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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맥아더 동상을 공격했던 죽창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부상에서 잘 회복하고 있다. 그는 곧 업무에 복귀할 것이며 대사에 대한 경호·경비는 강화됐다. 칼을 휘두른 김기종은 오랜 세월 감옥에 갇힐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졌다’고 합창한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는 별일이 없을 것인가.

 경호·경비만으로 위험을 막을 수는 없다. 경호를 잘하면 된다는 건 음식을 꼭꼭 씹으면 식중독균을 죽일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세균을 막는 데에는 개체(個體)보다 토양이 중요하다. 극단적인 반미(反美)도 마찬가지다. 반미 테러를 막으려면 건전한 역사의식과 강력한 질서라는 토양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비겁하고 허술한 기록을 갖고 있다.

 끔찍한 일들은 주로 노무현 정권 때 벌어졌다. 그날은 2005년 9월 11일이었다. 9·11이라면 미국인에겐 악몽이다. 쌍둥이 빌딩이 떠올라 입에 담기도 싫은 날이다. 바로 그날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동상이 공격을 받았다. 맥아더가 지휘한 9·15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런 때에 반미 시위대 수천 명이 동상 철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평화로웠던 시위는 마지막에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변했다.

 일부 극렬 세력은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둘렀다. 대나무를 땅에 내리치면 끝이 갈라져 날카로운 창이 된다. 죽창은 2m가 넘었다. 경찰의 진압봉은 1m25㎝였다. 전투경찰들은 헬멧을 썼는데 겨우 얼굴의 절반만 가릴 수 있었다. 죽창은 어린 전경의 얼굴을 찔렀고 쇠파이프는 어깨를 부쉈다.

 가장 심하게 다친 전경이 문정현 상경이다. 죽창은 그에게 얼마나 끔찍한 공포였을까. 그날의 폭력이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그의 증언을 세상에 전하고 싶어 나는 그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인천중부경찰서, 경기지방경찰청, 경찰병원, 전투경찰 동우회…. 어디에도 그의 소재를 아는 곳이 없었다. 그가 이 글을 읽는다면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이었다. 민정수석이라면 시위 폭력에 대한 공권력 문제를 다루는 청와대 내 최고 책임자다. 문재인은 2004년 시민사회수석을 맡은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천성산 터널에 반대하며 단식하던 지율 스님을 찾아갔다. 반면 ‘민정수석 문재인’은 반미 시위대를 설득하지도, 부상당한 전경을 위문하지도 않았다.

 반미 극렬 시위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06년 5월 시위대는 평택 미군기지 건설현장을 공격했다. 폭력 시위대는 경찰뿐 아니라 군인도 공격했다. 시민이 국군에게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명숙 총리가 담화를 발표했는데 책임 문제를 두리뭉실 덮었다. 그는 “경찰과 군인,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주민, 이 모두가 우리의 아들딸이고 우리의 형제”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제 모든 당사자가 한걸음씩 물러나 냉정을 되찾자”고 했다. 아니, 폭력 앞에서 경찰이 물러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가.

 이명박 보수정권으로 바뀌어도 극단적 반미의 토양은 변하지 않았다.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위·점거가 벌어졌다. 일부 폭력 시위대는 다시 끔찍한 방법으로 경찰을 공격했다. 새벽 서울 도심에서 젊은 경찰관 2명이 린치를 당했다. 군중은 그들의 상의를 벗기고 몰매를 때렸다. 죽음의 공포에 눌려 경찰 한 명이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돌로 얼굴을 올려쳤다. 시위대는 2인을 마치 포로처럼 경찰부대에 넘겨주었다. 헌법과 법률이 있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터지는데도 대통령과 정권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아, 이들 젊은 경찰관에게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였나.

 1950~53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는 연인원 179만 명이다. 그중 3만7000여 명이 죽었다. 사망 확률이 50분의 1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50분의 1이나 되는 치사율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왔다. 워싱턴 참전기념공원에 적힌 대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2008년 사태 때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억 분의 1이라고 했다. 한국의 반미 세력은 이 먼지 같은 확률을 부풀려 폭력을 선동하고 동맹국 미국을 공격했다. 호주나 아르헨티나 쇠고기라면 그랬겠는가.

 김기종 사건은 김기종만의 것이 아니다. 맥아더 동상 앞에서, 평택 미군기지 부지에서, 광우병 시위현장에서 이 사회가 결연한 자세로 반미 폭력을 부쉈다면 김기종이 감히 테러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 그런 의무에 실패했다. 리퍼트의 흉터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흉터는 폭력에 유약했던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증거물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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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