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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63> 법률로 본 성(性) 풍속 변천사

성매매 여성들이 2011년 5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 여성들은 ‘성매매 특별법 폐지’ ‘공창제 실시’ 등이 적힌 머리띠를 둘렀다. [중앙포토]

이유정 기자
올해로 도입 11년째를 맞은 ‘성매매특별법’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법률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표적인 성(性) 풍속 범죄였던 간통죄(형법 제241조)는 지난달 26일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이처럼 성풍속 법률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성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법률을 통해 알아볼까요.


성매매 여성들 “생존권 보장” 잇단 시위

 한국은 1948년 2월 미군정이 일제시대 형성된 공창(公娼)을 폐지한 이래 성매매를 금지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61년 “사회 기강을 확립한다”며 도입한 윤락행위방지법이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윤락행위방지법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윤락녀·淪落女)을 처벌한다는 의미가 강했고, 업주 처벌의 법정형 상한도 징역 3~5년으로 낮았다. 그러던 중 2000년 9월 군산 대명동 ‘쉬파리 골목’(집창촌)의 한 업소에서 배전판 누전으로 불이 나 건물 2층에 머물던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한 성매매 여성의 일기장에는 강요와 폭력 속에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은 1000만~2000만원의 ‘선수금’에 묶여 쇠창살이 설치된 쪽방에서 감시당하며 하루에 3~4명의 남성을 상대하는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수사과정에서 포주와 경찰 간의 유착관계도 드러났다. 1년여 뒤인 2002년 1월 군산 개복동 성매매 업소에서 비슷한 화재로 성매매 여성 14명이 비참하게 숨졌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성매매 업주를 강력히 처벌하고 피해 여성을 보호하는 법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00년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김강자(70) 전 서장이 벌인 ‘성매매와의 전쟁’도 성매매 근절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 전 서장은 ‘미아리 포청천’이란 별명을 얻었다.

 국회는 2004년 2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통칭 성매매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업주에 대한 법정형 상한을 징역 10년으로 대폭 높이고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대책도 마련했다. 검찰과 경찰은 “그간 훈방조치해왔던 성매수자도 무조건 입건하겠다”는 강경 방침을 세웠다. 시행 첫날인 2004년 9월 23일 서울 강북의 ‘청량리 588’ ‘미아리 텍사스’등 집창촌에 대한 대대적 단속이 벌어졌다. 성매매 여성 30여 명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푼 채 서울 정부청사 앞에 모여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농성을 벌였다.

 특별법 도입 후 입건된 성매매 업주·성매매자는 2005년 1만5740명→2006년 3만1725명→2007년 3만8439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2009년 7만750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1만~2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가 음성화 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도심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오피방’이 성행하고 신·변종 립카페·키스방 등 유사성행위 업소가 생겨났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업형 성매매 업소 수는 2010년 1806개에서 2013년 1858개로 오히려 52개(2.9%) 늘어났다. 종사 여성수도 4917명에서 5103명으로, 186명(3.8%) 증가했다.

 위헌성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성구매 남성과 업소 건물주가 7건의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재는 모두 각하·기각했다.

 지금도 헌재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위헌 법률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 법은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한 성매매 여성의 문제 제기에 따라 2013년 1월 서울북부지법이 위헌법률심사를 제청했기 때문이다.

 

1955년 여성 70명 울린 ‘카사노바’ 박인수 

1973년엔 여성의 미니스커트도 풍기문란죄로 단속을 당했다. [중앙포토]
혼인빙자간음죄는 독일 옛 형법의 ‘사기 간음죄’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여성 정조법’이었다.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된 사례는 1955년 벌어진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 유명하다. 20대였던 박씨는 댄스홀에서 만난 70여 명의 미혼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 중 유명 여대 재학생과 고위층 자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내가 관계한 여성 가운데 처녀는 단 한 명이었다”고 발언해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1심 재판부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대법원에서 1년 징역형이 확정됐다.

 70, 80년대까지만 해도 혼인빙자간음은 강간과 같은 중범죄로 인식됐다. 75년 서울지검은 “과부와 처녀를 농락했다”며 기소된 최모(44·이하의 나이는 당시 나이임)씨와 이모(32)씨에게 상습 혼인빙자간음죄를 적용해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결혼을 앞세워 여성의 몸을 버리게 하는 일은 엄벌해야한다”는 논리를 폈다.

 유명인을 공격할 때 혼인빙자간음죄가 이용되기도 했다. 1995년 가수 이승철씨는 서모(23)씨로부터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당했다. 서씨는 “이씨가 1991년 7월 해운대 모 호텔에서 처음 성관계를 가진 뒤 94년 9월까지 혼인 약속을 미끼로 성관계를 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씨를 쫓아다니다가 그의 결혼 소식에 상심한 서씨가 꾸며낸 거짓말로 드러났다.

 2002년 10월, 헌법재판소는 7대 2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는 “혼인을 앞세운 남성의 공세에 미혼 여성이 자신의 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면서 “순결한 성을 짓밟는 행위는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벗어난 것으로 국가 형벌권이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7년 뒤인 2009년 심사에서 헌재는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남성이 여성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과장이 수반되게 마련인데 여성이 이를 착오해 피해를 봤다는 것은 여성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 조항이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보호 대상을 한정한 것도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봤다.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여배우 전라 노출한 연극에 공연음란죄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형법상 ‘성 풍속에 관한 죄’(제32장)는 음행매개(제242조)·음화반포(제243조) 및 제조(제244조)·공연음란(제245조) 죄 등 4가지가 남았다. 지난해 간통을 제외하고 성풍속죄로 입건된 사람은 1250명으로, 이 중 5735명(58.8%)이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됐고 313명(25%)은 불기소 처리됐다.

 음행매개죄(성매매 알선)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 조항 역시 보호 대상을 처음에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했지만, 성차별적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1995년 형법 개정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

 공연음란죄는 일종의 풍기문란죄다. 70년대 초반 서울 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은 남성의 장발(長髮)과 여성의 미니스커트를 풍기문란죄로 단속했다. 이때 적용된 법규가 공연음란죄 또는 경범죄였다.

 최근 들어서는 연극·공연 등에서 음란성 시비가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95년 연극 ‘미란다’에 “여배우가 전라의 노출을 했다”는 이유로 연극 최초로 공연음란죄가 적용됐다. 연출가 최모(60)씨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 출연한 인디밴드 ‘카우치’의 멤버 오모(20)씨 등 두 명은 생방송 중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해 공연음란죄로 구속 기소됐다. 오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해당 방송은 폐지됐다.


아내 폭행해 성관계 가지면 ‘부부강간’

 공직자 케이스도 있다. 지난해 8월 김수창(53) 전 제주지검장은 제주시 중앙로 노상에서 음란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범행을 강력히 부인하다가 경찰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찾아내자 혐의를 인정하고 사임했다. 검찰은 김 전 지검장에게 정신과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한편 강간죄 등 성범죄 조항은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2013년 6월부터 형법, 성폭력처벌법, 군형법상 강간 피해자의 대상이 ‘부녀’에서 남성을 포함한 ‘사람’으로 확대됐다.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친고죄 조항도 폐지했다. 2008년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형법상 유기징역 상한선이 30년→50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2013년 5월 대법원은 ‘부부강간’ 개념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를 폭행한 뒤 흉기로 위협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남편(47)에 대해 특수강간죄를 인정해 징역 3년6월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의 강간죄가 보호하는 대상에서 부인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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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