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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랐다 10대에 창업 … 던졌다 졸업장 포기 … 이겼다 악조건 극복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국어사전). 자산이 10억 달러(약 1조1235억원) 이상인 사람(미국 경제지 포브스).

 이들을 우리는 ‘억만장자(億萬長者·billionaire)’라고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1826명에 이른다.

 이 중 290명이 지난 1년 사이 신흥 억만장자로 등극했다. 포브스가 3일 보도한 ‘2015 신흥 억만장자(Billionaires Newcomers)’ 리스트에 따르면 중국인이 25%(71명)로 가장 많고 미국(57명)·인도(28명)·독일(23명) 순이다. 한국인으로는 김범수(49) 다음카카오 의장과 권혁빈(41·서강대 전자공학과·자산 2조2470억원) 스마일게이트그룹 회장이 포함됐다. 스마일게이트는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대히트로 급성장했다.

 포브스는 이 중에서도 김 의장을 포함한 20명을 주목할 만한 인물로 선정했고, 본지는 이 가운데 자산 상위 12명의 삶을 추적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등을 토대로 자라온 환경 등을 살폈다. 그 결과 다음의 키워드가 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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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0대 창업=바이오 벤처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31)는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다. 피 한 방울로 200여 가지 의학검사를 할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을 개발했다. 스탠퍼드대(화학) 2학년이던 19세 때 지도교수에게 창업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홈스는 심지어 더 어렸을 때도 사업을 했다. 고등학생 때 중국 대학들에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미국 대외 원조기관 직원이던 부친을 따라 중국에서 살던 때다. 홈스는 “아버지가 재난 구호 일을 해서 힘든 환경에 있는 전 세계 어린이의 사진을 보며 자랐고, 회사가 직접적인 변화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의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39)도 18세 때 첫 사업을 시작했다. SAT(미국판 대학수능시험) 대비 과외 서비스다. 캘러닉은 SAT에서 1580점을 받았는데 ‘1500점 이상’ 강좌를 만들었다. 그는 “내가 가르친 사람이 400점이나 올랐다”고 광고했다. 그는 이전에 가정용 칼 방문판매도 했다.

 다른 억만장자들은 10대 때 창업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경제활동을 했다. 고속도로휴게소 체인인 파일럿 플라잉 J 주주인 빌 하슬람(57)은 13세 때 주유소에서 일했고, 식당 체인 칙필레 부회장인 버바 캐시(60)는 7세 때 식당에서 광고 노래를 불렀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 창업자인 브라이언 체스키(34)는 10대 때 신발이나 마당 테라스를 다시 디자인하는 일을 즐겼다. 벤처투자회사 세쿼이아캐피털 파트너인 더글러스 리언(57)은 휴양시설 화장실 청소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②중퇴=일정 시간 후 사진·텍스트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앱인 스냅챗을 만든 에번 스피겔(25)은 신흥 억만장자 중 최연소다. 그는 22세 때 스탠퍼드대(제품 디자인 전공)를 중퇴했다. 세 강의만 더 들으면 졸업할 수 있었지만 그는 “스냅챗에 집중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뒀다. 스피겔을 오래 취재해 온 기자는 한 투자자가 거액을 입금했을 때 그가 그 길로 대학을 떠났다면서 “저커버그에 대한 오마주”로도 분석했다.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대학(하버드대)을 중퇴했다.

 캘러닉은 UCLA(컴퓨터공학) 4학년 때 냅스터와 유사한 사용자 간 음악 검색 서비스 회사를 창업하면서 대학을 떠났다. 홈스도 스탠퍼드대를 중퇴했는데 당시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시점부터 일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수업에 참석을 안 해 부모님이 주신 학비는 낭비되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잠깐,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며 살고 싶은지 깨닫는 순간, 모든 게 쉬워졌다.” 이후 홈스는 부모가 마련해 놓은 학자금을 창업자금으로 썼다.

 이들은 자신이 하려는 일이 분명해졌을 때 대학 졸업장에 얽매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와 유사한 경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리스크를 각오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차세대 트렌드를 읽기 위한 중요한 자질로 여겨지는 문화에선 관습적 교육을 건너뛰는 게 기피되기보다는 오히려 환영받는다”고 봤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안정적인 길을 버린 이는 더 있다. 김범수 의장은 한게임 창업을 위해 삼성SDS라는 대기업을 그만뒀다. 하슬람은 부친의 회사에서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어느 순간 회사를 과감히 떠나 백화점 체인인 삭스 피프스 애비뉴에서 전자상거래·카탈로그 부서 최고경영자(CEO)로 3년간 일했다. 이후엔 정치에 뛰어들어 녹스빌 시장을 거쳐 테네시주 주지사에 오른다.

