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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대란 기재부가 우수? 민심과 따로 노는 성적표

이철우 정부업무평가실장이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정부업무평가를 사전 브리핑 하고 있다. 평가 결과는 3일 국무회의에서 공식 발표됐다. [뉴시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2년 서민·직장인 세부담 급증 긴급진단 토론회’에 참석해 기획재정부를 맹비난했다. 봉급생활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연말정산 파동의 근본적인 원인이 기재부의 잘못된 세수 추계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로 그날 국무조정실은 ‘2014년 정부업무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기재부에 최상 등급인 ‘우수’를 안겨줬다. 투자 확대와 공공기관 부채감축, 방만경영 개선 등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국민을 그렇게 화나게 만든 기재부가 어떻게 우수 부처로 포장될 수 있나”고 되물었다.

뒷말 무성한 정부업무평가

박근혜 정부 2년차의 정부업무평가 결과를 두고 관가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국민적 조세저항을 일으키고 연초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30% 아래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연말정산 사태의 주역, 기재부가 우수 부서로 뽑히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올해엔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과가 부진한 기관의 장(長)에 대해서는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한 상태여서 과거 어느 때보다 평가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업무평가와 기관장 평가는 별개지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발표된 2014년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는 장관급 기관의 경우 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 등 6곳, ‘보통’은 교육부·법무부·고용노동부 등 11곳, ‘미흡’은 외교부·국방부·해양수산부·방송통신위원회 4곳이다.

규제 끌어안고 있는 부처가 되레 고득점
최하등급인 ‘미흡’ 부처는 겉으로는 모두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2015년 평가에선 좋은 점수를 받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응이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공개 브리핑에서 “외교업무에 대해 그간 언론계와 학계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평가에 자만하지 않고 국정과제를 더 충실히 이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도 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은 외교부와 국방부는 2013년도 평가에서는 ‘우수’였다. 두 부서는 1년 만에 우등생에서 낙제생이 된 것이다.

2014년도 평가엔 규제개혁 배점이 강화되는 등 경제부처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 결과 기재부·산업부 같은 경제부처가 실질적인 업무성과나 국민의 체감적 만족도와 달리 우수 평가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2013년도 정부업무평가 기준은 국정과제(주요 정책과제) 60점, 국정과제 지원 40점이었다. 국정과제 지원은 일자리 창출(10점), 규제 개선(10점), 부처 간 협업(8점), 정책홍보(8점), 특정시책 이행관리(4점)로 구성됐다. 이게 2014년 평가에서는 국정과제 50점, 규제개혁 25점, 비정상의 정상화(잘못된 관행 바로잡기) 25점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홍보·협업·대국민 업무태도 등을 평가해 15점 이내에서 가감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는 잘못된 규제·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상이 많은 기재부나 산업부 같은 경제부처가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규제나 잘못된 관행 수정 대상은 부처별로 차이가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14년 ‘규제개혁 종합건의’를 보면 재계가 요구하는 부처별 규제개선 건수는 국토교통부 104건, 산업부 71건, 기재부 30건이다. 국방부는 3건, 외교부는 0건이다. 정부의 규제포털(www.better.go.kr)을 보면 기재부는 규제 건수(217건)도 많고 개선 성과(8건)도 많다. 외교부는 등록규제가 35건, 개선 성과는 5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도 비슷한 수준인데 6일 현재 정부 ‘비정상의 정상화’ 사이트(pmo.go.kr/pmo/normalization)에 따르면 기재부 10건, 외교부 1건이다.

익명을 원한 비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지금 기준대로 평가하면 외교부는 북한에 핵 개발 포기 문서를 받아내도 만점을 못 받고, 통일부 역시 당장 통일을 이뤄도 ‘우수’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부처의 간부도 “잘못됐던 걸 고치면 좋은 점수를 주고,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 별로 없는 부서가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2014년도 평가에서 외교부는 국정과제 부문에서 ‘보통’을 받았지만 규제개혁에선 ‘미흡’, 비정상의 정상화에서도 ‘미흡’을 받았다. 핵심 업무와 거리와 먼 항목들에서 저조한 점수를 받은 탓에 종합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셈이다. 외교부 고위 간부는 “외교부엔 완화해야 할 규제 건수가 경제부처에 비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상당 부분 상대국가를 고려해야 하는 내용들이어서 풀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경제부처 고위 간부 역시 “정부업무평가에선 늘 통일·외교안보 부처가 불리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며 “때깔 나는 규제만 많이 없애면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구조는 문제”라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업무의 특수성보다는 지난해 방산비리·총기난사 사건 같은 게 평가위원에게 감성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부처별 특성 반영한 기준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정부업무평가에 부처별 특성이 반영된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앙대 박흥식(행정학) 교수는 “통일부나 외교부는 정책의 상당 부분이 상대방 의존적이어서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부처별 업무가 질적으로 다르니 외교안보·경제·사회복지 등 유사 부문별로 그룹을 지어 평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정과제·규제개혁 등 부문별로만 평가하고 줄세우기식의 종합평가는 제외하자는 제안도 있다. 정부업무평가위원장을 지냈던 서울대 정용덕(행정학) 명예교수는 대통령 업무보고와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초 각 부처가 대통령 앞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는 그해 할 일에 대해 화려하게 보고하는데, 정작 업무평가 대상에선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통령 업무보고와 부서 평가의 연계성을 강화하면 더 내실 있는 평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했다는 입장이다. 최용선 정부업무평가실 과장은 “연말정산 사태는 부처 평가가 끝난 이후에 발생해 기재부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고, 중점을 두는 국정 과제에 따라 평가 기준은 매년 바뀌어 왔다”고 말했다. 이해영(영남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업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장도 “평가기준이 국내 행정 중심으로 짜인 측면이 있어 외교안보 부처들이 불리할 수 있지만 관련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했다”며 “기준에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업무평가 정부업무평가위원회에서 한다.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이 공동위원장으로 민간위원 10명, 정부위원 3명(기획재정부 장관·행정자치부 장관·국무조정실장) 등 총 15명으로 구성된다. 실무는 정부업무평가실에서 담당한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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