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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통닭거리엔 '통닭'만 없다






6가지 코스 요리. 주재료는 하나다. 바로 닭이다. 주재료가 같아도 맛과 식감은 요리별로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담백하고 어떤 것은 매콤하다. 쫄깃한가 하면 부드러운 요리도 있다. 코스는 내놓는 순서대로 닭 가슴살 회, 닭발·날개 무침, 모래주머니 회, 닭 주물럭, 백숙, 닭죽이다.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에는 이런 코스를 내놓는 집이 10곳 있다. 없는 요리는 기름에 튀긴 ‘통닭’. 그럼에도 닭집이 모인 곳의 이름은 ‘통닭 거리’다.

 원조집은 ‘장수통닭’이다. 1995년 작고한 박상례 할머니가 75년 작은 가게를 연 게 시초다. 남편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홀로 1남3녀를 키운 지 30년 된 시점이었다. 서울에서 건설 기술자로 일하다 고향에 내려온 장남 안재근(73)씨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는 주막을 겸했다. 잔술과 함께 닭백숙과 두부, 삶은 계란 등을 내놨다. 마당에서 키운 닭을 잡아 백숙을 끓였고, 직접 재배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었다. 원래 음식 솜씨가 있었던 것일까.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몰렸다. 86년 옆으로 장소를 옮겨 백숙 전문 식당을 열었다. 그게 지금의 장수통닭이다.

 단골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아들 안씨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전했다. 때론 음식 정보도 있었고, 때론 맛 내는 법을 코치하기도 했다. 그중 귀에 들어온 게 “전남 화순 같은 데서는 닭 가슴살로 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는 얘기였다고 안씨는 말했다.

 마침 “퍽퍽하다”며 손님들이 백숙의 가슴살에 잘 손을 대지 않던 때였다. 닭을 잡은 뒤 그런 가슴살을 발라 내 참기름과 깨로 양념해 회를 내놨다. 88년의 일이었다. 이게 인기를 끌었다. 안씨는 “초기엔 가슴살을 숙성도 시켜 보고 냉동도 해 봤는데 역시 최고는 갓 잡은 닭을 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안씨와 함께 40년간 닭 요리를 해 온 아내 이철례(70)씨 역시 “냉동은커녕 잠시 냉장고에만 넣어 놔도 이 맛을 못 낸다”고 거들었다.

 이듬해 안씨는 고추장 양념한 주물럭 닭불고기를 개발했다. 가슴살과 다리살로 만든 것이었다. 회를 좋아하지 않는 손님을 겨냥했다. 하지만 회에 맛을 들여 주물럭마저 굽지 않고 양념한 채 날로 먹는 손님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닭 요리가 추가되면서 아예 차례로 내놓는 코스 요리를 메뉴에 추가했다. 안씨는 “똑같이 닭으로 만든 요리지만 맛이 달라 물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고 했다. 코스는 즉석에서 잡아 가슴살 회를 만들고 남은 다른 부위까지 한꺼번에 팔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회와 주물럭에 가슴살 반과 다리 한쪽을 쓰고 백숙은 나머지 몸통과 날개·다리 절반만으로 끓여 내는 식이다.

 코스 중에는 닭 날개 회무침과 모래주머니 회도 나온다. 닭 날개는 뼈를 발라 낸 뒤 마늘과 참기름에 버무린다. 백숙은 소금에 찍어 먹는 여느 식당과 달리 대파를 썰어 넣은 초간장에 찍어 먹도록 한다.

 원조집이 성공하면 어디든 그렇듯 90년대 말부터 코스 요리 닭집들이 주변에 문을 열었다. 이들이 신메뉴 경쟁을 벌였다. 토종닭을 묵은지와 함께 요리한 ‘묵은지 탕’이 생겼다. 오븐에 구운 닭발구이, 사과·배 같은 과일 양념으로 숙성시킨 닭 육회 또한 개발됐다.

 통닭 거리가 형성되자 마을 이름을 옛 지명대로 부르자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이곳의 옛 이름은 ‘황계동(黃鷄洞)’이다. 지형이 알을 품은 닭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조집의 안씨는 철저히 수탉만 요리에 쓴다. 암컷은 기름기가 많아 쫄깃함이 덜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3일 안씨의 식당에서 만난 김해춘(62·부산시 영도구)씨는 “처음 회 맛을 들이고, 다음엔 코스 맛보는 재미에 부산에서 여기까지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10년 넘게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최경호 기자

사진 설명

사진 1 닭발.날개 무침과 모래주머니 회
닭발?날개 무침은 오돌오돌하고 모래주머니 회는 쫄깃쫄깃하다. 전남 해남군 장수통닭 집에서 자체 개발한 메뉴다.

사진 2 닭가슴살 회 닭가슴살 회는 갓 잡아 만드는 게 원칙이다. 고기를 냉동 또는 냉장하면 회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사진 3 주물럭 구이용 주물럭은 닭다리와 가슴살을 고추장 양념해 만든다. 굽지 않고 날로 먹는 손님들도 있다.

사진 4 백숙과 닭죽 해남 통닭 코스 요리의 마지막은 반 마리 백숙과 녹두를 넣고 쑨 죽이다. 죽은 무제한 제공한다.[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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