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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취재기자 방담

복교문제를 둘러싼 제적생들의 집단행동과 이를 우려한 이현재 서울대총장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중앙일보사는 학원사태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해결의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진통하는 대학가」를 기획·연재했다. 그 동안 금기로 돼왔던 대학생들의 현실참여운동을 다루면서 취재반은 지금까지의 어떤 기사보다 취재·보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불신의 계곡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취재에 임했던 기자들의 취재 및 기사화과정의 뒷얘기를 통해 학원사태해결의 방안을 들어본다.

▲대학의 문제는 대학인의 손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기획의 목적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원사태 실상 첫 심층보도에 큰 반응|"선진국서도 GNP2천불 접근할 때 겪은 진통"|매스컴이 주도해|해결 실마리 제공|일본 경우|"왜 좌경으로 모나"일부학생 불만

▲어떻든 지금까지 금기로 돼 왔던 학원사태의 실상을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했고, 학생과 학교당국·학부모·정부당국의 견해를 동시에 보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진통하는 대학가」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정부당국은 정부당국 나름대로, 그리고 제적학생들은 그들 나름대로 기사에 전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샌드위치신세라고나 할까요.

▲그랬습니다. 재판에 계류중인 제적학생 어머니의 편지가 게재된 날이나, 제적학생들의 유인물을 소개하던 날은 정부는 물론 대학당국까지도 학생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제적학생들의 항의였습니다. 제적학생 중에는 연재기획 기사의 취지를 오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취재할 때마다 기사의 취지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은 예상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진국에서는 이미 끝난 학원사태를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느냐, 그리고 발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무엇이냐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기획기사를 의도했고, 서울대총장의 이 문제에 대한 호소를 그 계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떤 제적학생은 내용조차 정부에서 제공된 것 아니냐면서 그 예로 서울S대 제적학생 총회사진을 들더군요.

중앙일보가 특종으로 취재 보도한 이 사진을 그 뒤 다른 신문·방송에서도 빌어가 게재·방영하자 똑같은 사진이 여러 군데 나는 것으로 봐 정부관계기관에서 공급한 것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불신의 벽이 얼마나 두텁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지요.

▲지난1일에는 제적학생들이 본사를 찾아와 왜 모임을 갖는 제적학생들을 좌경으로 모느냐, 학생들의 주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등의 항의를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제적생들을 좌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서울대총장이 극히 일부에서 그런 경향을 보이고있다고 우려했고 문교당국자가 그런 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그 같은 사실을 우려할만한 사태로 인식했을 뿐이라고 했더니 수긍하더군요.

▲좌경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실제로는 어느 정도인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제적학생들은 이를 누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을 일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좌경화라는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 및 정부당국자는 그런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81년 이후의 유인물에서 그 같은 증거는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S대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학원사태 때 나오는 유인물을 보면 공산주의식 구호나 표현이 자주 눈에 뛴다는 겁니다.

▲그러나 제적학생들은 복교를 앞두고 자신들이 모임을 갖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것으로, 이를 좌경과격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대학당국이나 정부당국의 속단은 과민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학생들은 대학이 심사를 거쳐 복교를 시킬 경우같이 고생한 동료 중에 누구는 들어가고 또 누구는 못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며 그 점이 우려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이와 함께 대학에 자율권을 준다고 하지만 언제든지 제적시킬 수 있는 학칙이 그대로 있는 한 또다시 쫓겨날 불씨가 남아있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제적학생들은 학교가 자의로 자신들을 또다시 제적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학교는 들어오기 전에 일단 복교하면 소요를 일으키지 않고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라는 것이고.

▲학생과 학교·정부사이에 불신의 벽이 상상이상으로 두텁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들어 오라고해 놓고 언제 또 쫓아낼지 모른다는 학생들의 불안이나, 집단행동은 공격적 성격의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학교측의 태도는 서로를 믿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불신풍토 때문에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믿고 대화를 하게되면 이 같은 문제는 예상보다 해결이 쉽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부나 대학당국은 실정법이나 학칙을 위반한 제적자를 복교시키는 것이「은전」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제적생들은 박탈당했던 배울 권리의 회복, 다시 말하면「복권」이라고 보는 것 아닙니까.

서로가 그렇게 보는 것은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갖고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명분만을 고집하는 한 해결은 어려워지지만 실제로 복교를 하는 절차는 조정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만난 제적학생과 대학당국자는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제적학생이 지금까지의 물리적 학생처벌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정부가 사과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복교는 분명히 복권이라고 생각하고있다고 말입니다. 그 제적생은 따라서 복교의사는 수강신청이나 등록만으로 표시돼야한다는 것입니다. 심사나 각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는 젊은 학생의 자존심을 꺾어놓겠다는 것 외에 아무 뜻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학당국자는 심사란 말이 학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면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지도교수면담만으로 복교 절차를 끝내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등록이나 수강신청만으로 복교절차를 끝내는 것도 좋지만, 학생이 지도교수를 만나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부터 하고 들어오는 것은 자존심을 손상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더군요.

