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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칼럼] 재분배보다 분배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은 지난 20여 년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이 잘되고, 부자가 잘살게 되면 중소기업도 좋아지고 중산층·서민도 결국은 잘살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성장우선 정책을 펼쳐온 결과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함께 잘사는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갈수록 불평등이 심해져서 이제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국민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소수의 1등 국민과 성장이 자신들의 삶과 상관없는 대다수의 2등 국민으로 양분화되었다.

 불평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분배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 격차가 급속하게 확대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가계소득 중에서 임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95%고, 이자와 배당과 같은 재산소득은 0.3%에 불과하다. 따라서 불평등의 가장 주된 요인은 재산소득이 아니라 임금소득이다. 임금소득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인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의 비율은 1997년 3.7에서 15년 만인 2012년에는 4.7로 높아져서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임금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되었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 임시고용 노동자의 비율도 세 번째로 높아서 고용 불안이 극심한 나라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불평등이 심해진 이유의 하나는 제조업이 줄어들고,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서비스업이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줄어들지 않았고, 최근에는 오히려 늘어났다. 저임금 노동자가 집중된다는 서비스업 비중도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으니 서비스업 탓도 아니다. 성장률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고, 제조업 공동화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도 불평등이 악화되고,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며, 고용 불안이 심화된 것은 산업구조 때문이 아니라 분배체계 자체가 크게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분배는 간단한 두 가지 통계에서도 볼 수 있다. 첫째, 성장률과 실질임금 상승률의 괴리다. 2003년 이후 10년 동안 경제는 46% 성장했지만, 실질임금은 경제성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1% 증가에 그쳤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3년 동안에 경제는 14% 성장했지만, 실질임금은 5년 동안 겨우 3% 증가에 불과했다.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임금으로 삶을 꾸려간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해도 그 성과가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으니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통계는 임금 격차다.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62%고, 100대 기업의 47%에 불과하다. 특히 제조업 중소기업들의 평균임금은 100대 기업의 절반도 안 되는 39%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항시 이렇게 컸던 것은 아니다. 80년대에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90% 이상이었고, 90년대에도 75% 수준이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으로 임금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임금체계가 왜곡된 구조에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80%의 국민들이 경제성장과 무관한 2등 시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성장의 과실을 20% 미만의 1등 시민들만이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 중산층, 서민이 함께 잘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그저 거짓일 뿐이다.

 여기에서 분배와 재분배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분배의 원천은 임금이다. ‘재분배’란 정부가 세금으로 ‘다시 분배’해 분배를 미시적으로 교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분배 체계가 원천적으로 잘못되었다면 정부가 아무리 적극적인 재분배정책을 동원한들 불평등이 얼마나 해소될 것인가? 30대들은 자신들이 20대일 때에 스스로 ‘88만원 세대’라고 한탄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로 전락했다. 20대들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나머지라는 의미로 ‘잉여 세대’라거나, 그저 일만 시켜달라고 애걸하는 ‘열정 노예세대’라고 자조한다. 3포 세대와 잉여 세대는 한국의 미래다. 그들이 희망을 포기하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 그들에게 정부 보조금으로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희망을 만들어 줄 수 없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2등 시민과 1등 시민으로 양분화된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원천적인 분배, 즉 임금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의 미래에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이제 기업의 임금분배 체계를 개혁해야 할 때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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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