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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승마·스키·골프장 … 김정은 왜 상류층 시설 집착할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오른쪽 둘째)이 지난해 4월 부인 이설주(맨 오른쪽)와 함께 평양 해당화관을 방문해 철판구이 요리 시범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처형된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오른쪽 셋째 의자에 손 올린 사람)도 보인다. 6층 규모의 해당화관은 음식점과 쇼핑센터 등이 갖춰진 편의시설이다.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이 연일 활짝 웃고 있습니다. 노동신문 어제 아침자 1면에는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앞에서 파안대소하는 얼굴이 크게 실렸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남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웃음짓게 만든 걸까요. 명사십리와 겨룰 송도원 해수욕장의 절경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마쳐 재개장이 임박한 야영소에 들른 김정은은 공사가 잘됐다며 큰 만족감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야영소의 모든 건축물과 시설들이 규모에 있어서나 형식과 내용에 있어 사회주의 문명국의 체모에 맞을 뿐만 아니라…(후략)”라고 강조합니다. 규모를 가장 앞세워 언급한 게 눈길을 끕니다. 과거 사회주의권 청소년들에게 캠프 장소로 제공돼 북한체제 선전장으로 활약하던 이 야영소가 리모델링을 계기로 다시 흥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스위스 유학 시절 접한 문물 영향 커

 요즘 김정은의 통치활동은 대형 건축시설에 쏠려 있습니다. 신축은 물론 북한에서 ‘개건(改建)’이라 부르는 리모델링에 집중 투자 중이죠. <그래픽 참조>

 통일부 정세분석국에 따르면 평양과 지방 대도시 위주로 적어도 18곳 이상에서 건설이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완공한 마식령스키장이 대표적입니다. 원산과 이웃한 강원도 문천에 12개의 슬로프를 갖춘 대규모 스키장을 몇 개월 안에 완성하라며 최고사령관 김정은은 강원도 지역 5군단 병력을 투입합니다. 스키 시즌에 맞춰 개장하라는 통에 횃불을 동원한 야간공사까지 펼쳐 ‘마식령 속도’란 신조어까지 나왔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자 노동신문에는 완공 기사가 실렸습니다. 말도 쉬어 넘는다는 의미의 해발 768m 마식령(馬息嶺)에서 분투했을 군인 건설자들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지난해 10월 평양에서는 문수물놀이장도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었습니다.

 대형 건축물이나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거대한 동상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야노스 코르나이 박사는 1992년 저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The Socialist System)』에서 이를 군수·중공업 우선정책 등과 함께 중요한 사회주의 의 특성으로 꼽았습니다. 그는 ‘거대함에 대한 숭배(cult of scale)’나 ‘거대화(gigantomania)’란 표현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의 문제점은 거대 건축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핵심은 민생과 동떨어졌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2012년 11월 평양 외곽 군부대의 기마훈련장을 방문합니다. 멋진 승마 실력을 보인 그는 주민을 위한 승마장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승마가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해 청소년과 인민들의 건강관리에 좋다는 이유였습니다. 2012년 7월에는 능라인민유원지를 만들면서 미니 골프장을 만들기도 했죠.

대형 건축·시설 숭배는 사회주의 특성

 승마와 스키·골프는 우리도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3대 레저 스포츠입니다.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2012년 기준)은 우리 돈 137만원으로 2559만원인 남한의 19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김정은 체제가 2400만 인구 중에 200만~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특권층만 챙기는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2년이 흘렀지만 일반 주민들이 체감할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입니다. 지난해 3월 말 야심작으로 내놓은 ‘경제·핵 병진노선’도 1주년을 슬그머니 넘겨야 할 정도로 시원찮습니다. 핵무기를 가졌으니 군사비를 경제 건설에 돌릴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지난 9일 최고인민회의는 지난해 예산 대비 국방비 비중이 16%(실제로는 은닉 예산 등으로 30% 수준)였고 올해는 15.9%로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0.1%포인트의 차이로 주민들을 달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경제가 이런데도 김정은이 왜 스키장과 대형 물놀이장에 집착할까요. 흥미로운 분석은 스위스 조기유학과의 관련설입니다. 그가 물장구쳤던 스위스의 초대형 워터파크 ‘알파마레’를 본뜬 게 문수물놀이장입니다. 스키광으로서 북한에도 번듯한 시설 하나는 갖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평양에 등장한 현대식 수퍼마켓을 김정은이 직접 방문했는데, 진열장을 채운 초콜릿 등이 대부분 스위스산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문제는 김정은의 꿈과 북한 경제 현실 사이의 큰 간극입니다. 2012년 5월 평양의 대표적 놀이시설인 만경대유희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김정은은 잡초를 제대로 뽑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직접 허리를 굽혀 제초작업을 합니다. 마식령스키장의 리프트를 유럽산으로 들여오려던 계획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막혀 좌절됩니다. 결국 녹슬고 엉성한 중고품 수준으로 개장할 수밖에 없었죠. 초라한 리프트를 타고 마식령을 오르던 김정은이 왜 한 손에 담배를 피워물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건축대학엔 시카고 마리나 시티 사진

 지금 북한에선 김정은 제1위원장을 막고 나설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후견 역할을 해 온 고모부 장성택이 지난해 12월 처형되고, 고모 김경희마저 물러난 상황입니다. 지난해 11월 평양건축종합대를 방문한 그는 이곳이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의 척후대이자 건축 인재 양성의 기지”라고 치켜세웁니다. 강의실 벽에는 미국 시카고의 ‘마리나 시티’ 빌딩을 콜로세움이나 마르세유 궁전과 함께 세계의 대표 건축물로 소개한 영문 게시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정은의 곁을 밀착 수행한 마원춘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은 건축 분야 책사 역할을 하며 최고 실세로 부상했습니다.

 김정은에게 대형 건축 은 어떤 의미일까요.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명쾌합니다. “건축은 체제를 웅변한다”는군요. 일찌감치 서방을 향해 눈을 뜬 30세 청년지도자 김정은은 앞으로 어떤 건축물로 메시지를 전할까요.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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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