 ③고난 극복=어려운 환경을 이겨 낸 이도 많다. 김범수 의장은 2남3녀의 맏아들로 대학에 간 건 혼자뿐이다. 아버지는 중졸,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 일로,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 일로 자식들을 키웠다. 김 의장의 모 언론 인터뷰 일부. “할머니까지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죠.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어머니가 지방에 돈 벌러 다니신다고 말이죠. 저한텐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모성애 결핍에 대한 트라우마,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 말입니다.”

 리언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부친은 서비스 정비공, 모친은 청소부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우리는 변변찮은 배경에서 온 사람, 이기려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한다. 다른 억만장자 부모들도 사회복지사, 엔지니어, 지역신문 광고 담당 등 비교적 평범한 일을 했다.

 물론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이들도 있다. 억만장자 12명 중 4명은 부모 때부터 부자였다. 다른 3명은 부모가 인텔리였다. <표 참조> 스피겔의 부모는 각각 예일대와 하버드대 출신 변호사다. 하지만 스피겔은 레드불 음료 판촉, 바이오회사 인턴 등 다양한 사회생활을 했다. 난관도 극복했다. 20세 때 바비 머피와 함께 대학 지원 절차를 돕는 서비스 벤처를 차렸지만 이용자가 5명에 불과했다. 그가 대학 수업시간에 스냅챗에 대한 구상을 얘기했을 때는 모두가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창업 이후도 쉽지 않았다. 저커버그가 그와 머피를 불러 스냅챗과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스피겔은 당시 6명인 전 직원에게 『손자병법』을 나눠 줬다. 『손자병법』의 영어 이름은 ‘The Art of War(전쟁기술)’. 그런 이후 각각 30억 달러, 40억 달러에 팔라는 페이스북과 구글의 제안을 모두 물리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에너지음료 록스타에너지 CEO인 러스 와이너(45)도 유명 라디오 진행자인 부친 아래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드카 회사 직원, 여행 컨설턴트, 캘리포니아주 의원 출마와 낙선 등을 거치고 나서 에너지음료에서 성공했다. “기존 음료보다 2배 큰 사이즈를 만들겠다”는 착상을 현실화하려 1년간 캔 생산자를 찾아다니고 700가지 방식을 시험한 뒤였다.

 에어비앤비 아이디어도 초기엔 외면받았다. 대다수가 “낯선 사람 집에 머무르는 건 섬뜩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설마 그 아이디어만 있는 건 아니지?”라고 했다. 체스키의 회고. “사람들은 (자신 같은) 디자이너가 회사를 세워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경영학 석사(MBA)나 박사 출신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 중심의, 공감에 기반하고 창의성을 활용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데 디자이너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의 냉소에도 사업을 밀고 나갔다. 캘러닉은 우버에 앞서 2개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다가 파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홈스는 피와 주삿바늘에 대한 두려움에 의사의 꿈을 포기했지만 이를 혁신의 동력으로 삼았다.


[S BOX] 김범수 “세상의 비밀 가지고 싶나? 딱 6개월 앞서 다르게 보라”

억만장자들이 영감을 얻은 ‘결정적 순간’은 언제일까. 브라이언 체스키는 대학교수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를 꼽는다. “너는 스스로 디자인한 세상에서 살 수 있어. 너는 세상을 바꾸고 새로 디자인할 수 있어.”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은 영화 ‘올드보이’를 말한다. “15년을 가두잖아요. 최민식이 ‘어떤 놈이 대체 날 가뒀나’ 고민하고 관객도 쫓아가죠. 비밀이 풀리니 ‘저래서 가뒀구나’ 하죠. 그런데 유지태가 한마디 합니다. ‘당신이 틀린 질문을 하니까 틀린 답만 찾을 수밖에 없다’고. ‘왜 가뒀나가 아니라 왜 풀어 줬나가 올바른 질문이다’고. 거기서 땅 때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 의장은 “사건 A가 발생했는데 한 발 앞서 사건 B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게 남들이 모르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이라며 “딱 6개월만 앞서 다르게 보고 질문을 던지면 웬만한 건 다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억만장자들은 새로운 자극을 줄 환경에 직접 뛰어들기도 한다. 러스 와이너는 남태평양의 정글을 다니며 허브를 연구했다. 엘리자베스 홈스는 싱가포르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 바이러스를 파고들었다. 댄 캐시는 오토바이를 타는데 “우리 모두는 문신·귀걸이를 한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정교육도 눈에 띈다. 홈스는 어렸을 때 바비인형 대신 수리도구 세트를 생일선물로 받았고 7세 때 타임머신을 디자인했다. 그는 “내가 자라온 방식에서 멋진 점은 어느 누구도 ‘그런 건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란다. 롤 모델도 있다. 홈스는 스티브 잡스를, 체스키는 월트 디즈니를 존경한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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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