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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리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역사의 흐름을 냉철히 지켜보며 민족의 결의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한 3·1 독립선언서는 우선 수려하고 엄숙한 그 문장에 압도되어 감격하게 된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한 지 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답답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그렇듯 명철한 상황 판단과 대처방안을 당당하게 공포할 수 있었는지 우리로선 선조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독립선언서는 어떤 권력자나 정치집단의 작품이 아닌 ‘2000만 민중의 성충을 합하여’ 포명되었다는 데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전 인류공존 동생권(同生權)의 정당한 발동’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처음부터 세계사의 본류를 타고 지구촌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기본 방향과 전략이란 귀중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구시대의 유물인 서양제국주의의 식민화 악습을 모방하여 수천 년 함께 살아온 이웃을 침탈한 일본의 무신(無信)을 죄하려 아니하고 소의(少義)를 책하려 하지 아니한 것은 단순히 절체절명의 처지에 몰린 약자가 오히려 의연한 자세를 고집하는 소극적 저항이 아니라 동북아 한·중·일 3국이 확실한 공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경고하는 엄중한 판단의 결과였다. 이미 10년 전인 1909년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 집필에 몰두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동양삼국의 공생·공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필생의 노력이었다. 독립선언서의 명구(名句)처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리오’.

 그로부터 100년, 수많은 굴곡을 넘으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21세기 중심지역으로 부상할 듯 보였던 아시아, 특히 동북아 국가들이 공생·공영의 지역공동체로 발전하지 못한 채 오히려 구시대의 유물인 상호 반목과 분열의 징조가 짙어지는 불길한 사정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 간의 퇴행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양식 차원에선 진지한 반성과 동양평화로 향한 바람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을 느낀다면 과도한 낙관론에 마비된 것일까.
 
 새해 1월 1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 사설이 좋은 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올해에는 전쟁에 대한 반성에 더하여 평화국가로서 걸어온 길을 확인하고 과거보다 미래로 시선을 돌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러일전쟁 직후, 당시 예일대 교수였던 사학자 아사카와 간이치(朝河貫一)가 조국 일본을 걱정하며 1908년 저술한 『일본의 화기(禍機)』에서 ‘일본 국민은 꼭 필요한 무기인 건전한 국민적 반성력을 아직도 갖추지 못했다’고 경고한 구절을 인용하며 ‘그로부터 한 세기, 우리는 과연 반성력을 갖추게 되었는가’라고 독자에게 반문했다.

 같은 날 나온 아키히토 일왕의 신년사에는 ‘이번 기회에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월 20일 나루히토 왕세자는 생일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려고 하는 오늘날, 겸허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한 경험이지만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본은 전쟁의 참화를 거쳐 전후에 일본헌법을 기초로 노력한 결과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고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듯 동양평화를 강조하는 일본 국왕이나 왕세자의 입장에서 왕실이 일본인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인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처참한 패전과 눈부신 재기의 경험을 일본과 같이한 독일 디 차이트(Die Zeit)지(紙) 요헨 비트너(Jochen Bittner)의 ‘화해를 통한 동양평화의 첫걸음은 일본이 용기와 아량을 갖고 내디뎌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이웃의 신뢰를 얻는 것이 국가위상 정상화의 첩경이라는 것은 이미 독일의 경우가 보여주었다. 역사적 사실을 따져보는 시비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의 결연한 입장 표명이 화해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마침 중국도 지난해 11월 건국 이래 두 번째로 열린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시진핑 외교의 최우선 순위를 대국 외교나 개도국 외교보다도 주변국 외교에 두기로 결정했다. 동양평화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선제조건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지난 100년, 수다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동양평화와 한국의 운명을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여온 우리로선 세계 두 번째, 세 번째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용기와 비전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 올해에는 우선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속개되어야 하겠다. 이웃끼리의 만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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