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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거사 빨리 하려 5·16 택일" … 이한림 "군 지휘부 공백 노려"

5월 12일 거사 계획이 새어 나가자 5·16 주체세력은 거사일을 5월 16일로 조정했다. 16일은 화요일이었다. 16일 택일에 대해 김종필 전 총리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날짜를 정하자고 해서 16일이 됐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펴낸 『한국군사혁명사』는 다르게 설명한다. 16일 선택에 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핵심 멤버들 사이에 날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쪽과 계획 검토와 정세 판단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대립했다. 결국 박정희 소장이 제시한 16일로 결정됐다.

 그날을 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일요일인 14일은 피했다. 정부 관료들이 주말여행과 고향 방문 등으로 서울을 떠나 있어서다. 출동 예정 부대의 장병들도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다. 15일 월요일은 장면 총리가 ‘제1군 사령부 창설 7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원주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장 총리를 체포하는 데 변수가 생길 수 있었다. 따라서 총리가 서울로 돌아온 뒤인 16일로 결정했다.

 5·16에 반대했던 이한림 1군 사령관은 16일 택일이 자신을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회고록 『세기의 격랑』에서 이렇게 말했다. “쿠데타 주동세력은 북한이 일요일인 6월 25일, 즉 토요일인 6월 24일 국군의 외출 외박을 노린 공백의 새벽인 다음 날을 택한 것처럼 지휘관들이 비어 있을 5월 15일 다음 날인 5월 16일 새벽을 D데이 H시로 정해 놓고 있었다.”

 실제 15일 기념식엔 1군 휘하의 전 군단장과 사단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원주에서 만찬을 열고 하룻밤 묵은 뒤 다음 날 원대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이한림 사령관을 포함한 대부분은 16일 새벽에 닥칠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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