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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한 발짝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

한비야
구호활동가
이화여대 초빙교수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건 말라리아 예방약 부작용 때문이었다. 세계 일주 2년차, 아프리카 대륙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종단할 때였다. 어디를 가도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고 있는 여행자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3개월 이상 복용을 금지할 만큼 독한 말라리아 예방약을 더욱 열심히 챙겨 먹었다. 그러길 6개월, 에티오피아 오지 중의 오지인 오모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가벼운 구토증으로 시작, 곧바로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고 눈에 식초가 들어간 듯 따갑고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급기야 물까지 토하는 심한 구토증 때문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서 몇 날 며칠을 창문도 없는 작은 흙방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어야 했다.

 그 후, 수개월에 걸쳐 계획했던 아프리카와 중동 여행을 모두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건강진단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는 내 간 수치가 너무 높다며 2주일 후 떠나기로 했던 중남미 여행을 극구 말렸다. 적어도 석 달은 푹 쉬어야 한다며.

 그때 마침 내 여행기를 연재하던 여성지 편집장이 출판사를 차렸는데 쉬는 김에 책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오, 굿 아이디어!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게 지겨웠는데 일기장 정리하는 셈치고 책을 쓴 후, 그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곧바로 친구 시골집에 틀어박혀 수다 떠는 기분으로 두 달 만에 일필휘지 쓴 책이 1996년에 나온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다.

 책이 나오자마자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여행책이지만 신기한 여행지 얘기가 아니라 순박하고 진솔한 사람들 얘기를 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 후 건강이 회복되어 여행을 계속했고 99년 총 6년에 걸친 세계 일주가 끝나자마자 마라톤 선수가 홈그라운드를 돌며 마무리하듯 국토종주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와 함께 『바람의 딸』 시리즈도 5권으로 완간되었다.

 『바람의 딸』 시리즈는 내게 상상도 못했던 것을 주었다. 우선 ‘바람의 딸’이라는 예쁜 별명을 얻었고, 인세 덕분에 돈 떨어지면 여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자 혼자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육로로만 다녔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하며 많은 사람에게 배낭여행을 할 용기를 주었다는 점이 제일 뿌듯하다.

 여섯 번째 책 『중국견문록』은 중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1년간 중국에서 어학 연수한 얘기다. 사람들은 이런 생활에세이가 먹히겠느냐며 반신반의했지만 나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사람이 각자의 관점에서 본 중국을 글로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서 좋기는 한데 여전히 표지 사진이 문제다. 사진 찍기 전날 밤에 라면을 먹고 자는 바람에 얼굴이 퉁퉁 부어 예쁘게 나오기는커녕 내 얼굴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표지 사진을 바꿔달라고 출판사에 여러 번 얘기했는데 번번이 이제 와서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단다. (흑흑흑. 내 책 표지를 왜 내 마음대로 못 바꾸냐고요?)

 그러고는 2005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5년간 월드비전 한국 긴급구호팀장이자 국제 월드비전 식량 담당으로 일했던 대형 재난 현장 이야기다. 이 책에 대해 출판 담당 기자와 출판 관계자들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렇게 무겁고도 생소한 주제의 책이 대중서로 팔리겠느냐고.

 많은 전문가(!)의 우려와는 달리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고 급기야는 100만 권이 팔리면서 지난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까지 선정되었다. 꿈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구호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전 세계 재난민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관한 책이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책을 낸 출판사가 해외 도서전 등에 가서 한국에선 이런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뻐기면 다들 부러워하며 "한국 독자 수준이 상당히 높네요”라고 한단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여전사처럼 앞으로를 외치며 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책이라면 같은 구호현장 얘기지만 『그건, 사랑이었네』는 숨 가쁜 일과를 마친 후 따끈한 차를 마시면서 조곤조곤 얘기 나누는 느낌이란다. 독자들 눈이 제일 정확하다.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썼으니까.

 지난 주말 6년 만에 아홉 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은 『1그램의 용기』.

 “겨우 1그램요? 기왕 주는 김에 1킬로그램쯤 주면 안 될까요?”

 그런데 아는가. 1그램이면 충분하다. 할까 말까, 간절함과 두려움이 50대 50으로 팽팽히 맞설 때 1그램의 용기만 있어도 해보자는 쪽으로 확 기운다. 눈 딱 감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단언컨대 고비 고비마다 수많은 사람에게 받았던 작은 응원과 용기다. 아침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했던 그 1그램의 용기, 이제 여러분에게 보태드리고 싶다. 부디 받아주시길.

한비야 구호활동가·이화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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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