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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강상(姜尙)과 육도략(六韜略)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상.주(夏商周)의 마지막 왕조인 주(周)의 발상지는 황허(黃河)의 상류 오르도스 사막지역으로 연간 강우량이 250mm 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의 지방 호족 태공(太公)은 3명의 아들을 두었다. 막내 계륵(季歷)이 아버지의 신임을 독차지하자 위로 두 형들은 아버지의 뜻을 미리 알고 멀리 피해준다. 계력의 아들 창(昌)은 지혜롭고 용맹하였다. 천자국 상(商 후에 殷으로도 불림)은 충성스러운 창을 서부지역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서백창(西伯昌)으로 봉하였다. 그가 나중에 주의 문왕으로 추증된다.
인재를 구하고 있던 문왕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기인(奇人)을 만나게 된다. 그는 흔한 낚시꾼이 아니었다.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전략가로서 당시의 정세를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상(商)의 취약점을 낱낱이 알고 왕(紂)의 폭정에 제후들이 궐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도 아는 병법가(兵法家)였다. 창은 자신의 할아버지(太公)가 늘 바라던(望) 사람을 만나 것이라고 기뻐하였다. 그가 후에 태공망(太公望)으로 불리었던 강상(姜尙)이다. 대략 기원전 11세기경의 이야기이다.
강상은 본래 동이(東夷)사람으로 지금의 산동성 출신이다. 상의 하급관리로 근무하였는데 왕의 폭정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민생이 안정되지 않아 상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벼슬을 버린다. 그는 지금의 시안(西安)근처의 판시계곡(蟠溪峽)에 은둔생활을 통하여 언젠가 필요할 병법(兵法)을 연구하고 인근의 위수(渭水)에 낚시를 하면서 자신을 알아 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상이 은거 10년 만에 현인을 만났으니 그가 문왕이다.
처음 문왕의 관심을 끈 것을 강상의 낚시 바늘에 있었다. 강상의 낚시 바늘이 굽어있지 않고 똑 바름(直勾)을 이상하게 생각한 문왕은 그 까닭을 물어 본다. 강상이 답하기를 자신의 낚시는 미끼를 끼워 물고기를 속여 잡는 것이 아니고 물고기가 스스로 낚이고자 할 때 비로소 물고기를 잡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유명한 ‘강태공의 낚시는 원하는 자가 문다(太公釣魚 願者上鉤)’라는 말이 유래 된다. 문왕이 크게 감동하여 강상의 인물됨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문왕은 강상을 중용하고 그의 딸(邑姜)을 며느리(무왕의 부인)로 삼으면서 사돈이 된다.
강상이 하급 관리를 그만두고도 농사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병법서를 읽거나 하루 종일 낚시를 하면서 소일하자 부인의 불만은 늘어 갔다. 낚시라고 하지만 미끼 없는 곧은 낚시 바늘에 물고기가 잡힐 리가 없었다. 집안의 땟거리가 없게 되자 참 다 못한 부인은 도망을 간다. 후에 강상이 높은 벼슬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부인이 찾아 와 용서를 빌었다.
찾아 온 부인을 만난 강상은 하인을 불러 대야에 물을 떠오게 한다. 하인이 물이 가득한 대야를 가지고 오자 강상은 부인이 보는 앞에서 대야의 물을 바닥에 쏟아 버린다. 그리고 부인보고 이 쏟아진 물을 다시 대야에 담을 수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부인은 말없이 돌아 가버린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고사다. 후에 줄여서 복수불반(覆水不返)이란 4자성어가 되었다. 영어의 격언에 'It's no use crying over split milk'라는 말과 상통된다.
한편 포악한 상(商)의 주왕은 문왕이 제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하였다. 주왕은 인질로 잡아 둔 문왕의 장남을 죽이자 문왕은 상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지만 실행을 못하고 죽는다. 문왕이 죽자 둘째 아들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그가 후에 주를 건국한 무왕이다.
무왕은 동생 주공단과 강상의 지략과 병법을 이용 상을 칠 것을 논의한다. 그러나 강상은 무왕에게 서두르지 말 것을 권한다. 그가 낚시에 배운 진실은 서두른다고 될 것이 아니고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상의 주왕이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쪽의 이민족(東夷)을 정복하러 떠나 수도를 비웠다. 주나라는 이때를 노려 기습적으로 공격한다. 상의 주왕은 동이를 공격하다 오히려 자신이 멸망하게 되는 위기에 처한다(紂克東夷 而損其身)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상은 72만의 대군을 앞세워 4만5천명의 주를 압도한다.
주(周)는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상의 대군을 목야(牧野)에서 패퇴시킨다. 주의 군대가 절대 열세임에도 승리한 것이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상의 군대 속에 제대로 싸우지 않은 노예군단, 주의 충성스러운 10명 신하(十亂臣), 상의 이반된 민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지만 후세 역사가는 군사(軍師)로서 강상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대 중국에 최고의 병법서로 무경7서(武經七書 Seven Military Classics)가 있다. 그 중 육도(六韜 Six Secret Teachings)와 삼략(三略 Three Strategies) 2개를 강상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도는 6가지의 비밀 전략이고, 삼략은 전투에서의 상중하 3가지 전략과 전술이 중심이 되어 있다. 도(韜)는 칼집 또는 화살집으로 무기를 감추는 것을 의미하여 육도는 육도략(六韜略) 즉 여섯 가지의 비밀전략으로 해석된다.
육도략은 1)문도(文韜): 치국과 인사(用人)에 대한 도략(韜略) 2)무도(武韜): 용병에 대한 도략 3)용도(龍韜): 군사 조직에 대한 도략 4)호도(虎韜): 전쟁환경, 무기체계 그리고 포진(布陣)에 대한 도략 5)표도(豹韜): 전술에 대한 도략 6)견도(犬韜): 군대의 지휘 훈련에 대한 도략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중국에는 초한전(楚漢戰)을 승리로 이끈 유방(劉邦)의 참모 장량(張良)과 후한(後漢)말 유비(劉備)의 촉(蜀)을 도운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대표적인 군사(軍師)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전국(戰國)시대인 16세기 전후하여 중국의 병법서가 대거 도입되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사후 혼란스러운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도운 다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구로다 간베에(黑田官兵衛)가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강상의 육도와 삼략을 필독서로 두고 연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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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