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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흡수 통일은 민족의 재앙이 된다

김성재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분과위원장
최근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의 ‘흡수 통일’ 운운 발언으로 이제 통일준비위원회는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발언 직후 청와대가 “통준위가 통일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흡수 통일 준비팀을 만들었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고 정 부위원장도 “용어 선택이 적절치 못해 위원회 활동 내용이 잘못 보도된 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도 의구심을 갖고 있고, 북한 당국은 이 발언에 대해 통일준비위원회를 해체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으면 당국 간 대화는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민족의 가장 큰 대사인 통일 준비 활동이 정 부위원장의 적절치 못한 용어 선택의 실수로 좌초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통일준비위원회에서 ‘흡수 통일 준비’ 논의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주재 통일준비위원회 첫 번 회의에서 필자는 “대통령께서 말한 통일대박이 흡수 통일로 오해되고 있으니 대통령의 통일정책은 평화통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 오해를 해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흡수 통일은 생각한 적도 없고 통일대박은 우리만의 대박이 아니라 북한도 대박이 되고 주변국들도 대박이 되는 통일이기 때문에 평화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평화통일 방안으로 인도적 지원 및 개발협력, 이산가족의 만남,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협력, 북한 민생 인프라 구축, 경제협력, 민족 동질성 회복 등 가능한 길부터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이런 평화통일 원칙에서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동 번영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지난해 12월 29일 이 과제를 북한 당국에 협의할 것을 제의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북한 붕괴론’과 ‘흡수 통일’을 주장하는 여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 목적이 우리만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라면 통일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족의 재앙이 될 것이다. 독일과 달리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못지않은 참혹한 전쟁을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62년의 긴 휴전상태에 있다. 이것이 남북 갈등과 우리 사회 이념갈등의 원죄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이 화해하고 평화공존, 평화교류 하는 역사적 과정 없이 일방적 통일을 강행하면 민족 내 더 큰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흔히들 독일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이 자유선거를 통해 서독과 통일하자고 선택해 이루어진 것이다. 동독 주민들이 진보당인 사회당이 아니라 보수당인 기민당을 선택해 서독과 즉각 통합하자고 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독이 동방정책을 통해 20년간 매년 30억 달러씩 인도적 지원을 해서 동독주민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동·서독 정치 지도자들은 말한다. 통일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만으로는 안 된다. 화학적·생물학적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민족으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도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또한 현 상황에서 남북한의 경제 격차는 30대 1 정도로 독일 통일 당시 동·서독의 4대 1보다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북한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북한 주민 대다수가 남한 기준으로 보면 기초생활보호 대상자가 된다. 이렇게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남한이 흡수 통일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경제적·사회적 격차 문제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통일보다 분단된 현 상태가 더 좋다는 여론이 50%를 상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대결의 희생으로 강제되었기 때문에 통일은 주변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독일 통일도 미·영·불·소의 동의하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현 동아시아 정세는 미·일 동맹 대 중국, 러시아와의 대치국면으로 과거 미·소 냉전 때보다 더 복합적인 신냉전-열전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따라서 남한만의 흡수 통일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유라시아 평화 이니셔티브는 이런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역사적 인식하에 주변국과의 평화 구축을 통해 남북의 공동번영을 점진적으로 실현하겠다는 평화통일 정책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흡수 통일’ 문제로 남북과 남남이 계속 갈등한다면 우리 민족을 더 고통과 희생으로 몰고 가게 된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금년은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으로 매우 비상한 해다. 그동안 남과 북의 대결로 북은 중국과 러시아에, 남은 미국과 일본에 더 많이 의존하며 분단을 심화시켰다. 강대국의 냉혹한 자국 이익 정책에서 우리 민족이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상호 증오, 불신, 대결의 분단 역사를 넘어 남북, 동족이 하루빨리 손잡고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남과 북이 손잡아야 일본 아베 정권의 식민지 침탈에 대한 과거사 부정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김성재 통일준비위원회 사회문화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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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