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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왔다갔다 한 일본, 한길로 간 미국

리차드 쿠(Richard Koo)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을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고 규정했다. 버블이 지나치게 커진 다음에 터지니까 가계와 기업이 금융기관에 돈을 계속 갚아야 하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오래 진행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계속 위축됐다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재정도 늘렸다. 그렇지만 일본의 불황은 지금 20년이 넘었다. 리차드 쿠가 아쉬워하는 것은 불황을 10년 정도에 멈출 수도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정부가 저금리와 재정확대를 지속했으면 2000년 경에 민간부문이 디레버리징을 완료하고 다시 레버리징을 하면서 경기가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당시는 세계경제 상황도 좋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경기가 조금 살아나는 조짐이 보이니까 1997년에 소비세를 인상하고 재정개혁에 나섰다. 그러다가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다시 돈을 풀었다. 또 다시 경기가 조금 좋아지는 조짐이 보이니까 2001년에 고이즈미 정부가 재정개혁에 다시 나섰다. 리차드 쿠는 이렇게 ‘정책 지그재그(zigzag)’가 벌어지면서 일본 민간부문의 디레버리징이 끝나는 기간이 2005년으로 미루어졌고, 이에 따라 재정에서 103조 엔(약 1000조 원)이나 돈이 추가로 들어가게 됐다고 계산한다. 게다가 레버리징을 다시 시작하려는 판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기회복에 다시 찬물이 끼어얹어졌다.

물론 리차드 쿠의 분석이 꼭 맞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장기불황에는 대차대조표 상의 문제 이외에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인구문제 때문에 경제에 어려움이 더 심하다면 정책 대응은 더 강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 대응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돼야 했다. 부작용이 나온다고 중단하면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경기 대응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일본이 손해본 것이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반면 최근 공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009년 회의록은 정반대의 사례를 보여준다. 버냉키 연준 의장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며 대규모 양적완화에 되돌아갈 길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케빈 와시 연준 이사는 “국채를 뜨뜻미지근한 상태로 사들이면 효과를 낼 수 없다. 발을 들여놨으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뒤를 받쳤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5년 가량이 지난 2014년 10월경에 종료됐다. 지금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경기회복이 빠른 나라가 됐다. 이로 인해 미국달러가 강세가 되면서 다른 나라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국제금융시장의 불공정함도 있다.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이 일으켰는데 그 때문에 별 잘못 없던 다른 나라들도 함께 고생을 하고, 지금 미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돈이 미국으로 몰리니까 다른 나라들은 다시 고생을 한다. 통화 헤게모니가 없는 나라들이 겪게 되는 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확실하게 해서 경기회복을 끌어냈다는 사실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한국은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팀이 들어오면서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지난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 1%대로 낮추면서 경기대책에 보조를 맞췄다. 한국경제가 일본식 불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금리인하가 이루어지자마자 그렇지 않아도 높은 수준에 있는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가계부채가 지금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 금리인하로 인해 퇴직한 금리생활자들에게 어려움이 가중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부작용이 없는 최선의 정책은 없다. 처음에 정책을 결정할 때에도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함께 보면서 긍정적인 부분이 크다고 판단하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정적인 부분이 처음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정책을 계속 집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얘기를 우리는 흔히 한다. 처음에 가능성이 굉장히 낮아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히 밀고 나가면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물며 정책당국이 그동안 수많은 논의를 거쳐 집행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어줘야 할 때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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