘졌다. 사회부장에게 국제전화를 했다.

 “(황급한 목소리로) 너 어디야?”

 “시애틀입니다.”

 “빨리 비행기로 뉴욕 가!”

 “공항이 폐쇄됐습니다.”

 “에이씨, 차로 가!”

 “아무리 밟아도 사흘은 걸릴 것 같습니다.”

 “에이씨, 시리즈 너 혼자 다 취재해 와!”

 뉴욕에 있던 팀은 테러 현장에 투입됐고 나는 두 팀 몫을 하느라 캐나다까지 건너가 입에 단내 나게 취재했다. 시리즈는 취소됐다.

 2006년 5월 20일 나는 대형마트에 있었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에 마트 따라오는 남편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가족에게 온갖 생색을 내고 있는데 국회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황급한 목소리로) 너 어디야?”

 “마튼데요.”

 “박근혜(한나라당 대표) 얘기 못 들었어?”

 “예….”

 “에이씨, 빨리 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중 지충호씨에게서 공격을 당한 박 대표가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하루 종일 유정복 비서실장·이정현 부대변인 등에게 전화를 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났다.

 ‘상처가 2㎝만 깊었으면…’ ‘덤으로 얻은 인생…’ ‘왼쪽 팔등을 올렸는데…’ 같은 리퍼트 대사 보도는 그때와 판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 1년 뒤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차에서 지혈을 하려고 손으로 꽉 잡았는데 (상처가) 수박처럼 쩍 갈라졌다”고 묘사했다.

 SNS 팔로어가 급증한 리퍼트 대사처럼 피습 이후 인기가 올라간 점도 비슷했다.

 박 대통령은 퇴원길에 곧장 대전으로 달려가 지원 유세를 강행, 시장 선거를 역전시켰다. 다들 상처만 걱정할 때 ‘대전행 승부수’를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극적인 선거 때문일까. 끔찍한 일을 겪고서도 우린 테러에 무심했다.

 9·11 이후 미국은 지방 중소 도시의 웬만한 명소도 공항 수준의 검색을 한다.

 이제 유력 대선주자와 최우방국의 얼굴이 무방비로 칼에 찔리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테러에 대한 정교한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번에도 김기종·지충호씨 같은 얼치기 테러리스트가 달려들지 말란 법은 없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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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