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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지난주 내내 ‘김영란’ 이름 석 자가 뜨거웠습니다.
신문, 방송은 물론 각 포털 사이트에도 어김없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이른바 ‘김영란법’ 논란 때문입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봤습니다. ‘2012.12.11 김영란 폴더’에 사진이 저장돼 있습니다.
폴더 속의 사진은 활짝 웃음으로 사람 좋음을 보여주거나 강한 눈빛으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 사진을 찬찬히 보며 고민을 했습니다. 사진취재 뒷얘기를 쓸지 말지 망설여집니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안’의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론을박 논란이 뜨거운 상황입니다. 저 또한 이 법안의 이해당사자인 기자이기에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영란 교수(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마저도 공항에 몰려든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해외로 출국할 만큼 ‘뜨거운 감자’입니다.

논란도 논란이지만 포털 사이트엔 ‘김영란’이 누구냐, 왜 ‘김영란법’이냐는 질문도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김영란’이란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김영란법’이냐는 우스개 질문도 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을 만나기 전, 저 또한 이처럼 궁금했었습니다. 당시 인터뷰를 지켜보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 궁금증이 해소된 기억이 있습니다. 인터뷰상황을 간략하게나마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 ‘김영란’이 누구냐, 왜 ‘김영란법’이냐는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이 되리라 판단했습니다.

18대 대선(2012.12.19.)을 일주일 남짓 앞둔 2012년 12월 11일 오후 2시, 삼청동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검은색 정장차림에 천으로 된 에코백을 메고 나타났습니다. 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사람이자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천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모습, 흔히 그려지는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천가방에서 복사된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김영란 법’ 관련 자료들입니다. 당시에도 세간의 관심을 끈 사안이었기에 질문을 예상한 듯 많은 자료를 준비해 왔습니다. 보충설명을 위한 관련 논문도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많은 양의 자료를 준비해 왔다는 것은 그만큼 하고픈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겁니다.

당시 취재했던 조현숙 기자가 선거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주자이고 대선 막바지 열기가 한창인 시기였으니 당연한 첫 질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이미지 선거가 아니고 정책 선거의 모범을 보이겠다 하니 제가 따로 할 것이 없죠.
정책집 오탈자나 잘못된 것 고쳐주는 정도죠. 그리고 아침에 밥이나 챙겨서 보내는 정도입니다.”

국민권익위원장을 사직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을 텐데 구태여 사직한 까닭이 궁금하다 했습니다. 더구나 직접 길거리에 나서는 이미지 선거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제가 봐도 딱히 사직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남편이 대선에 출마했다고 해서 아내가 공직을 그만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무직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함께하며 일을 해나가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물러나는 게 당연합니다.”

지난 8월 16일 ‘김영란법’ 입법예고 기자 간담회까지 한 상황에서 그만두게 되어 아쉽지 않은 지 물었습니다. 사실 법안을 주도적으로 제정하고 추진했기에 별칭조차 ‘김영란법’인 상황입니다.

“남편이 올해 6월부터 대선 출마 얘기를 하긴 했지만 설마 했습니다. 대선 준비 작업을 전혀 하지 않아서 직전까지도 믿지 않았습니다. 설득하고 말리면 행동에 옮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임기를 다 못 마치고 그만두어 직원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제게서 나올 건 다 나왔다 생각합니다.”

지금 공직자윤리법도 있는데 이 법을 따로 만든 까닭을 알려달라 했습니다.

“공직자윤리법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판사 시절 재판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 앞에 어마어마한 상자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뜯어보지도 않고 연락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상자를 뜯을 경우, (준 사람이) 내가 돈을 가져갔다고 우기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니까 이 법은 일종의 행동강령입니다. 이제 이런 법안이 꼭 필요한 사회가 됐습니다. 공무원 수가 많아졌고 업무도 다양해졌습니다. 공무원이 되는 경로도 다양해졌습니다. 성추문 검사, 뇌물 받은 검사 사건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 법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만 잘하면 윤리는 저절로 따라준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옛날엔 대가족과 유교, 농업공동체 사회에서 자라면서 윤리를 익혔지만 지금은 아니죠. 개인들이 하나의 핵처럼 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율은 중시해야 하지만 ‘여기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걸 철저히 훈련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엄격한 제재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합니다.”

단도직입으로 ‘김영란법’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그럴 것으로 봅니다.”

이 법안을 주도한 김영란 전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들입니다. 답변들을 들으며 ‘김영란법’의 요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것과 지금의 것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의 예상처럼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답변 내용을 정확히 하기 위해 당시 조현숙 기자의 인터뷰 기록과 2012년 12월 29일 중앙일보 18, 19면에 게재된 기사를 참조하고 발췌했습니다.)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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