▲제가 같은자리에 앉았던 제적학생과 교수는 그 같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제적학생이 교수를 만나 앞으로 공부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겁니다. 문제를 일으킬 계획이 있는 학생일수록 오히려 더 굳게 약속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교수는 그렇다고 동감하면서도 속을지라도 학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학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지도교수를 찾아 공부하겠다는 약속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하더군요. 그 교수는 교육을 속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면서 속고 속으면서도 정도를 찾는 것이 교육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그처럼 실질적인 문제를 놓고 사제간의 대화가 확산되면 제적 학생들의 복교문제가 크게 문제될 것도 없겠읍니다만 아직도 능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대학당국자나 복교는 곧 지금까지 축적해 온 학생운동 세력의 약화를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제적학생도 없지 않은 것 같았읍니다. ▲ 그렇습니다. 복교허용조치가 발표된지 벌써 한달이 넘어 두달째로 접어들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확고한 방침을 정하지 암S⊂ 대학이 많아요. 다시 말하면 학생들의 눈치를 보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적학생 가운데는 정부의 복교허용조치가 각계에 자리잡은 제적학생중심의 사회 저항세력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학생운동의 역량을 약화시키려는데 의도가 있고, 그냥 복교에 응하는 것은 그 의도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보는 학생도 있더군요.

▲정부당국이 물리적인 제동장치를 약속대로 철수할 때 일부 대학의 이같은 무기력이 자을 능력을 재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더구나 학생들은 벌써부터 대학이 성실하게 대처한 근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적인 문제나 나아가서는 체제문제까지 들고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학자들은 대학소요를 국민소독과 결부시켜 실명하기도 하더군요. 가령 국민소득이 1천 달러에서 2천 달러 사이에 대학생의 현실참여는 가강 왕성하다는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1천 달러를 넘어 2천 달러 사이에서 국민생활의 향상곡선(성취곡선)과 국민의 기대감을 나타내는 기대곡선사이의 격차는 가장 크고,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학생들이 현실참여를 하게된다는 것입니다.

이웃 일본에서 동경대 사건을 시발로 전국1백16개 대학에 분규가 있었던 68년 일본의 국민소득은 1천2백30달러였고, 군마현으로 과격 학생들이 도망가 피살된 뒤 이들 세력이 국내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의국으로 나갔다가 완전히 프튼 72년 국민소득이 2천4백%달러였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68년에 처음으로 일본의 국민소득은 1천 달러를 넘어섰죠. 그때 동경대 소요사건이 일어났고 69년 전 대학으로 번지면서 학원의 민주화를 들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68년 기동대가 31회 출동, 5천5백47명의 대학생을 체포했고, 69년에는 무려 9백38회나 출동, 1만6백28명의 학생을 체포했죠. 계속되는 학원소요에 싫증이 난 시민들의 여론에 힘입어 물리적으로 이를 해결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좌경 과격파가 국내에 발붙이지 못하고 외국으로 활동 무대를 찾아 나선 것이 70년으로, 당시 국민소득은 1천6백36달러였죠. 적군파가 요도호를 납치, 김포공항을 거쳐 평양으로 가지 않았읍니까. 국내의 과격파는 군마현의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가 무차별 피살되고 그 잔당이 외국으로 달아나 72년 텔아비브 공항의 적군파 총기난사 사건을 끝으로 좌경 과격파 학생들은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고 대학은 안정을 찾게됐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경우 반드시 국민소득이 2천 달러를 넘게되면 학원사태가 없어질 것이냐는 데는 이견도 많은 것 같습니다. 국민의 경제적인 생활 외에 정치·사회전반의 발전이 비슷한 수준이 돼야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당시 분쟁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모든 대학이 소요로 나날을 보내고 국력을 낭비하자 매스컴이 일제히 그 실태를 속속들이 보도하면서 사회에 알렸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국가전체가 해결방안에 합일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통하는 대학가」는 모든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학원사태의 심층을 함께 생각해봤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었고 독자들의 반응도 컸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학원사태의 실상이 그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좀더 자세히 사회에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를 집에다 가둬두고 자신들이 학교를 찾아 복교상담을 하는가하면, 제적학생들의 복교대책 모임에 나가 학교로 돌아가라고 설득도 하더군요.

▲엇갈린 반응속에서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학생들의 잠재된 의식을 읽으며 어떻게 해서라도 학교로 돌아가도록 도와야하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얻었읍니다.

▲학교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학교당국과 다시 교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학생들이 하찮은 일로 맞서있다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학교당국자와 제적학생, 그리고 정부당국과 학부모가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하는 좌담을 마련하려고 노력했고 교수나 학생의 글을 받으려고도 했으나 교수는 소신을 밝히려하지 않았고, 당국자와의 대화에 제적 학생들이 응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읍니다.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서로의 주장을 털어놓는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는데 노력하도록 해야겠읍니다. 이번에 보았던 것처럼 불신의 벽을 헐지 않는 한 대학의 학원사태 해결은 어렵고, 국가의 지적 에너지 낭비는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취재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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