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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함께 들어온 이슬람도 미국 문화·역사의 일부

장 레옹 제롬 페리스(1863~1930)가 그린‘메이플라워 서약,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간 청교도들은 1620년 신앙뿐 아니라 평등과 민주주의의 수호를 다짐하며 ‘메이플라워 서약’에 서명했다. [위키피디아]
피터 맨소
서구 사회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좌불안석이다. 많은 사람이 이슬람과 과격 이슬람주의를 구분하지 않는다. 따가운 눈총이 그들을 겨눈다. 이들은 기독교인이 다수인 사회에선 이방인이다.

미국 내 소수 종교 지위 회복 주장하는 피터 맨소

하지만 그렇게만 볼 게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2월 10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초기 미국의 무슬림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그렇다. 글을 쓴 피터 맨소(Peter Manseau·40)는 이슬람도 미국 문화와 역사의 일부라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혁명 당시 흑인 노예의 20%는 무슬림이었다.

맨소는 『여러 신(神)들 아래 갈라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 Under Gods)』(2015)를 집필해 미국 종교사를 소수 종교 집단의 입장에서 살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객원 큐레이터인 그는 유대 문학에 대한 논문으로 2013년 조지타운대 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에게 미국의 종교 상황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들어봤다.

1 아유바 술레이만 디알로 무슬림 종교지도자 집안에서 태어난 아유바 술레이만 디알로(1701~1773)는 오늘날의 세네갈에서 노예로 잡혀와 노예무역에 대한 최초의 회고록을 남겼다. 2 오마르 이븐 사이드(1772년께~1864) 또한 세네갈에서 노예가 돼 1807년 미국으로 팔려왔다. 농장에서 일하며 아랍어로 된 글들을 남겼다. 1820년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내심 이슬람 신앙을 고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키피디아]
-미국의 정치·종교 관계에 대한 최대의 신화나 오해는.
“현재 미국에서 ‘미국은 기독교 국가인가’에 대해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독교적 가치가 건국 원칙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건국 당시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건국 초기와 그 이후의 미국 내 종교적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때도 유대교·이슬람 신자들이 있었다. 노예들은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영향하에 있었다. 미국이라는 공화국을 설계한 사람들은 새 나라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와 계몽주의는 미국 땅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했나.
“건국 당시 기독교 교파의 ‘폭발’이 일어났다. 교파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교파들은 이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연방 정부가 특정 교파에 특혜를 주면 나머지 교파들은 불이익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을 확장해 연방 정부가 기독교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종교의 다양성과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종교적으로 다원적인 국가를 형성하게 된 배경에는 계몽주의 사상이 있다. 계몽주의 영향하에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자 놀랍게도 미국은 종교로부터 멀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종교적 표현이 분출됐다. 계몽주의로 말미암아 종교에 대한 헌신이 심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미국은 세계 다른 나라에 비해 종교 활동이 훨씬 더 활발한 나라가 됐다.”

-미국에서 국가와 종교의 관계는 건강한가.
“전체적으로 보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의견 충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 보이지만 말이다.”

-어떤 의견 충돌인가.
“국가와 종교 사이에는 벽이 있다. 문제는 ‘벽에 어느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하는가’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완벽한 분리를 주장한다. 국가는 종교를 후원할 수 없게 돼 있지만, 국가가 마치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아직 회색지대가 많다.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종교에 개입하면 안 된다. 어떻게 이 두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는 아직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모순이 있고 상황도 유동적이다. 국가-종교 관계에 대한 토론과 ‘협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분노에 휩싸인 종교인들은 없는가.
“미국의 정체성은 곧 기독교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두 정체성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무엇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는 미국 역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조지 워싱턴이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음으로써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탄생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 종교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오해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온전한’ 크리스천인지 의심하는 미국인들이 있다. 건국 초기에는 오히려 이신론의 영향을 받은 대통령들이 많았다. 대통령의 종교가 문제시되는 것은 언론매체의 발전 때문인가.
“미국 정치문화에서 대통령의 종교는 항상 논란거리였다고 생각한다. 1796년 대선에서 토머스 제퍼슨과 존 애덤스가 맞붙었을 때, 애덤스의 지지자들은 제퍼슨이 무신론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사실 제퍼슨은 교회에 다녔지만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그의 절충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21세기 언론의 목소리가 다양해지면서 대통령의 종교라는 미묘한 문제로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매체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없는 논란을 만들어내는 매체도 있다. 있는 논란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일부 정치인들까지 오바마가 사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슬람과 과격 이슬람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세계 이슬람 신자는 10억 명이 넘는다.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릴 뿐이다. 일부의 이슬람 해석을 전체의 해석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미국 상황에서 중요한 점은 무슬림들이 최근 이민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는 일이다. 건국 이전에도 무슬림이 있었다. 탐험시대와 식민지 개척 시대에도 있었다. 그들은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그들 신앙의 요소는 남아 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도 미국 다원주의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슬람이 새로운 정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역사적 체험을 구성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슬람이 미국에 미친 영향은 지극히 제한적 아닌가.
“독립선언문에 서명했거나 헌법 제정에 참가한 무슬림은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국과 이슬람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서도 역사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집단이 믿었던 종교에 대해서는 역사가 소홀히 다루고 있다. 정치·전쟁뿐만 아니라 종교의 승자가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수집단의 종교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게 너무 많다. 그들의 종교 또한 미국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겉으로 보면 탄압을 받아 사라진 것 같은 종교도 지하로 숨어들어 결국엔 문화에 흡수된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는 그런 과정을 통해 다수집단에 영향을 준다.”

-마태복음 5장 14절의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를 상당수 미국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미국이 ‘산 위에 있는 동네(a city upon a hill)’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세계의 빛, 모범,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는 나쁜 게 아닌 것 같다.
“현재 미국에서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다. ‘산 위에 있는 동네’라는 표현을 떨쳐버리거나 교과서에서 삭제할 필요는 없겠지만 단일한 종교적 메타포(metaphor)를 미국이라는 매우 복합적인 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일 메타포의 공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원래 의도는 국가적 통합에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분열의 씨앗이 되는 정반대의 악영향이 있다. 다양한 스토리, 다양한 다른 메타포가 필요하다.”

-미국의 종교들은 결국 평화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낙관하는가.
“그렇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받은 신앙 교육은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미국 종교의 역사를 보면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이 담겨 있었다.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가.
“나는 식구들과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장로교 소속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나는 아직 가톨릭 신자다. 문화 정체성의 면에서도 가톨릭이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내가 가톨릭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다. 인생의 단계마다, 또 필요에 따라 끌림이 있는 종교가 다를 수 있다. 개인과 국가의 종교적 정체성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변화한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신부, 어머니가 수녀인데.
“아버지는 교회의 허가 없이 결혼했기 때문에 정직 상태의 사제다. 1960년대 상당수 신부가 결혼했다. 성직자의 독신에 대한 교회의 규정을 바꾸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지금의 교황은 진정한 개혁가인가, 아니면 포퓰리스트(populist)인가.
“둘 다라고 생각한다. 그의 포퓰리즘 스타일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태도 자체가 개혁이다. 보다 급격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황의 성격 자체가 극적인 변화다. 그는 교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한국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몇 년 전 통일교 결혼식을 한 밀링고 대주교에 대한 글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적이 있다. 한국 기독교는 정말 놀랍다. 한국 TV프로를 즐겨 보고 있으며 6살인 딸은 태권도와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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