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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사업 망하면 가족에 빚 독촉 … 기업가 정신 북돋우려면 부채 관련 법 고쳐야

김용 세계은행(WB) 총재는 의사 출신으로 미국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신흥국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과 경제개발 자문을 맡는 WB의 수장이 된 지 약 3년이 됐다. 사공일 본사 고문 겸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은 미국 워싱턴 WB에서 김 총재를 만나 경제 현안과 구조개혁, 혁신, 교육 시스템, 광역 유행병 사태까지 아주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사공일=올 1월 WB가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낮췄다. 많은 사람이 이유를 궁금해한다.

 ▶김용=지난해 6월 WB가 전망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3.4%였다. 올 1월에 3%로 낮췄다. 국제유가가 연율(현 추세대로 떨어졌을 때 올 연말 기준 유가 하락 예상치)로 40~45% 떨어졌다. 이 정도 유가 하락이면 세계의 총생산은 보통 0.7~0.8%포인트 늘어난다.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있어 GDP가 그만큼 늘어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 등 일부 원유 수출국은 유가 하락으로 아주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엔 지정학적인 불안 요인도 있다. 그리고 일본처럼 일부 국가가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는 데 부정적일 수도 있다.

 ▶사공=그렇다. 유가 하락은 분명히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지역과 산업별로 영향이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저유가는 세계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맞는 말이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유가 하락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파장은 뒤섞여 나타난다. 게다가 유럽과 일본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낮췄다.

 ▶사공=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가 하락을 기회로 활용하는 나라도 있지 않나.

 ▶김=(산유국인) 멕시코는 유가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개혁 작업을 아주 잘하고 있다. 우리(WB)는 인도를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어려운 개혁 작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원유 수입국이 저금리·저유가를 잘 활용해 중요한 개혁을 추진하기 좋을 때다.

 ▶사공=나는 한국이 유가 하락 시기를 활용해 필수적인 구조조정과 에너지 가격 등의 상대가격 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저금리 시대의 종언이 일부 신흥국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듯하다.

 ▶김=미국과 영국에서는 6~7월에 첫 번째 금리인상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신흥국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민간 자본의 투자다. 미국과 유럽 등이 인프라 투자를 늘리면 글로벌 자금이 좀 더 안전한 선진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신흥국에 많이 투자한 사람들은 신흥국 투자를 꺼릴 수 있다. 신흥국들이 외자 유치를 위해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다. 다만 한국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

 ▶사공=나도 한국이 잘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일본 경제는 어떨까.

 ▶김=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맡고 있을 때 긴밀하게 일했다. 내가 보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90CE>) 부총리의 개혁 의지는 분명하다. 이들은 지금 몹시 어려운 개혁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와 여성 경제활동 확대, 외국인 노동자 수용 등이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이들이 일본 의회를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공=아베 개혁의 1차 목표는 달성됐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좀 더 구조적이고 중기적인 개혁이 남아 있다. 성공 여부는 아베 총리가 세 번째 화살이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과제인 구조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화제를 바꿔 국가 간의 불평등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신흥국 등의 내부에선 불평등이 악화하고 있다.

 ▶김=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남미 지역에선 중산층이 많이 늘어났다. 불평등에 관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아주 심한 불평등이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WB의 분명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소득 기준으로 하위 40%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입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WB 역사상 처음으로 벌이는 일이다.

 ▶사공=긴 안목에서 보면 불평등 해소는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김=미국에서 가난한 집안과 부유한 집안 학생들이 가는 학교의 격차가 너무 크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교육 시스템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국 교육제도는 젊은이들이 결단력과 의지를 갖추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혁신적인 기업을 보면 젊은이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과 사회에선 젊은이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개선해야 할 점이다.

 ▶사공=상대적인 의미에서 한국 교육제도에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 교육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당신이 기업풍토 얘기를 했는데 한국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학원 수강이나 과외를 받는 데 보내고 있다. 지나친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공교육 개혁이 발등의 불인 이유다. 또 한국이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고 본다. 미 실리콘밸리에선 이력서에 실패 경험을 쓰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 반면 한국에선 실패 경험을 숨기는 게 더 좋다. 이런 풍토에선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이 꽃 피기는 어렵다.

 ▶김=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부채와 관련한 법 체계도 바꿔야 한다고 본다. 내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젊은 창업자들과 대화했다. 그들은 “사업하다 실패하면 빚쟁이들이 가족과 형제·누이한테 달려가 빚 독촉한다”고 말했다. 빚에 대한 책임이 모든 가족으로 확대된다.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인재, 특히 젊은 인재다.

 ▶사공=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 기업가 활동이 지금까지 크게 성공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김=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을 칭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게이츠는 “한국엔 혁신이 없고 제조가 대부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츠는 목소리를 높여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혁신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가장 위대한 혁신은 제조 과정의 개선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용해 제작 과정을 바꾸는 게 때론 위대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MS가 왜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말이다.

 ▶사공=한국 기업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

 ▶김=한국이 아주 잘하고 있는 분야가 많다. 내가 보기에 한국의 도시지역 물 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WB는 한국의 물 관리 경험을 전 세계에 보급할 예정이다. 우리는 다양한 혁신 경험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 우리는 다양한 투자자들과 손잡고 신흥국에서 일하고 싶다. 서울에 WB 사무소가 있다. 누구든지 그곳에서 WB 직원에게 투자 관련 정보를 요구해주길 바란다.

 ▶사공=당신은 WB 총재가 되기 이전부터 광역 유행병 예방에 기여를 많이 했다. 더욱이 무서운 광역 유행병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마침 에볼라 등 광역 유행병이 중요한 이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협력해 방역 시스템을 마련해 광역 유행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와 WB, 각국 정부가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주길 바라는 이유다.

 ▶김=에볼라 사태를 겪으면서 세계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에볼라 사태가 발생한 지 9개월이 흐른 뒤인 지난해 8월 2일에야 첫 번째 자금지원을 WB가 약속할 정도였다. 그때 우리는 2억 달러(약 22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다른 지원금 약속이 이뤄졌다.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사공=이 문제는 인류 모두에게 중요한 이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치명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광역 유행병이 미래에 발생할 확률은 사실상 100%다. 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광역 유행병에 대한 대응이 몇 주나 몇 달이 아니라 몇 시간이나 며칠 안에 이뤄지면 구할 수 있는 생명이 엄청나다. 나는 미래 광역 유행병 사태가 발생하면 인간뿐 아니라 경제 시스템을 보호하는 게 WB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사태처럼 2500만 명 정도가 숨지는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경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보건 시스템이 부실하면 광역 유행병이 크게 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민간 투자를 적극 유치해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사공=일이 벌어진 뒤 빠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 가난한 나라를 위한 백신 개발은 시장성이 낮다. 백신 개발을 민간 제약회사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공공부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내 경험에 비춰 보면 민간 제약회사들도 큰 손해만 보지 않으면 좋은 일에 참여하려고 한다. 좀 더 여유가 있는 나라의 투자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에볼라 사태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정리=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세계은행(World Bank)=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전쟁 피해 복구와 개발 자금을 지원해주기 위해 1945년 설립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금융공사(IFC)·국제개발협회(IDA) 등을 합쳐 ‘세계은행 그룹’으로 부른다.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개발도상국 개발 프로젝트 투자, 저소득국 경제 개발 자금 지원 및 정책 자문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다.

김용 ●1959년생 ●세계은행 총재 ●전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 ?전 하버드대 의대 교수 ●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 국장 ●2006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미국 하버드대 의학·인류학 박사 ●미국 브라운대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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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