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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장 용퇴 요구 … 군법회의선 "무죄"

최영희
“한국군은 젊은 장교들의 선동으로 고위 지휘관들이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유능한 장성에게 압력을 가해 강제로 예편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1960년 9월 21일 미국 국방부 군사원조국장 윌리스톤 파머 대장이 김포공항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최영희(중장) 합참의장 초청으로 사흘 전 방한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군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의사 표시였다.

정군파 장교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9월 24일 김종필 중령을 포함한 영관급 30여 명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화살은 파머 대장이 성명을 발표할 때 옆에 있었던 최영희 합참의장에게로 향했다. 김종필 중령은 “최 의장을 찾아가서 따지자”고 제안했다. 그 길로 대령 5명과 중령 11명이 지프를 타고 합참으로 향했다. 뒷수습을 위해 김종필과 석정선 중령은 일행에서 빠졌다.

 16명은 최영희 합참의장에게 해명을 요구하며 정군을 위해 용퇴하라고 건의했다. 이들은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죄목은 ‘부대 내에서 무질서 행위’. 이 일은 ‘16인의 하극상 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군법회의는 60년 12월 16명 중 1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분에 넘치는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다만 김동복 대령은 최 의장에게 “각하는 행운아십니다. 외국 대사로 영전해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말한 게 ‘상관 불경죄’에 해당돼 유죄(징역 3개월, 집행유예 1년, 파면)를 받았다.

 김동복은 혼자 파면당한 게 억울했다. 그는 이듬해 1월 재심 탄원서를 제출한다. “주동 인물은 김종필·석정선 중령이다. 그 배후엔 고위 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김종필·석정선 중령은 61년 2월 4일 구속된다. 61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는 “육군 당국은 16명 장교사건에 관련된 김종필·석정선 중령을 불일 내에 예편 조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김종필의 이름이 처음 신문 지상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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