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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경제사] 19세기 중반 유럽 중산층, 휴가와 여행의 맛에 빠져들다

그림 1 제임스 앙소르, ‘오스텐드에서의 목욕’, 1890년. 벨기에의 휴양도시 오스텐드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유럽 중산층의 모습을 그렸다.
언뜻 보면 이 그림은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는 휴가객이 넘치는 오늘날의 인기 휴양지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참 시간이 흐른 과거의 모습이라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마차 형태의 구조물이다. 말이 끌어서 해변에 설치하는 이 구조물은 이동식 탈의장이다. 해수욕객이 돈을 지급하고 빌려 오늘날의 방갈로처럼 사용하는 것이었다.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둘째 힌트는 구경꾼들의 차림새다. 다수의 남성들은 콧수염을 기른 얼굴에 전통적 모자를 쓰고 있다. 여성들은 긴 드레스와 외출용 모자가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해수욕객들이 입은 줄무늬 수영복이 시선을 끈다. 남성들이 수영복 상의를 입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그림 1의 배경은 1890년 벨기에의 휴양도시 오스텐드이고, 화가는 벨기에 출신인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다. 다른 화가들과 차별화하는 자유분방한 화법과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앙소르는 해안 휴양지를 가득 메우고 낯 뜨거운 볼거리를 연출하는 관광객들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구경하는 사람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경쾌하게 묘사했다.

휴가철에 유명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19세기 유럽에서 본격화했다. 이전에도 여행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중국 주나라에서는 태산(泰山)을 찾아가서 제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로마제국에서는 건강을 위해 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에는 자신이 믿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상류층 자제들이 그리스 로마 및 르네상스의 건축과 예술을 공부하고 고급 예법을 익히기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유행했다. 이때까지도 여행은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게 아니라면 소수의 부유한 귀족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19세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성장한 중산층이 관광과 휴양을 위한 여행이라는 특권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오스텐드는 전형적으로 이런 변화를 겪은 휴양지였다. 1831년 권좌에 오른 국왕 레오폴드 1세는 이곳을 즐겨 찾곤 했다. 1838년 브뤼셀과 오스텐드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자 오스텐드의 인기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1846년에는 영국의 도버로 오가는 페리가 개통됨으로써 국제적 휴양지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였다. 19세기 중반 이래 오스텐드는 휴가 여행을 갈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인기 관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제조업과 상업을 영위하는 기업가, 고급 교육을 받고 대학과 정부에서 일하는 전문가, 그리고 예술가와 같은 프리랜서 등이었다. 이 새로운 중산층은 국적을 불문하고 유명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나누고 생활양식을 교류했다.

그림 2 토머스 쿡이 조직한 첫 여행단, 1841년.
초기에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관광여행이 집단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것도 산업화의 진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업화한 단체관광 시대를 연 인물이 영국의 토머스 쿡(Thomas Cook)이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림 2는 1841년 쿡이 처음으로 모집한 여행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500명으로 구성된 여행단은 기차를 타고 레스터에서 러프버러에 이르는 19㎞의 거리를 왕복 주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845년 쿡은 본격적인 유료 여행업을 시작했다. 기차로 영국 남서부를 출발하여 북부 산업도시 리버풀에 이르는 경로였다. 단체관광은 개인별 여행경비를 낮추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에 사업성이 좋았다.

10년 후인 1855년에 쿡은 최초로 유럽대륙 여행 패키지를 선보였다. 영국에서 출발해 앤트워프, 브뤼셀, 쾰른, 프랑크푸르트,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파리에 도착해서 국제 박람회를 구경하도록 내용이 구성되었다. 여행의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마침내 1872년 쿡은 최초의 세계일주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여행에 꼬박 222일이 걸렸고 이동거리는 총 4만㎞에 달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단지 여행거리 늘리기에 머물지 않았다.

1874년 그는 스위스 여행가이드북을 발간했고, 뉴욕에서 여행자수표(travellers’ cheque)의 초기 형태를 만들었다. 1878년에는 외화환전소를 설립했다. 쿡이 사망한 이후인 20세기에도 그의 회사는 획기적인 여행상품을 계속 만들어냈다. 1919년 최초로 항공여행 광고를 냈으며, 1927년에는 뉴욕에서 시카고로 날아가 인기 권투경기를 관람하는 패키지를 만들었다. 확실히 쿡은 여행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줄 아는 탁월한 사업천재였다. 그의 예를 따라 서구 각국에서 다양한 여행상품이 개발되었고 관광과 관련한 직업에 종사하는 인구도 빠르게 증가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를 거치면서 관광여행은 중산층에서 일반 대중에게로 퍼졌다. 직장에서 휴가 제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많은 노동자가 관광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바닷가 휴양지에 국한되었던 여행지가 알프스산맥과 같은 산악지역, 가족이 함께 찾는 전원지역으로 넓혀졌다. 국내에서 주변국으로, 다른 대륙으로 범위가 확장된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동시에 여행의 수단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철도에서 시작한 관광여행은 유람선과 자동차로 확대되었고, 마침내 20세기 중반에는 여객기가 등장했다.

항공여행의 등장은 관광여행에 한 단계 높은 차원을 제공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에펠탑, 콜로세움, 자유의 여신상, 피라미드를 직접 찾아가 만져보고 올라가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돼 1970년대 초까지 계속된 세계경제의 황금기를 배경으로 항공여행의 인기는 날아올랐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평화로운 국제정세 속에서 여행객들은 변화된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림 3 ‘3주에 유럽 17개 주요 도시 탐방’, 1965년 6월 5일자 뉴요커에 실린 만평.
그림 3은 1965년 미국의 시사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린 만평이다. 미샤 리히터(Mischa Richter)가 그린 이 그림은 당시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항공여행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관광객들이 바쁘게 내려 앞다투어 뛰어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한 공항요원이 동료에게 ‘3주 만에 유럽 17개 주요 도시를 도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 유명한 관광명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풍경은 항공여행이 대중화한 초창기에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관광여행은 사람들이 낯선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세계화 과정의 주요 채널 가운데 하나였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하는 정성이 들어가는 지극히 자발적인 세계화였다. 낯선 음식을 맛보고, 신기한 풍물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휴가를 보내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세계화를 경험하였다. 세계화는 상품과 자본과 기술의 이동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서도 확산하는 것이다. 산업화는 중산층의 성장을 통해, 운송수단의 발달을 통해, 그리고 관광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개발을 통해 세계화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관광산업은 오늘날에도 저가항공, 오지탐험, 공유여행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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